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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5일 "대법 판결에 따른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81일 째 철탑 농성을 벌이고 있던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정문 앞 철탑농성장에 도착한 희망버스. 지역 보수층이 희망버스 저지에 나섰다
 올해 1월 5일 "대법 판결에 따른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81일 째 철탑 농성을 벌이고 있던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정문 앞 철탑농성장에 도착한 희망버스. 지역 보수층이 희망버스 저지에 나섰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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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을 매도하는 세력과 20일 현대차 비정규직을 응원하러 울산에 오는 희망버스를 저지하는 세력은 한 몸통이다.' 당사자들은 이 팩트에 반대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수년 간 노무현 대통령을 비하하고 매도해 온 사람들(관련기사: 이명박의 "믿어주시겠습니까"에 환호한 그들이건만... 이 어제(18일) "외부세력에 의한 본질을 벗어난 목적에 이용된다"며 희망버스를 중지할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

당사자들에게는 노무현 매도와 희망버스 저지가 '선'일지 몰라도 희망버스를 타고 전국에서 오는 많은 각계의 사람들에게는 결코 선으로 비치지 않을 것이다.

지역 보수층 "희망버스는 특정정당과 외부세력의 개입"

희망버스의 울산 도착을 이틀 앞둔 지난 18일 오전 11시, 울산상공회의소 3층 회의실에는 소위 지역의 유지라는 사람들이 모였다. 울산지역 102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행복도시울산만들기범시민협의회(이하 행울협) 회원들이다. 이들은 운영위원회를 열고 "희망버스 울산방문 시도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희망버스로 인해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지역경제 활성화에 엄청난 피해를 가져오는 것은 물론, 지난 5월 현대차가 어렵게 이뤄낸 주말특근 재개 합의가 자칫 무산되는 등 노사관계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특히 이들은 "사내하청 및 철탑 농성자 문제는 현대차 노사 및 비정규직지회의 성실한 특별협의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하는 만큼 희망버스를 통한 외부세력 등 제3자의 개입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특정정당과 외부세력의 개입 등 본질을 벗어난 목적으로 이용돼서는 안 될 뿐 아니라 집회소음과 인도점거 등 시민들의 불편과 고통을 야기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이 같은 입장은 현대차 회사 측의 입장과 맥을 같이한다. 현대차는 지난 16일 회사 소식지 <함께 가는 길>을 통해 "지난 2011년 6월부터 11월까지 5차례의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행사에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동원됐다"며 "불법 공장진입시도, 폭력자행, 노사 간 합의 이후에도 집회와 시위를 계속했다"며 희망버스를 '외부세력''혼란버스'로 규정한 바 있다.

그렇다면 행울협은 왜 회사 측과 입장을 같이한 것일까? 울산의 올해 수출 목표는 1100억 달러, '대한민국의 수출 목표 100억 달러'라고 외우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일개 도시의 한 해 수출이 무려 1100억 달러라니 놀라운 수치다. 이같이 같은 입장은 이처럼 큰 경제 규모에 있다.

그 바탕은 소위 고부가가치업종이라는석유화학, 조선, 자동차 등 국내 최대 산업단지에 기인한다. 이 고부가가치 상품을 생산하는 대기업 주변에는 수천 개의 납품, 협력업체가 얽히고설켜 지역의 경제협력체를 구성한다.

특히 근래 들어서는 지자체장의 '원전 르네상스' 주창에 힘입어 원전사업에도 경제협력체가 파고들었다. 엄청난 국가 세금을 바탕으로 하는 원자력 발전소가 속속 들어서면서 울산의 주요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원전르네상스를 파고 드는 것도 이들 지역 경제인들이다. 환경시민단체의 원전 반대 목소리는 이 경제협력체의 힘에 막혀 버렸다.

이 같은 굳건한 경제 커넥션은 각종 사안에서 뭉쳐 한목소리를 내게 만든다. 최근 세계적 문화유산인 반구대암각화 보존방법을 두고 토건 공사를 반대하는 문화재청과 문화계를 성토하고 나선 것도 이들이다. 야당이 '반구대 암각화 보존 방법이 토건족을 먹여 살리는 것으로 되서는 안된다'고 성토하고 나선 것도 그 때문에 나왔다. 최근 지역 주민단체가 "원전을 자율유치하겠다"고 나선 것도 이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지난 2007년 대선을 전후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가차없는 비토를 날렸다. '노무현이 경제를 죽였다'는 논리를 지역 전반에 전파했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한 것은, 노 전 대통령의 의지가 없었다면 '울산국립대, KTX 울산역' 등 지역의 숙원이 해결되지 않았고, 이 사업들을 통해 수년 간 지역경제가 활발했었다는 사실이다.

희망버스 막고 나선 본질은 지역의 경제커넥션

행울협이 희망버스를 막아서고 나선 18일, 민주당 울산시당은 "죽음의 벼랑에 위태롭게 서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손을 내밀고자 하는 생명의 마음으로 희망버스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냈다. "차별과 경쟁의 시스템에서 사회적 약자는 필연적으로 발생하므로, 이들의 어려운 처지에 관심을 두자. 비정규직 문제는 내 가족의 문제이며 내 힘으로 해결 못 하는 문제다"며 호소하고 나선 것.

이는 수출 1100억 달러, 최고 부자도시라는 이면에서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 지역의 사회적 양극화를 이르는 말이다. 최고 연봉으로 연일 언론에 오르 내리는 울산의 대기업 정규직에 반해, 절반도 안되는 처우로 한 현장에서 함께 일해야 하는 비정규직·하청이 늘어나는 것이다.

19일 현재 언론에는 "현대중공업 노사가 19일 임금협상 조인식을 하고 19년 연속 무파업 타결을 마무리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 동구에는 지금도 곳곳에서 '조선 하청노동자 차별금지'라는 현수막과 팻말을 든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의 모습이 보인다.

희망버스를 부른 울산이 이처럼 경제커넥션을 두고 얽히고설키다 보니 아이러니한 일도 발생한다. 행울협에 속한 한 단체의 회장은 20대 후반 자녀를 두고 있다. 아들은 현대차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그 회장은 평소 "비정규직 아들이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지만 임금이 절반 밖에 안 되고, 밖에서 바라보는 눈도 좋지 않아 아들 장가보내기가 힘들다"고 주변에 호소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는 희망버스를 막는 행보를 같이해야 했다.

울산지역 보수층의 한 인사는 "정점을 바탕으로 피라미드처럼 구성된 기득권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독자적인 행보를 하면 생업을 이어가기 힘들다"며 "싫든 좋든 한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겠나"며 희망버스 저지 동참 이유를 밝혔다. 그렇다면 이 같은 경제커넥션 피라미드의 최고 정점에는 과연 누가 앉아 있을까?


태그:#희망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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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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