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성미산의 나무들이 베어진 지 한 달을 하루 앞두고 성미산을 찾았다. 지난 주부터 이번 주 월요일까지 세 번이나 포크레인의 성미산 진입을 막아낸 성미산 지킴이들과 주민들은 평온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공동육아협동조합의 아빠들이 밤부터 새벽 7시까지 산에서 교대로 불침번을 선지 30일째 되는 날이다. 오전 7시부터 오전 11시까지는 용빈아빠가 산을 지키고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그 외의 주민이나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산을 지키고 있다.

기자가 도착한 오전 9시 반 산 정상에는 각기 다른 이유로 산을 찾은 동네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 몸으로 포크레인 저지했던 김상기씨
ⓒ 전민성
산 정상 텐트에는 지난 주 목요일 1차 공사저지때 포크레인 삽위에 올라가 공사를 막아낸 남수 아버님이 계셨다. 열 두살 '무리'와 여덟살 남수의 아빠인 김상기(39,성산동)씨는 지난 2월 20일 목요일 오전 8시 “포크레인 두 대가 산으로 이동 중이라는 연락을 받고 급히 현장으로 달려왔는데 현장에 주민이 세 사람밖에 없어서 급한 마음에 세준아빠랑 포크레인에 매달렸다”고 증언했다. “그렇게 한 20분쯤 있으니까 사람들이 몰려오더군요”라며 겸언쩍게 웃었다.

성미산 주변에서 산 지 5년이 된 김상기씨는 “산이 있어서 어른, 아이들이 올 수 있는 것 아니겠냐”며 올 봄에는 성미산 아래 텃밭에서 상추, 알타리, 무우 등을 가꾸어 먹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산 정상 텐트 앞에 설치된 모금함에 두 아이를 데리고 온 한 아빠가 돈을 넣었다. 지난 주 망원역에서 나눠 준 전단을 보고 처음 성미산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는 염철호(44, 망원동)씨는 “산의 나무들이 이런 정도로 죽은 줄은 몰랐다”며 “이건 말이 안 되는 소리다”고 말했다. “이토록 빽빽히 들어선 주거지역에서 유일한 허파 역할을 해 오던 산을 이렇게 만들어 놓다니”라며 밑둥이 잘린 채 나뒹구는 나무들을 허탈하게 바라보았다.

“군대에서 몸을 다치기 전 강원도의 여러 산들을 즐겨 찾았지만 아무리 벌목을 하는 산이라도 이런 정도로 나무들을 깎아놓은 것을 보지 못했다”며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설 연휴 전 기습벌목으로 2시간만에 2400여 그루의 나무들을 베어 성미산을 민둥산으로 만들어 놓은 시 당국자들에 대한 깊은 실망을 표시했다. “이건 주민들의 반대 여론을 꺾기 위한 목적이 큰 것 같다”며 배수지 공사로부터 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철저한 감시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작년 여름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산에 올라와 봤다는 염지원(동교초 4)양과 염지훈(동교초 2)군은 “초록 잎사귀들이 달린 나무들과 잡초, 풀 등이 있을 것으로 기대 하고 올라왔는데 산에 나무들이 베어진 것을 보니 정말 심각한 것 같아요”라고 토로했다.

탠트가 쳐진 산 정상에서 나무가 베어진 동쪽 산등성이를 바라본 엄필섭(41, 성산동)씨의 입에서는 “이런 죽일 놈들!”이란 탄성을 나오기도 했다. 격일로 24시간 일하는 직업 탓에 쉬는 날이면 산에 올라 운동을 해온 지 1년이 넘었다며 한 달 만에 산을 처음 찾았는데 “정말 개탄할 노릇”이라고 표현했다.

“마포에서 유일하게 주민들이 숨쉴 수 있는 공간인데, 아무리 시에서 공사를 하겠다고 해도 구청에서 허가를 하지 않으면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선거 때는 성미산을 지키겠다고 해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마포구청장의 탓도 크다고 말했다.

▲ 전시한 그림에 비닐을 씌우고 있는 이레와 혜인
ⓒ 전민성
얼마 전 성산동으로 이사온 친구 김이레(연희초 6)양과 함께 처음 산을 찾게 된 모혜인(연히초 6)양도 “나무가 베어져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며 “어른들은 자연을 보호하라고 그러면서 자연보호도 안하고 속상했어요”라며 아쉬운 마음을 나타냈다.

충북 음성이 고향이라고 소개한 송금순(79,서교동)씨도 “고향에서도 몇 년 전 주민들이 광산개발을 반대해 싸워 결국 승리했다”며 성미산을 지키는 일에 대한 희망을 기대했다.

낮 시간동안 정상의 탠트를 지킨 예빈어머니(35)는 대학원에서 미술치료를 공부하고 있다. 오후 5시, 산을 내려갈 시간을 한 시간 남기고 “두 시간씩 서서 열성적으로 말씀해 주시는 동네 할아버지들이 제일 인상에 남는다”며 “재미있었다”고 했다.

오후 4시쯤 산 정상에는 공사 제어측정을 하기위해 공사관계자 서 너명이 올라왔으나,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과 집요한 논쟁 후 5시쯤 철수하고 산을 내려갔다.

▲ 철수하는 공사 관계자들
ⓒ 전민성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3년 동네의 성미산이 벌목되는 것을 목격하고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이주노동자방송국 설립에 참여한 후 3년간 이주노동자 관련 기사를 썼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