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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던 중 사진을 찍으려 하자 장난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멜리사와 엠마 로스.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던 중 사진을 찍으려 하자 장난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멜리사와 엠마 로스.
ⓒ 멜리사 몬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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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선생님과 맞추면서도 책상 아래로는 연신 핸드폰 문자를 두드리는 아이들. 귀에 꽂은 아이팟, MP3 플레이어 음악에 고개가 절로 흔들리고 입으로는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아이들.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얼마든지 세상과 소통이 가능한 나만의 가상공간을 가진 아이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0대들의 모습이다. 이렇게 테크놀로지와 친숙한 10대들의 문화는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핸드폰은 제게 생명줄이죠. 그것을 두고 다닌다는 것은 마치 산소 공급을 끊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담배를 끊었어요. 차라리 그 돈으로 핸드폰 부가 서비스를 이용하려고요."

인도의 포털사이트인 indiainfo.com에 실린 10대들의 이야기다.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테크놀로지가 자기 몸의 일부처럼 되고 친근한 일상이 되어버린 10대들의 라이프스타일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저는 아이팟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어요."

미국 버지니아 주 해리슨버그 고등학교에 다니는 9학년생 니키 스트릭클러의 말이다. 니키는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은 버스 안에서 아이팟을 듣는다. 또 집에서는 아이팟의 스테레오 시스템인 아이홈을 이용해 음악을 듣는다.

이처럼 밥은 안 먹어도 매 순간 이메일을 체크해야 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마이스페이스', '페이스북'을 방문해야 하고,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고 아이팟을 귀에 꽂고 있어야 비로소 안심이 되는 아이들. 과연 이 10대들은 자신들을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는 테크놀로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부모들도 참여한 학교 클럽활동 파티에서 샌디와 함께 아이팟을 듣고 있는 엠마.
 부모들도 참여한 학교 클럽활동 파티에서 샌디와 함께 아이팟을 듣고 있는 엠마.
ⓒ 엠마 디나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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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보다 중독성 강한 테크놀로지... 떼어놓을 수 있을까?

지난 주, 해리슨버그 고등학교의 학교 신문인 <뉴스 스트릭>(News Streak)에서는 한 가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실험 명칭은 '테크놀로지 없이 1주일 보내기.'

컴퓨터, 핸드폰, 아이팟 등의 테크놀로지 사용이 일상화되어 있는 10대.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는 이 10대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실험은 어떻게 진행됐을까. <뉴스 스트릭>은 먼저 '테크놀로지 없이 1주일 보내기' 실험에 참가할 학생들을 모집했다. 그런 다음 자발적으로 참가한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말을 뺀 1주일 동안 다음과 같은 테크놀로지를 사용하지 말 것!
사용 금지 테크놀로지 : 음악 기기(MP3 플레이어, 아이팟, CD 플레이어 등), 학업 목적 이외의 컴퓨터, 핸드폰, 전자레인지, 텔레비전, 카메라, 시계, 헤어 가전제품(헤어드라이어 등).'

반면, 사용이 허용된 테크놀로지는 자동차, 가스레인지, 냉장고, 집 전화, 라디오였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위에 제시된 '사용 금지 테크놀로지'라 하더라도 50년 이상 된 것은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세상에! 50년 된 아이팟, 컴퓨터가 어디 있다고.

참고로, 학생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는 테크놀로지가 대중에게 처음 선보인 때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 가격 3995달러, 무게가 900g이나 되고 충전한 후에는 고작 30분만 이용할 수 있었던 최초의 핸드폰은 1984년.
▲ 399달러였던 최초의 아이팟은 2001년 10월 23일. 
▲ 최초의 MP3 플레이어는 1998년 여름에 나온 MPMan F10.
▲ 현대적인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는 1981년에 등장한 IBM 5150.
▲ 휴대용 CD 플레이어는 1970년대.
▲ 최초의 컬러 필름 카메라는 1907년.

결국 50년 된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라는 것은 테크놀로지를 아예 사용하지 않든지, 아주 오래된 구닥다리 텔레비전이나 필름 카메라 정도만 사용하라는 말이다. 

야외활동 중에 걸음을 멈추고 디카 사진을 찍고 있는 마샤.
 야외활동 중에 걸음을 멈추고 디카 사진을 찍고 있는 마샤.
ⓒ 올리비아 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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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컴퓨터·TV 없이 지내기 "삶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테크놀로지 없이 1주일 보내기'를 직접 체험한 10대 고등학생들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어떤 고백을 하였을까. 이 실험에 참여한 11학년 그레이스 블랙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 월요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모든 게 좋았다. 나를 깨워주는 달콤한 멜로디 없이 등교 준비를 해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가방 속에 들어가야 할 '사랑하는' 휴대폰을 침대 옆에 두고 가야 하는 것도, 학교 가면서 완전한 침묵 속에서 운전해야 하는 것도 괜찮았다. 정말 괜찮았다. 한나절이 지날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런데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하나. '휴대폰이 필요해. 정말 휴대폰이 필요하다고. 진짜라니까. 난 정말로 휴대폰이 필요하다고.'

몇 달 동안 친구를 못 만나도 핸드폰만 있으면 친구가 옆에 있다는 느낌이 들지. 굳이 문자나 전화를 안 해도 수 초 만에 연락할 수 있으니까. 너도 알다시피 핸드폰은 24/7(24시간, 7일 간이라는 의미)로 쉬는 날 없이 언제나 사람들을 연결해주잖아.

그런데 나는 지금 핸드폰이 없으니 연락이 안 되는 거라고. 나,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어! 핸드폰은 사람들을 연결해 줄 뿐만 아니라 하나로 묶어주는 딱풀 같은 거라고.  

여름 방학을 앞두고 친구네 집에서 열린 종업식 파티에서 '셀카'를 찍는 엠마와 멜리사.
 여름 방학을 앞두고 친구네 집에서 열린 종업식 파티에서 '셀카'를 찍는 엠마와 멜리사.
ⓒ 엠마 디나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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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요일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나았다. 아주 조금. 사람들과 핸드폰으로 연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여전히 힘들다. 하지만 점점 이 상황에 적응해 가고 있다. 아, 심심해! 심심하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무심코 텔레비전을 켜고 말았다. 그러면 안 된다는 사실을 그만 잊어버린 것이다.

아, 무서운 습관이여! 텔레비전을 끄고 이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층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다시 내려가서 텔레비전 앞에 앉고 싶었다. 

▲ 수요일


10대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테크놀로지인 아이팟 매장에서 손자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이팟을 고르고 있는 할아버지.
 10대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테크놀로지인 아이팟 매장에서 손자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이팟을 고르고 있는 할아버지.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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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말 음악을 듣고 싶은 날이다. 미치도록 듣고 싶은 노래. 따라 부르고 싶은 아름다운 멜로디.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아, 한 가지 기쁜 소식. 무조건 음악은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차 안에서는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정말 기뻤다.

▲ 목요일

전자레인지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그만 까먹었다. 배가 고파서 음식을 덥히다가 생각이 난 것이다. '아, 전자레인지 쓰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오 마이 갓.'

▲ 금요일

마침내 기다리던 그날. 이제 핸드폰도, CD도, 전자레인지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상했다.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면 안 되는 상황이 이제 조금 익숙해졌는데….


이번 실험을 통해 나는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강한 사람인 줄 몰랐는데 나는 강했다. 나는 이제 전보다 테크놀로지를 덜 사용하게 될 것 같다. (지금뿐인가?)

사실 이번 실험 기간 동안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길게만 느껴졌던 일주일 동안 내가 벌써 적응한 걸까. 테크놀로지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내 삶이 끝난 것으로 생각했지만 난 아직도 이렇게 생존하고 있다. 그래, 그레이스 넌 해낸 거야.

말이 1주일이지 기껏해야 닷새인데 테크놀로지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고 삶이 끝난 줄 알았다는 고백을 들으니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그동안 얼마나 테크놀로지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기에 말이다.

'테크놀로지 없이 1주일 보내기'를 실험한 뒤 참가자들의 체험담을 실은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신문 <뉴스 스트릭>.
 '테크놀로지 없이 1주일 보내기'를 실험한 뒤 참가자들의 체험담을 실은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신문 <뉴스 스트릭>.
ⓒ <뉴스 스트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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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는 삶의 전부가 아니다

반면, 10대들에게 꼭 필요한 테크놀로지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의젓한 학생도 있다. 9학년생 조즈 도냐휴다.

"테크놀로지가 제 생활을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 삶에서 핸드폰이나 컴퓨터가 전부는 아니잖아요. 사실 그것보다 더 좋은 것들이 주변에는 많이 있어요. 그런 것들을 직접 경험하면서 사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10대들뿐 아니라 청장년에 이르기까지 테크놀로지 위력 앞에 꼼짝 못하고 있는 우리 현대인들. 이들에게 미국 고등학생들이 체험했던 '테크놀로지 벗어나기'를 한 번 시도해 보라고 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테크놀로지가 문명의 이기로서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혹시 이것 때문에 잃는 것은 없는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건강 사이트 revolutionhealth.com에 실린 기사로 10대들을 위한 캠프를 소개하고 있다. 이 캠프에는 게임기나 핸드폰을 가져가면 안 된다고 한다. '핸드폰이나 다른 전자 제품 없이 아이들이 살 수 있을까?'
 건강 사이트 revolutionhealth.com에 실린 기사로 10대들을 위한 캠프를 소개하고 있다. 이 캠프에는 게임기나 핸드폰을 가져가면 안 된다고 한다. '핸드폰이나 다른 전자 제품 없이 아이들이 살 수 있을까?'
ⓒ revolutionhealt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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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테크놀로지, #핸드폰, #아이팟, #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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