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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이훤(김수현 분)과 허연우(한가인 분).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이훤(김수현 분)과 허연우(한가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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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무속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MBC <해를 품은 달>. 1월 26일 제8부에서 이 드라마는 특이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만성 질병으로 부부생활에 번번이 실패하는 임금 이훤(김수현 분)을 위해 이른바 '액받이 무녀'를 동원하는 장면이었다.

영문도 모르고 궁에 잡혀간 허연우(한가인 분)는 목욕재계한 뒤 임금의 침소로 끌려갔다. 무녀들과 함께 살기는 하지만 딱히 무녀라 하기도 힘든 연우를, 궁궐 사람들은 용한 무녀라고 생각하고 임금 앞에 끌고 갔다.

한밤중에 임금의 처소에 던져졌지만, '19금' 상황은 생기지 않았다. 아니, 생길 수도 없었다. 젊은 왕은 곤히 잠들어 있었고, 검을 찬 경호원은 방안에 버티고 있었다. 연우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잠자는 왕을 지켜보는 일뿐이었다.

이렇게 병든 임금이 용한 무녀와 한 방에 있으면 병이 치유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연우를 그 방에 밀어 넣었던 것이다. 임금 몸의 액(厄) 즉 재앙을 연우가 받도록 하기 위한 주술이었다. '액받이 무녀'란 말은 그런 의미였다.

<논어> 술이 편에서는 공자의 사상적 특성을 두고 "선생님께서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씀하시지 않았다"고 했다. 주자는 괴력난신을 괴이(怪異), 용력(勇力), 패란(悖亂), 귀신(鬼神)으로 풀어 설명했다. 이처럼 인간의 오감(五感)으로 이해할 수 없는 초현실적 현상들을 공자는 입에 담지 않았다.

공자가 그렇게 한 것은 그런 현상들을 무시해서가 아니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겸손한 판단에서였다. 그는 <논어> 선진 편에서 "사람도 제대로 섬길 수 없거늘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느냐?"며 "삶도 알 수 없거늘 어찌 죽음을 알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개인·가정·사회·국가 윤리 등에 집중하다 보니, 공자는 자연스레 초현실적인 것들과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샤머니즘처럼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과는 거리를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샤머니즘 없애려 한 사대부들... 왕실에서도 '액 막기 위해' 사용

MBC 수목드라마 <해를 품을 달>에서 액받이 무녀 허연우 역을 맡은 배우 한가인
 MBC 수목드라마 <해를 품을 달>에서 액받이 무녀 허연우 역을 맡은 배우 한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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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샤머니즘을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유보했지만, 공자의 조선인 제자들은 이를 확대 해석했다. 샤머니즘을 '이해해서는 안 되는 영역'으로 규정하며 대결적 자세를 취한 것이다. 유교로 무장한 사대부들은 조선팔도에서 샤머니즘과 관련된 것들은 죄다 없애버리려 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샤머니즘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안돼!"라는 한마디로 그것을 금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유교 선비들의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서민층은 물론 왕실에서도 샤머니즘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해를 품은 달>의 왕실처럼 조선 왕실에서도 액을 방지 또는 제거하기 위해 샤머니즘의 힘을 빌리곤 했다.

<태종실록>에 따르면, 태종 13년 5월 1일(양력 1413년 5월 30일)에 태종은 궁궐에서 왕실 사당으로 몸을 옮겼다. 5일 뒤인 5월 6일(양력 6월 4일)에는 부인인 원경왕후 민씨도 그렇게 했다. 이들이 이렇게 한 것은 '액을 피해야 한다'는 점쟁이의 권고에 따른 것이었다.

그보다 1년 전인 태종 12년 5월 3일(1412년 6월 11일), 태종은 경사(經師) 즉 법사 21명을 대궐로 불러 경(經)을 낭송하도록 했다. 목적은 독경을 통해 액(厄)을 내쫓는 것이었다.

이 법사들이 승려인지 샤먼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불교 승려들이 액을 쫓는 의식에 동원된 적은 많지만, 이 경우만큼은 불교 승려인지 아닌지 분명치 않다.

'경'을 읽었으면 당연히 불경을 읽었을 터이니 승려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조선 전기만 해도 신선교 경전들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불교 경전이든 신선교 경전이든, 액을 내쫓는 행위 자체는 샤머니즘에 속하는 것이다.

사실, 한국 불교는 샤머니즘과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산신을 숭배하는 산신각을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점을 증명한다. 샤머니즘에서는 신이 산을 통해 인간 세상에 강림한다는 믿음 때문에 산을 신성시한다. 불교 승려들이 액을 쫓는 의식에 동원된 사실 역시, 한국 불교가 샤머니즘과 명확히 구별되지 않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왕실이 샤먼을 동원해 액을 내쫓는 의식은 <고종실록>에도 기록되어 있다. 만성 질병 때문에 무녀의 도움을 받은 드라마 속 이훤 임금처럼, 병에 걸린 고종 임금도 비슷한 권유를 받았다. 고종 8년 11월 25일자(1872년 1월 5일) <고종실록>에 따르면, 궁궐 사람들은 왕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푸닥거리를 벌이자고 제안했다.

고종은 이 제안을 거부했다. 사람들에게 폐가 될까봐 그랬던 것이다. 그러자 영의정 김병학을 비롯한 조정 대신들은 이런 태도를 높이 평가했다. 조선 사대부들은 500년 내내 왕실의 샤머니즘 행사에 제동을 걸곤 했다. 그런데 스무 살 된 고종이 자발적으로 푸닥거리를 거부했으니, 이들로서는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사대부 집안도 급할 때에는 "어디 용한 사람 없어?"

액을 방지하는 의식이 포함된 영동굿 용왕맞이마당.
 액을 방지하는 의식이 포함된 영동굿 용왕맞이마당.
ⓒ 왕실도서관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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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머니즘에 의존해 액을 쫓는 행위는 왕실이나 서민층에서만 유행했던 게 아니다. 겉으로는 샤머니즘을 배척하는 사대부 집안에서도 막상 급할 때는 "어디 용한 사람 없어?"라며 샤먼을 물색하곤 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는 사례가 <태종실록>에 실려 있다. 어느 사대부의 부인이 집안의 액을 쫓기 위해 영험한 시각장애인 승려를 초빙했다. 이 스님은 불경을 읽는 방법으로 액을 제거하곤 했다. 절반은 승려, 절반은 샤먼이었던 것이다.

부인이 스님을 불러 액을 쫓아내는 일만 했다면, 이런 일이 실록에까지 기록되었을 리는 없다. 사대부 집안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액을 쫓는 의식과 함께 너무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기에, 이 일이 조정에 알려지고 실록에까지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이다.

태종 16년 2월 25일자(1416년 3월 24일) <태종실록>에 따르면, 부인은 시각장애인 스님을 초청한 뒤 "이것 좀 드셔 보세요"라며 밤을 건넸다. "밤 맛이 어떠세요?"라고 묻자 "매우 다네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부인은 "밤보다 더 맛있는 게 있는데요"(有勝栗之味焉)라고 말했고, 얼마 뒤 부인의 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조정에서는 두 남녀를 사형에 처하기로 결정했다. 원래는 곤장 80대를 때려야 하는데도, 하도 기막힌 사건이라 특별히 사형을 선고한 것이다. 사대부 여인이 관련된 일탈행위라서, 법규에도 없는 극형을 가한 것이다.

이들이 사형을 당한 것은 샤머니즘 의식을 거행했기 때문이 아니다. 실록의 등장인물들은 사대부 가문에서 그런 의식을 거행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흔한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이다. 사대부 부인이 승려와 간통을 범했다는 사실에만 주목했을 뿐이다. 

이런 사례에서도 나타나듯이, 사대부들도 샤머니즘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외형적으로는 "공자께서는 괴력난신을 말씀하시지 않았다"며 샤머니즘을 터부시했지만, 집안에 우환이 들어 다급해지면 남들과 똑같이 샤먼을 찾곤 했던 것이다.

왕실로서는 사대부들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으니 사대부들이 뭐라 하든 말든, 왕실에서는 샤먼이나 점쟁이의 제안대로 거처를 옮기기도 하고, 법사들을 불러 액을 쫓기도 하고, 임금의 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푸닥거리를 생각하기도 했던 것이다. 왕실로서는 자신들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에서처럼 무녀가 잠자는 왕을 빤히 내려다보는 방법으로 액을 쫓아내려 한 사실이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왕실이 액을 쫓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마다하지 않았으니, 은밀한 구중궁궐에서 무슨 일을 벌였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왕의 안위를 최우선시하는 왕실 사람들이라면 왕을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을 것이라고 보는 게 이치에 맞지 않을까.


태그:#해를 품은 달, #샤머니즘, #액받이, #액막이, #샤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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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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