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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양 한마음선원 연등 숲에서 영결식장을 향해 출발하는 대행스님 이운 행렬.
 안양 한마음선원 연등 숲에서 영결식장을 향해 출발하는 대행스님 이운 행렬.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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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여름날 오후, 요양을 하러 산골로 들어가 혼자 생활하고 있는 친구를 찾아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가 살고 있는 집은 외지기도 하지만 움막처럼 허름했습니다. 밥을 해먹는 부엌도 옹색하고, 흙벽에 신문지를 더덕더덕 바랄 치장을 한 방도 허름했습니다.

시간을 약속하지 않고 찾아가서 그런지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줄줄 흐르는 땀도 식힐 겸 마당 한쪽, 아름드리 참나무 아래 놓인 들마루에 벌렁 누웠더니 어느새 잠이 들었습니다. 한참을 자다 목이 마르다는 생각에 눈을 뜨니 주변엔 이미 어스름이 내렸습니다. 땀으로 끈적끈적해진 목덜미를 긁적거리며 잠이 덜 깬 눈으로 두리번거리다 보니 저만큼에 노랗게 익은 참외가 눈에 띕니다.

내가 먹은 게 '똥'이야 '참외'야

몇 걸음 성큼성큼 걸어가 노랗게 익은 참외를 땄습니다. 마당 한쪽에 있는 샘터로 가 썩썩 씻어서 한입 베어 물으니 단맛이 울컥 쏟아집니다. 우걱우걱 씹으니 아삭아삭 씹힙니다. 목도 마르고 적당히 허기가 질 쯤이라서 그런지 그야 말로 꿀맛이었습니다.  

산막 살림을 하고 있는 친구의 집에서는 아무리 더워도 산그늘이 지며 어스름이 질 때쯤이면 시원해집니다. 산바람이라도 불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는 게 한여름 산골 집에서 맛 볼 수 있는 어스름 저녁의 고요함과 시원함일지도 모릅니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누웠다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입이 찢어지라 하품도 하고, 기지개도 켜며 기다리다 보니 허름한 등산 가방을 멘 친구가 산 쪽에서 내려옵니다. 모처럼 찾아오는 친구에게 어릴 때 캐 먹었던 잔대(도라지처럼 생긴 뿌리) 좀 맛보이려고 잔대를 캐러 다녀오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26일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간, 사람들은 많았지만 적막하리 만큼 조용했던 한 한마음 선원
 26일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간, 사람들은 많았지만 적막하리 만큼 조용했던 한 한마음 선원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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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가로 가 웃통을 훌훌 벗고 엎드린 친구 등에 바가지 물을 쏟아 부으며 참외를 따 먹었다는 걸 실토했습니다. 친구는 등목을 마치고 일어나며 묘한 표정을 짓더니 "그 참외 진짜루 네가 다 먹었어?" 하고 묻습니다. "그럼, 되게 달던데. 하여튼 잘 먹었어. 내가 다음에 올 때 참외 사다줄께"하였습니다.

그러자 친구가 갑작스레 메아리가 울린 만큼 커다랗게 웃기 시작하더니 "너 똥 먹은 거다" 하는 겁니다. "너 그 참외 어디서 큰 건지 알아? 너 완전 똥 먹은 거다"하며 목젖이 훤하게 드러날 만큼 커다란 웃음을 쏟아냅니다.

친구가 캐 온 잔대를 구워 저녁을 먹고 다음날 살펴보니 참외넝쿨이 뻗어온 곳은 친구가 이곳으로 처음 들어와 대변을 보느라 묻어두었던 커다란 플라스틱 용기였습니다. 플라스틱 용기를 묻고, 민망한 모습이 보이지 않을 만큼만 나무를 엮어 대충 둘러 임시로 사용하였던 그 화장실 똥독에서 뻗은 넝쿨에서 그렇게 맛난 참외가 열렸던 겁니다.   

지난밤, 친구가 "너 똥 먹은 거다"라고 하며 박장대소를 했던 이유는 그랬습니다. 그러고 보니 친구의 말이 맞기도 합니다. 똥만 수북했던 곳서 뻗은 넝쿨에서 열린 참외니 그 참외는 똥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그 사건(?)이 생각날 때마다 그때 그렇게 맛나게 먹었던 게 '똥'인지, 아니면 '참외'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아직도 그 답은 찾지를 못했습니다.

그때 먹었던 게 '똥'이었을까, '참외'였을까를 놓고 혼잣말로 논쟁을 벌이다 보니 연등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한마음선원' 앞 대로입니다. 골목으로 들어가 주차를 하고 연등 숲으로 걸어들어 갔습니다.

23곳 지원을 둔 본원, 안양 한마음선원

지난 5월 22일, 세납 86세 법납 63세로 안양 한마음선원에서 입적하신 대행 스님의 영결식과 다비식장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대한불교조계종 한마음선원'은 국내에 15곳 지원, 해외 8곳에 지원을 두고 있는 본원이지만 여느 절들과는 달리 주변이 번잡한 시가지에 있었습니다. 

 한마음선원외벽에 내걸린 걸게 그림에서 대행 스님은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냇물이 흘러서 언젠가는 바다에 이르듯이 누구든지 언젠가는 성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하며 법문을 하고 있습니다.
 한마음선원외벽에 내걸린 걸게 그림에서 대행 스님은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냇물이 흘러서 언젠가는 바다에 이르듯이 누구든지 언젠가는 성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하며 법문을 하고 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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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간, 카메라의 '찰칵' 거리는 셔터소리가 민망할 만큼 조용한 시간입니다. 연등이 숲을 이루고 있는 한마음선원에서는 요즘의 숲에서 쏟아지는 녹색의 싱그러움보다 훨씬 진한 불향이 물씬 풍기고 있었습니다. 하얀 연등 숲으로 들어가니 이렇게 이른 시간인데도 조심스러움이 느껴질 만큼 조용한 발걸음으로 탑돌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저절로 엄숙해 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입니다. 연등 숲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3층 법당입니다. 경사진 곳에 5층으로 된 한마음선원이 건축되다 보니 옆에서 어디로 들어가느냐에 따라 2층이 될 수도 있고 3층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3층 법당은 조용합니다. 조명조차 은근하니 더욱 조용한 분위기입니다. 법당 가운데 앉아 계시는 두 분,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남성 불자 두 분은 좌선에라도 든 듯 미동도하지 않습니다. 법당 양쪽으로는 며칠간의 피로를 이기지 못해 법석을 덮고 누워있는 사람들 모습이 와불을 닮았습니다.

법단 앞에는 이운행렬에 제일 앞설 인로왕번과 명정, 오방번 등이 차례대로 놓여있습니다. 정성을 다해 썼을 지번도 보입니다. 한쪽에서는 스님의 법구를 모실 상여를 7명의 여성 불자들이 장식하고 있습니다. 한 땀 한 땀을 수놓듯이 카네이션을 한 송이 한 송이의 정성스럽게 붙여가며 장식하고 있습니다.

 법당에 있던 만장외에도 연등 아래에는 600여개의 만장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법당에 있던 만장외에도 연등 아래에는 600여개의 만장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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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스님의 분향소는 4층에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분향소 역시 조용하고 엄숙합니다. 스님의 영전에 국화꽃 한 송이를 올린 사람들이 애별이고의 절을 합니다. 상제가 되어 분향소를 지키고 있는 스님들께도 절을 올립니다.

상가가 된 한마음선원 경내를 둘러보고 밖으로 나와 두런두런 살펴보니 한마음선원외벽에 내걸린 걸게 그림에서 대행 스님은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냇물이 흘러서 언젠가는 바다에 이르듯이 누구든지 언젠가는 성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하며 법문을 하고 있습니다.

카메라를 철컥거리느라 분향소에서 올리지 못한 삼배를 꾸벅꾸벅하는 합장삼배로 대신합니다. 영결식장은 한마음선원에서 200m쯤 떨어진 곳에 마련되고 있었습니다. 1500개가 넘는 의자는 이미 가지런하게 놓여있고, 식단에서는 꽃장식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준비를 하고 있는 영결식장을 둘러보고 연화대가 차려진 다비장을 향해 걸었습니다. 다비장으로 가는 길은 삼막천을 따라 걷는 길이었습니다. 물 대신 아카시아향이 흐르고 있는 삼막천을 따라 오리쯤을 걸어 올라가니 연화대가 차려진 다비장입니다.

다비장은 대행스님이 생전에 기거하시던 요사, 서산정에 입구에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나무대문 옆으로 난 쪽문으로 들어서니 연화대가 보입니다. 준비된 무대처럼 깔끔한 풍경입니다. 땅을 고르고 흙까지 새로 깔았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유산처럼 남긴 스님의 능력, 남은 자들이 상속처럼 물려받은 정성이 그려낸 조화 같은 풍경입니다.

대행 스님을 다비할 연화대는 '새끼줄타래 연화대'

서산정 앞에서는 스님들이 제를 지내고 있었고, 대행 스님을 다비할 연화대는 수원 봉녕사 묘엄 스님을 다비할 때 연화대를 꾸렸던 팀에서 이미 새끼줄타래 연화대로 꾸려놓았습니다. 새끼줄을 쌓고 하얀 연꽃모양으로 장식을 해 비바람과 이슬을 막아 줄 가림 막을 쳐 놓은 상태였습니다.

 연등 숲에 스님의 법구를 모시기 위해 놓인 상여틀
 연등 숲에 스님의 법구를 모시기 위해 놓인 상여틀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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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선원으로 돌아가기 위해 삼막천을 따라 걸었습니다. 텅 빈 삼막천에 조금 전 걸개그림에서 보았던 대행 스님의 천연덕스런 모습과 '냇물이 흘러서 언젠가는 바다에 이르듯이 누구든지 언젠가는 성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는 글귀가 넘쳐납니다. 길가에 핀 감자 꽃조차 상제노릇을 하려는지 하얀 소복을 입은 모양으로 다소곳하게 피어있습니다.

햇빛에 환하게 드러난 한마음선원은 온통이 검정색 복장을 한사람들로 북적댑니다. 어찌 이토록 검정색 복장으로 통일을 할 수 있었는지가 궁금할 정도로 사람들 마다 검정색 조복을 입었습니다.  

비구니 스님들이 멘 상여

오전 8시 20분, 대행 스님 법구가 이운됩니다. 하얀 연등과 오색연등이 숲을 이루고 있는 3층으로 이어지는 옆 마당으로 상여 틀과 카네이션으로 장식한 덮개가 옮겨지고 스님들이 도열합니다.

사람들이 웁니다. 어깨를 들썩 거리며 헉헉 흐느껴 울기도 하고, 눈물은 주르르 흐르고 있는데 소리 없이 울기도합니다. 이래서 사별을 애별이고라고 하는 가 봅니다. 

 6000여명의 조문객들이 참석한 영결식장
 6000여명의 조문객들이 참석한 영결식장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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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법구를 카네이션으로 장식한 상여로 모시고, 24분의 비구니 스님들이 상여를 멥니다. 스님을 모신 상여가 탑돌이를 하고, 대웅전을 향해 하직의 인사를 올리고 영결식장을 향해 출발합니다.  

상여꾼이 된 24명 중 양쪽 셋째 줄 안쪽에서 멘 스님들은 비구니 스님이 아니고 비구 스님이었습니다. 나중에 그 이유를 물으니 아무래도 힘으로 버텨 줄 상황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한 대비책이라고 하였습니다.

스님의 법구가 영결식장에 도착하고, 30여 분을 기다린 후에서야 영결식이 시작됩니다. 6000여 명 정도로 어림되는 사람들이 스님과의 사별을 애도합니다. 참 장엄합니다. 검정색 조복을 입고 있는 인파도 그렇고, 100여 명이 넘는 합창단 규모도 그렇고, 영결식단 좌측(동쪽)으로 도열해 있는 상제들 100여 명이 넘어서니 장엄합니다. 모자라는 식장을 탓하지 않고 산비탈과 길거리에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들 모습도 장엄합니다. 물려드는 인파로 농작물들이 훼손될까를 걱정하고 있는 농부의 마음도 야박하지 않은 풍경입니다.

삼베로 지은 치마저고리 입은 할머니도 있어

 삼베로 지은 치마저고리를 입고 계신 할머니의 모습은 영락 없는 딸상제의 모습이었습니다.
 삼베로 지은 치마저고리를 입고 계신 할머니의 모습은 영락 없는 딸상제의 모습이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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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을 다섯 번 울리는 명종, 삼귀의 영결법요 순으로 영결식이 진행됩니다. 스님께서 살아오신 길이 소개되고, 원로회의 부의장 밀운 스님, 총무원장 자승 스님, 포교원장 지원 스님, 그리고 전국비구니회장 명우스님이 영결사와 법어 그리고 추도사로 대행 스님의 포교 원력과 실천하신 자비행을 기리며 추모합니다.
짜랑짜랑한 햇살이지만 사람들 표정은 빗물 같은 눈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까만 옷들을 조복으로 입고 있었지만 누런 삼베로 지은 치마저고리를 상복처럼 입고 있는 할머니도 보였습니다. 누런 삼베옷을 상복처럼 입고, 두 손을 다소곳하게 모으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은 영락없는 딸 상제의 모습이었습니다.    

1시간을 훌쩍 넘기는 영결식을 마치고 스님의 법구를 다비장으로 이운하는 이운행렬이 시작됩니다. 대행 스님을 다비할 다비장은 지관 스님을 다비한 해인사 다비장과 비슷한 거리, 2Km쯤 떨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비장으로 가는 길은 달랐습니다. 지관 스님의 법구는 일주문까지만 상여로 모시고 나머지 거리는 장의 차량을 이용해 모셨지만 대행 스님의 법구는 말 그대로 사부대중이 함께 하며 모든 거리를 상여로 모셨습니다.

사부대중이 상여꾼 돼 함께한 이운행렬

얼마 전 연등행렬이 중요 무형문화재로 등록되었을 때 총무원장 스님께서는 다비식도 무형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는 취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종단 최고의 예우인 종단장으로 치러지는 영결식이 2km 남짓한 거리를 이운하는데 장의 차량을 쓰는 것과 비구니회장으로 치러지는 장례에서 사부대중이 함께 땀 흘리며 상여를 메 이운하는 광경 중 어느 쪽에 더 의미를 둘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상황입니다.

영결식장에서 다비장으로 가는 상여도 비구니 스님들이 먼저 멨습니다. 얼마의 거리를 두고 기다리던 비구 스님들이 상여 줄을 이어 멥니다. 상여를 내려놓지 않고 선채로 줄만 바꿔 메는 방식입니다. 두 번째로 상여를 멘 비구 스님 24분이 왼발 오른발 하며 발을 맞춥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행렬이 깁니다. 대형 스피커에서 울리는 나무아미타불 정근소리가 삼막산에서 메아리치며 다비장을 향해 차분차분 걸어갑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긴 만장 행렬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긴 만장 행렬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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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 스님들이 힘들어 할 때쯤 까만 양복을 입은 재가신도들이 상여 줄을 이어 멥니다. 이런 모습이 사부대중이 함께하는 모습입니다. 비구, 비구니, 재가불자들이 함께하는 이운행렬이라서 그런지 힘들고 슬프다기 보다는 차라리 아름답습니다.

재가불자들이 멘 상여가 연화대가 차려진 다비장, 대행 스님께서 생전에 기거하시던 서산정 가까이 도착하니 비구니 스님들이 다시 받아 멥니다. 스님을 모신 상여가 다비장에 도착하고, 연화대로 스님의 법구를 모시니 연화대를 불사를 불을 붙입니다.

처음 들어보는 '하화', 이게 바로 '여법'

그동안 보아왔던 다비식에서는 연화대에 법구를 모시고 사회자가 "거화"하고 선창을 하면, 주변 사람들이 "스님 불 들어갑니다"하며 불을 붙였습니다. 하지만 대행 스님을 다비할 연화대는 '거화'에서 불을 붙이지 않고 사회자가 "하화"를 외치니 그때서야 "스님 불 들어갑니다"를 합창하고 불을 붙였습니다.

불가(佛家)에서는 여법(如法), 말 그대로 '법대로'라는 말을 잘 합니다. 그동안 영결식과 다비에서의 여법 기준은 '석문의범'이었습니다. '석문의범'은 물론 한국불교조계종에서 펴낸 <통일법요집>에 조차 '거화'와 '하화'가 구분되어 있지만 그동안 여법하게 치렀다는 여느 다비에선 여법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덧 10년, 27분 스님의 영결식과 디비식장을 찾아다니며 현장을 기록해 왔습니다. 그 결과 종단이나 비구 스님들이 치르는 영결식이 종단장이니 뭐니하며 타이틀은 더 거창하지만 비구니 스님들이 치르는 영결식이나 다비직보다 조직적이거나 여법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대행 스님이 생전에 기거하시던 서산정에 백련 모양으로 마련된 연화대
 대행 스님이 생전에 기거하시던 서산정에 백련 모양으로 마련된 연화대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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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줄타리를 쌓아 만든 연화대는 제 본분인양 불꽃과 연기를 꾸역꾸역 토해내며 하릴없이 타들어 갑니다. 거화를 하면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였던 '나무아미타불' 정근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대행 스님이 생전에 하셨던 육성법문이 스피커에서 들렸습니다. 

참 묘한 기분입니다. 법구가 되어 연화대에서 불타고 있는 육신, 영정 속에서 천연스럽게 웃고 있는 스님의 미소, 쩌렁쩌렁하게 들려오는 육성법문이 머리와 가슴속에서 묘한 공진을 일으킵니다.   

연화대가 타 들어가고 있는 동안, 영결식 내내 품었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났습니다. 어디서 왔는지도 궁금하고, 스님과의 인연도 궁금했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검은색 복장 일색인 것도 의아했지만 새벽 3시경부터 봐 왔던 사람들 대부분이 너무나 조직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잘 훈련된 어떤 집단처럼 안내와 봉사, 행사 진행이 그동안에 봐왔던 여느 영결식장과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체계적이었습니다.

 스님께서 흔적으로 남긴 유골들이 잿더미사이로 희끗희끗 보일 뿐입니다.
 스님께서 흔적으로 남긴 유골들이 잿더미사이로 희끗희끗 보일 뿐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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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절 행사들과는 확연이 구분될 만큼 남성 불자들이 엄청 많았고, 조직적이었기에 신도회 기획부장(54, 한성호)을 만나 한마음선원에 남성 불자들이 많은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남자 불자들이 왜 이렇게 많으냐고 물으니 '안식처이나 의지처'

기획부장인 한성호씨가 설명하는 대행 스님은 "느끼거나 경험하게 해주고, 마음을 쉬게 해주는 스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삶의 경쟁에서 피곤해진 마음을 보듬어 주고,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온갖 애고를 스님의 가르침, 스님의 도움으로 해결되는 걸 직간접으로 느끼거나 경험하기 때문에 무더운 여름날 나무 그늘을 찾듯이 모여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비구니 스님에게 적지 않은 비구 스님 제자가 있다는 것도 의아해 물어보니 법제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독일에서도 오고, 미국에서도 오고, 제주에서도 오고 부산에서도 온 이 엄청난 사람들에겐 대행 스님이 마음의 안식처이며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의지처가 아니었을까 생각되었습니다.

연화대에 불을 붙이고 4시간쯤이 지난 오후 4시 30분, 연화대는 저 할일을 다할 듯 잿빛 침묵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불꽃과 연기는 물론 열기조차도 납의를 입은 수행자의 모습으로 잦아들었습니다. 스님께서 흔적으로 남긴 유골들이 잿더미사이로 희끗희끗 보일 뿐입니다.

 다비를 하고 4시간이 지났음에도 남아있던 500여명이 '자성본래불' 정근을 하며 다비장과 서산정을 돌고 있는 모습
 다비를 하고 4시간이 지났음에도 남아있던 500여명이 '자성본래불' 정근을 하며 다비장과 서산정을 돌고 있는 모습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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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다비식장 같으면 상제 스님 몇 분에 몇몇 신도들이 전부겠지만 대행스님을 다비하는 서산정엔 아직도 500여 명의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영결식단에는 참배를 하려는 사람들이 아직도 줄을 서있고, 경사를 이루고 있는 서산정 경내 곳곳에 사람들이 무더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법구, 영정 속 미소, 쩌렁쩌렁한 육성... 그 어느 것이 대행 스님인지도 몰라

오후 4시가 조금 넘자 스님 한 분이 안내 방송을 합니다. 조금 전까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할 수 있으니 '자성본래불' 정근을 하자고 안내합니다. 100여 명의 스님들이 앞서고, 여기저기 앉아 있던 불자들이 합장을 하고 뒤를 이어 걸으며 '자성본래불'을 정근합니다.

대행 스님이 생전에 걸었던 그길, 다비를 위해 담장 아래로 새로 냈다는 담장 길을 따라 돕니다. 합장을 하고 걷는 발걸음과 대행 스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는 정근, '자성본래불' 소리가 잦아들고 있는 연화대를 외호하고 주인 잃은 서산정을 에두릅니다.

내일까지는 그대로 있을 연화대, 영정 속에서 보이던 스님의 미소, 스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는 '자성본래불' 소리를 뒤로하며 아카시아향과 대행 스님을 추모하던 애도의 물결이 흘러넘치던 삼막천을 따라 다시금 내려 걸었습니다.

아직도 그날 먹었던 것이 '똥'인지 '참외'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듯 연화대 속에서 천연덕스럽게 지수화풍으로 환원한 스님의 법구, 영정속의 미소, 쩌렁쩌렁한 육성 그 어느 것이 대행 스님인지도 모르겠고, 이승과 저승, 생과 사가 도대체 뭔지를 모르겠습니다.

▲ 안양 한마음선원 대행 스님 영결식 안양 한마음선원 대행 스님 영결식 다비식
ⓒ 임윤수

덧붙이는 글 | 대행 스님의 영결식과 다비는 26일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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