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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노인학 강의

내가 퇴직한 뒤부터 아내는 틈틈이 노인학 강의를 한다. 그 요지는 우선 '홀로 살기'에 익숙해질 것과 '버리고 살기'를 실천하란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는데, 자식들에게 옛날과 같은 효를 받을 생각은 해서 안 된다는 것과 자식이 찾아주면 반갑고, 안 찾아주면 더 반갑게 살 수 있는 자세를 터득하라는 것이다.

다행히 아내는 자기가 나보다 더 오래 살면 괜찮으나 그게 하늘이 하는 일이지 어디 사람 마음대로 되느냐, 만일을 미리 대비하는 게 현명하다고 귀에 닳도록 강조한다. 그러면서 강의만 아니라 실습이라도 시키는 양, 이런저런 일로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고교 동창을 만나고 온 뒤 거기서 얻은 유인물을 건네고는 읽어보라고 한다. 그 요지만 일부 옮겨본다.

요즘은 50대와 60대가 중년이고, 80대와 90대가 노년이 시대가 되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노부모 모시기에 지쳐 있습니다. 그들에게 효를 받을 생각만 하면 안 됩니다. 뭘 바라는 사람에게는 주기 싫은 법입니다. 그저 효도라는 보물을 아끼고 아껴서 보자기에 싸 장롱 깊이 보관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인생을 계절로 비유한다면 노년은 포기의 계절입니다. 삶이란 매 순간 익숙한 것과 결별을 잘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집니다. 돈만 많다고 노후가 보장되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떠난 부자에게 남는 것은 돈을 노리는 사람뿐이요, 소외와 고독뿐입니다.

지금은 노인들이 짐이 되어버린 시대입니다. 그러니 노인들이 말썽 안 부리고 있는 듯 없는 듯 소리 없이 살아가는 게 자식들을 위한 길입니다. 그렇게 사는 게 아름다운 노년입니다. 노년의 삶을 잘 지내는 요체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고 규모를 줄이는 것입니다. 일도 줄이고 음식도 줄여야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죽는 게 아니라 안 죽는 것입니다. 너무 오래 살아서 동년배는 물론이고 자식 죽는 것까지 보면 그야말로 무서운 일입니다.


노년이나 노년을 앞둔 이들은 한번 음미해서 읽어볼 만한 글로 요즘의 세태를 잘 그린 듯하다.

늙음은 생로병사 사고(四苦)의 하나

▲ 거리에서 만난 어느 노인의 뒷모습
ⓒ 박도
일찍이 늙음은 생로병사 사고(四苦)의 하나로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길이다.

생활수준과 의료수준의 향상, 복지의 발달로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수명도 남성 74.4세 여성 81.8세로 이미 선진국 수준이다. 하지만 이제는 장수가 축복인 시대는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는 지난날에는 대가족제도로 대부분 노인들의 노후 문제는 자식들에게 의존하는 걸 당연하게 여겨왔다.

하지만 생활수준 향상과 민주화 인권신장, 복지향상은 대가족제도를 무너뜨리고 소가족제로, 다시 핵가족으로, 이제는 가족해체에 이르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다 보니 노후를 '나 홀로' 보내는 이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연초 미국에 머물면서 그곳 신문을 보니까 50대 이상 남성 가운데 절반 정도가 배우자와 사별, 또는 이혼으로 혼자 산다는 보도를 보았는데,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에도 이미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현실이다.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혼자 사는 노인을 흔하게 볼 수 있으며, 고장마다 양로원을 비롯한 실버타운이 필수 시설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가의 복지정책 확대로 노인들이 기초생활은 보호받고 있으나 노년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서구처럼 자살하는 사람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엊그제도 "70대 독거노인, 전세보증금 기탁하고 자살"이라는 보도는 남의 나라가 아닌 바로 우리 이웃 이야기다.

하늘이 내린 효부

지난 주말 올해 98세인 고교시절 은사의 부음을 받았다. 부음을 전한 이는 은사의 손자로 먼 거리에 그냥 알린다고 하였지만, 내 어찌 기별을 받고 가만히 있으랴. 내가 사는 안흥에서 장례식장인 순천까지는 교통도 불편한데다가 피서철이요, 주말이라 오가는 길이 무척 힘들었지만 참 잘 다녀왔다.

그 첫째는 은사의 영전에 조사를 바치면서 운구를 도와드린 점이요, 그 둘째는 은사를 끝까지 봉양한 며느님을 만난 점이다. 선생님은 정년퇴직 후 71세에 여수시 율촌면에 사는 아들 내외에게 내려온 뒤 27년을 봉양 받고는 돌아가셨다. 지난해 선생님을 찾아뵙자 며느님이 온갖 수발을 다 드셨는데, 선생님은 당신 며느님이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하늘이 내린 효부'라고 극찬하셨다.

빈소에 헌화한 뒤 며느님(양재순·69)에게 그동안 시아버님 모시느라 고생하셨다고 인사를 드렸다.

"아니라오. 당연한 일이지라오. 저보다 아버님이 많이 깝깝하셨을 거구먼요. 저는 학교 문전에도 가 보지 못한 까막눈이라서 그동안 얼매나 답답하였겠소. 한 보름 더 계시다가 가셨으면 한 더위는 피하셨을 텐데…. 그래도 아버님이 공덕을 많이 쌓아 어제오늘 하늘이 (비를) 참아준께 고맙구먼요."

빈말로 하는 인사가 아니라 슬픔에 잠긴 진지한 얼굴로 하는 말이었다. 시아버님이 아흔여덟을 살다 가셔도 섭섭해하는 며느님, 그 시아버님을 이십칠 년 동안 봉양하고도 당신의 정성이 부족함을 탓하는 며느님 앞에 나는 그저 말문을 잃고 두 손을 잡아드리며 고개 숙였다.

순천까지 가는 길에 차를 대여섯 번 갈아탔고, 돌아오는 길에도 마찬가지로 번거롭고 길이 막혀 시간이 많이 지체했지만, 그 며느님 말씀이 내내 머릿속에 맴돌아 조금도 힘든 줄도 지루한 줄도 몰랐다.

마치 내 집 뒷산 숲 속에서 홀로 활짝 핀 원추리꽃 한 송이를 발견한 기쁨이었다.

▲ 내 집 뒷산 숲 속에 핀 원추리꽃
ⓒ 박도

태그:#며느리, #노인, #공경, #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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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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