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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7년 7월 4일 울산상공회의소에서 연설을 한 후 지역 정치인들과 손을 맞잡고 청중들에 인사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7년 7월 4일 울산상공회의소에서 연설을 한 후 지역 정치인들과 손을 맞잡고 청중들에 인사하고 있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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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2007년 7월 4일 오전 11시.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예비후보 정책설명회'가 열린 울산상공회의소 7층 대강당은 입구까지 꽉 차면서 발 디딜틈이 없었다.

그곳에는 이명박 후보 지지세력인 울산지역 포럼 회원 수백 명이 운집했다. 포럼에는 지역에서 방구깨나 뀐다는 보수 지도층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었다. 당시 한나라당 소속 울산지역 정치인 대부분도 이 자리에서 이 후보 지지를 천명했다.

당시는 이명박 후보에 대한 각종 의혹들이 여기저기서 제기되던 때였다. 이명박 후보는 운집한 지지자들을 향해 "열심히 살아오면서 그릇도 깨고 손도 베는 삶을 살아 왔을 수도 있다. 우리당내 어떤 후보가 저를 전과 14범이라 하던 데, 저도 모르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며 "하지만 대통령이 될 수 없을 만큼 실수하거나 도덕적 잘못을 하지 않고 살았다"고 역설했다. 지지자들은 환호했다.

이어 그는 "대통령이 되면 예산을 매년 20조 원 줄일 수 있다. 눈감고도 예산 10%를 줄일 수 있다"며 "그래도 절약한 예산이 많이 남는 데, 그 나머지 사용처는 대통령 후보가 되면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노무현 대통령을 욕했다, 그는 "내가 서울시장을 할 때 5조였던 서울시 빚을 3조 원 갚았다"며 "그런데 노 대통령은 130조 이던 나라 빚을 300조 원으로 늘렸다"고 외쳤다. 그러더니 "여러분, 믿어주시겠습니까"를 10여 차례 외쳤다. 지지자들은 10번 모두 "예" 하며 환호성을 지르면 답했다.

검증도 안 된 수치를 갖다대며 노무현 대통령을 욕하고 자신을 치켜 세우는데 대한 지지자들의 환호성은 건물이 떠나 갈 듯 컸다. 이후 지자자들은 이런 논리를 지역 곳곳에 전파시켰다.

5일 뒤인 그해 7월 9일 오전 11시, 울산 남구 근로자복지회관에서는 박근혜 예비후보 초청 울산지역 당원교육이 열렸다.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예비후보의 도덕성을 집중 거론하며 "엄격해진 한라당 공천심사로 볼 때 공천이 불가한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2007년 7월 9일 울산 근로자복지회관에서 박근혜 예비후보와 지역 정치인들이 손을 들어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2007년 7월 9일 울산 근로자복지회관에서 박근혜 예비후보와 지역 정치인들이 손을 들어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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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날 박 후보 연설에는 이명박 후보 연설 때와는 달리 지역 정치인은 단 3명만이 참석했다. 이를 본 박 후보 측 좌장 김무성 의원은 단상에 올라 "박근혜 후보가 총선과 지방선거, 보궐선거 등에서 도와준 정치인들이 모두 어디 갔냐"며 "이렇게 의리 없이 살아가야 되겠나, 나도 사나이인데 눈물이 난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대세가 기울어지고 있는 것을 실감한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후보는 2004년 총선과 2005년 10.26 보궐선거, 2006년 지자체 선거 때 당 대표로 있으면서 연이어 울산지역 한나라당 후보들의 유세 지원을 했었다. 당시 그는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는데, 지역 정치인들은당선을 위해 박근혜 대표의 지원을 바랐다. 이 때문에 그가 울산에 올 때마다 대다수 정치인들이 그를 뒤따랐었다. 하지만 2007년 그날, 격세지감을 느낀 것이다.

당시 이명박 후보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맹주를 위해 노무현 정부를 비하해야 했다. 지역에서 각자 세를 가진 지도층인 이들의 목소리는 곧바로 지역 주민들에게 시시각각 각인됐다. 객관적인 자료나 수치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직 노무현 정부의 과오만이 있을 뿐이었다. '넘어져도 노무현 탓이다'고 서민들 조차 말한 한 배경이 됐다. 이 단순한 프레임은 노무현을 희생양으로 삼기에 충분했다.

2007년 대선 경선에서 대세가 기우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의리마저 저버린 정치인들, 그들에게는 노무현 대통령이 관료들과 싸우면서까지 이행한 KTX 울산역, 울산국립대 설립 등 공약 이행에 따른 지역의 경제효과 따위는 이미 기억 속에 없었다.

이명박에 줄섰던 그들, 다시 박근혜에게로

5년 뒤인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일찌감치 박근혜 후보가 대선 후보로 나서자 5년 전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고 박근혜 후보 연설에는 참석조차 않았던 지역 정치인들이 모두 그를 추종하며 거리마다 따라나섰다. 비단 정치인뿐 아니라 이명박 지지포럼을 만들었던 지역 보수층 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울산지역 정치인들에게는 너나 할 것 없이 '친박'이란 앞글자가 붙었다. 그들은 박근혜 후보가 외치는 '경제민주화'를 신봉하며 주민들에게 각인시켰다.

5년 전 이명박 후보가 외친 "믿어주시겠습니까"에 '환호'로 답하면서 주민들에게 전파했던 지지자들. 하지만 그들은 이후 경제 발전은 고사하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서민들이 속출하는데도 그들을 돕기 위한 시의회 결의문 하나까지 반대하며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이명박 후보를 맹신하며 시민들의 삶을 편안하게 하겠다고 부르짓던 그들이지만,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불거져 나온 과오에는 입 다물고 있더니 다시 5년 뒤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를 신봉하며 나섰다. 이들은 박 후보가 지역에 올 때마다 주민들의 손을 잡고 주민들에게 경제민주화를 각인시켰다.

하지만 그들이 그무렵 실제로 보인 행보는 정반대였다. 올해 3월 야당 의원이 발의한 학교비정규직의 교육감 직고용 조례를 반대한 그들은, 당시 거리에서 항의 농성을 하던 비정규직들에게 '세력이 끼어 있어 절대 조례를 통과시켜 줄 수 없다'며 갈등을 부추기기까지 했다.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기치로 울산을 드나들던 2012년 11월, 매서운 추위 속 송전철탑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던 비정규직들이 있었다. 야당은 이들을 돕기 위한 '대법원 판결에 따른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촉구 결의안'을 마련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결의안을 부결 시키며 비정규직들이 눈물을 삼키게 했다. (관련기사: <"결의문 하나 채택 못하면서 경제민주화를 논하나"> )

시민구성원 각고의 노력으로 공해도시에서 탈피한 울산을 도로 공해도시로 만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 석유화학업체의 가동원료 고황유 허용 조례. 그들은 집행부의 조례 추진에 대기업 특혜의혹마저 일고 있는데도 오히려 조례를 보류시킨 야당 시의원을 징계하려 하면서 지역의 갈등을 부추겼다. (관련기사: 공해도시 막자는 시의원, 징계위 회부... 왜?> 결국 고황유 사용은 허용됐다.

얼마 전 만난 지역의 보수층 인사는 "이명박 후보가 욕은 들어먹어도 경제 하나는 살리지 않았냐"고 되묻고 "박근혜 대통령은 더 잘 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울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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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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