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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잔치가 끝나고 주민들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 성미산 대책위
지난 토요일(8일) 오후 3시 마포구 성미산에서는 ‘성미산 배수지 공사중단’ 기념 마을잔치가 열렸다.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200여명의 지역 주민들이 참석해 준비한 음식을 나누고, 지난 2년 3개월간의 노력을 돌아보며 기쁨을 나누었다.

풍물패의 길놀이로 시작한 마을잔치 사회는 주창복(43·성산동)씨가 맡았다. 지난 3월 13일 용역과의 충돌에서 갈비뼈를 부상당했던 그는 2년 전 이곳에서 우리가 성미산과 한 약속을 다시 한 번 외쳐보자며, "성미산아, 걱정마. 성미산아, 우리가 지켜줄게. 성미산아, 사랑해"를 선창했다.

올 1월 29일 벌목 이후 성미산 주민들과 함께 성미산 지키기에 함께 해 온 서울환경운동연합의 양장일 사무처장이 처음으로 연단에 섰다. 그는 “여러분들께서 함께 싸워주었기 때문에 오늘이 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심재옥(민주노동당) 서울시의원도 “3월 13일 포크레인과 용역들에 맞서 성미산 주민들의 눈두덩이 찢어지고, 갈비뼈가 나가던 날, 행정 속에 사람이 있도록, 사람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서울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오늘 양장일 처장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유를 알겠다"며,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이야말로 성미산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미산은 이제 주민들의 손으로 다시 살아났지만, 강남순환도로 공사로 위기에 처한 관악산, 우면산을 지키는데 이런 어려운 투쟁이 없도록 함께 해 주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성구(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 의원은 ‘지역주민들이 성미산을 지키기 위해 시위도 하고 다치기도 한 일’을 알고 있으며 “서울시 상수도 본부가 성미산 공사요청을 했을 때, 주민설득이 안 되었으니 안된다고 했다"며, "망가진 성미산을 살리는데 미력이나마 보태기위해 이 자리에 왔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여러분과 함께 마포의 하나뿐인 성미산을 지키는데 힘닿는 대로 노력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5월 17일 경성중고등학교 강당에서 가진 주민공청회 때, 현재 마포와 은평의 서북지역은 추가 배수지 건설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알리는데 일조한 대책위 정책팀의 권규대 변호사는 "성미산 지키기가 만 2년 3개월, 횟수로 3년이 되었다"며, “지금까지 함께 싸워온 각 개인들과 단체들의 노력의 결실이고, 앞으로 성미산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도토리' 방과후(학교) 어린이들의 ‘해야, 해야’, ‘숲속에는’. ‘성미산아’ 등 노래 공연이 이어졌다.

성미산 지키기에 참여해 왔고 이번 행사를 함께 준비한 이연찬(69·연남동)씨도 “우리 일이 잘 되어 보람있다”며 “우리가 얼마나 노력했습니까? 우리 당당하고 떳떳하게 자신들에게 박수를 보냅시다”라고 해 참석자들을 감회에 젖게 하였다.

이 자리에는 3월 13일 용역과의 충돌 때 완충역할을 했던 마포경찰서 담당자도 나와 “성미산 지킴이 여러분들의 노력으로 오늘 이 자리가 있는 줄로 알겠다”며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김종호 대책위 위원장은 서울시의회 의원들과 나눈 담소에서 ‘250억 정도의 서울시 예산이면 성미산을 매입해 생태공원으로 복원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며, "이제 성미산을 생태공원으로 만드는 일에 여러분이 함께 해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노력의 일환으로 11월 16일에는 성미산 모니터링이, 11월 22일에는 서울시 예산으로 50여명의 미술대 대학생들이 성미산 중간에 난 50m 도로 벽에 벽화를 그려주기로 했다”며, 당일 주민들의 참여를 부탁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김종연(47·성산동)씨는 “처음엔 반신반의했어요. 공사를 막을 수 있을까. 한 사람이라도 힘을 합치기 위해 촛불시위 때나 행사에 아이들을 데리고 꼭 참석했지요”라고 지난 일들을 회상했다. “너무 기뻐요. 마포구에 하나밖에 없는 산이잖아요. 훼손되지 않고 공원으로 자연 그대로 놔두었으면 좋겠어요”라고 소망을 밝혔다.

성미산의 일부인 ‘비둘기산’에서 역도부 회원으로 13년간 운동을 해 온 최재연(41·홍제동)씨도 2001년 7월 처음 성미산 개발 반대운동이 시작될 때부터 참여해왔다. 그는 “2년 전 처음으로 배수지 공사 소식을 듣고, 서로 모르던 주민 5명이 모여 이야기를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며 감격해 했다.

“저는 충남 홍성출신인데, 성미산의 황토흙은 서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흙이에요. 한강변이라 그런지 붉은 황토 흙 특유의 냄새가 나죠. 그 고슬고슬한 양질의 토양은 쉽게 찾을 수 없어요.…성미산은 제 마음의 고향이에요. 서울 올라와서 힘들 때마다 산에 올라 그 황토흙 냄새를 맡았지요. 성미산을 곁에 두고 살았어요”라며 앞으로도 성미산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주민들과 남기를 소망했다.

올 2월 홍제동으로 이사한 그는 연세대 뒤의 안산을 통해 회사가 있는 서울역까지 걸어 가기도 하는데, 조림이 잘 돼 있는 안산이지만, 그 냄새와 느낌은 성미산에 비길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성미산을 찾는다고 했다.

성미산은 그를 찾는 모든 이에게 잊을 수 없는 그리움을 남긴다. 그 그리움과 애틋한 마음이 성미산을 지켜낼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았을까. 부드러운듯 하면서도 강인한 자연의 마음을 꼭 닮은 성미산 사람들, 성미산은 이제 온전히 그들의 따뜻한 품안에서 숨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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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동의 없이 성미산 배수지공사 강행

주민들이 성미산 지켜내기까지
2년 3개월만에 얻은 성과

▲ 지난 3월 30일 나무심기과 숲속음악회 행사에서 어린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전민성

지난 2001년 7월 처음으로 배수지공사에 대해 알게 된 지역 주민들이 ‘성미산을 지키는 주민연대모임’을 구성해 두 달 동안 2만명의 주민 반대서명을 받고, 2천명 이상의 주민들이 참여한 두 번의 숲속음악회를 개최하면서 성미산을 파괴하지 않는 대안을 요구했다.

하지만 서울시 상수도본부는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올 들어 가장 추웠던 1월 29일 새벽, 두 시간 반 동안 만여평에 자라던 30년 이상 된 수목 1000그루를 잘라 내었다.

서울시의 기습벌목 이후 주민들은 성미산 정상에 텐트를 치고 조를 짜서 추운 겨울을 나며 성미산을 지켰고, 주민합동차례, 시청 앞 규탄집회, 대보름맞이 행사, 망원역 촛불집회 등을 진행하며 성미산 지키기를 계속했다.

그러나 벌목 후 한 달이 조금 지난 3월 13일, 서울시 상수도본부는 100여명의 용역 인력과 대형 포크레인을 앞세워 공사를 강행하려 했고, 이를 막으려는 주민들과 충돌, 10여명의 주민들이 중경상을 입어 병원에 후송되기도 했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어린이 두 명을 포함한 지역주민 일곱 명은 지하철에서 출근 중이던 이명박 서울시장을 기습 면담해 공사중지와 성미산 보존을 요구했다.

이후 넉 달 동안 주민들은 밤에는 아빠들이 낮에는 엄마들이 돌아가며 계속 산을 지켰고, 식목일 하루 전 날에는 지역주민과 서울시민 500여명이 함께 성미산에 대규모 나무심기행사와 음악회를 가졌다.

결국 주민들의 희생과 끊임없는 노력의 대가로, 상수도 본부와 전문가, 대책위가 함께 참여하는 주민공청회를 이끌어냈고, 현재의 급수체계로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었다.

크고 작은 행사 이외에도 주민들은 올 3월부터 현재까지 매주 토요일 성미산 숲속학교와 자연체험 안내자교실 등을 이어오며 성미산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 10월 16일 서울시의회 임시회에서 서울시 상수도본부는 “인근 지역의 배수지로도 수돗물 공급에 지장이 없고, 상암택지 개발과 DMC(디지털 미디어 시티) 사업의 개발 추이에 따라 결정할 것이므로, 성산 배수지 건설은 일단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주민들이 처음으로 성미산 지키기 운동을 시작한 지 2년 3개월만에 얻은 성과였다. / 전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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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동네의 성미산이 벌목되는 것을 목격하고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이주노동자방송국 설립에 참여한 후 3년간 이주노동자 관련 기사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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