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 기사는 심층연재 <조선일보-IPI 커넥션의 비밀>의 그 첫번째입니다....편집자 주)

언론인 대량학살 장본인과 악수하는 IPI
갤리너 IPI 사무총장은 81년 9월 22일 청와대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과 만난 뒤 한국을 '언론자유 선진국'으로 평가했다. ⓒ 출전 <전두환 대통령, 세계 속의 한국을 향한 의지와 헌신>

"국제언론인협회(IPI)는 잡놈들의 모임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생전에 방일영 당시 조선일보 사장에게 했던 말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30년이 흐른 지금, 언론인들의 친목도모를 위한 임의단체에 불과한 IPI 때문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시끄럽다.

악명 높은 긴급조치 9호가 발동되던 유신 말기에도 한국을 '언론 선진국'으로 '찬양'했던 IPI가 갑자기 지금에 와서야 한국을 '언론 후진국'으로 '매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지금 조선일보가, 그런 '수준 이하의 행각'에도 불구하고 정작 박정희에게서까지 "잡놈"이라는 욕설을 들어야 했던 IPI 사절단의 일거수 일투족과 한 말씀 한 말씀을 '가장 빨리, 가장 많이, 가장 생생히' 보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불가사의한 여러 가지 의문을 풀기 위한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이미경 의원(민주당)이다. 이 의원은 9월 10일 문화관광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행한 정책질의를 통해 "IPI는 과연 공정하고 권위있는 언론단체인가?"라고 물은 뒤 "IPI의 현재 모습을 보면 언론단체로서의 기본적인 금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IPI는 '불공정할 뿐만 아니라 권위도 없는 별 볼 일 없는 단체'라는 말이다.

이미경 의원은 지난 9월 7일 'IPI, 그 오욕과 왜곡의 역사를 말한다'라는 분석보고서를 발표함으로써, 그 전날 IPI가 한국을 '언론탄압 감시대상국'으로 평가한 것이 얼마나 허구에 찬 것인지를 낱낱이 폭로한 주인공. 이 의원은 9월 10일에도 9월 7일 보고서에 새로운 내용을 첨가한 정책보고서 'IPI와 한국언론의 관계, 그 숨은 진실을 밝힌다-IPI 특별조사단에 보내는 반론'을 발표했다.

기자는 이미경 의원이 발표한 두 개의 보고서와 그것을 기초로 한 추가취재를 통해 '조선일보와 IPI의 커넥션'에 대한 진실에 접근하기로 했다.

취재를 하며 우선 기자가 주목한 단서는 다음과 같이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1) IPI 한국위원회 사무국이 조선일보에 의해 완전 장악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인가.
(2) IPI 본부가 한국 정부에 공문을 보내거나 성명을 발표하면서 조선일보와 '부적절한 밀착관계'를 가졌다는 것은 사실인가.

이제부터 단서를 하나씩 풀어가 보도록 하자.

(1) IPI 한국위원회 사무국이 조선일보에 의해 완전 장악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인가

우선 IPI 한국위원회 실무의 핵심 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위원장과 사무국장을 조선일보 인사가 독점하고 있는 것은 사실로 확인됐다. 실제로 방상훈 사장(IPI 본부 부회장 겸임)과 최승우 기자(조선일보 사장실 근무)가 위원장과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직전 사무국장도 조선일보 인사(고종원 기자)였다. 안병훈 조선일보 부사장, 김대중 조선일보 주필 겸 이사, 최우석 기자의 이름도 정회원 명단에 들어가 있다.

다음은 IPI 한국위원회가 기자에게 제공한 회원명단이다.

위원장: 방상훈(조선일보 사장)

부위원장(2명): 윤세영(SBS 회장) 홍석현(중앙일보 회장)

이사(17명): 김경철(KH내외경제 사장) 권호경(CBS 사장) 김근(연합뉴스 사장) 김대성(제주일보 사장) 김상훈(부산일보 사장) 김성열(동아일보 고문) 김종태(광주일보 회장) 박권상(KBS 사장) 송병준(세계일보 사장) 오명(동아일보 회장) 윤종서(대전일보 사장) 장재국(한국일보 회장) 장준봉(경향신문 사장) 조희준(스포츠투데이 회장) 최승익(강원일보 사장) 최학래(한겨레 사장) 현소환(IPI 종신회원)

감사(2명): 김영용(한국경제신문 사장) 장대환(매일경제신문 사장)

회원(25명): 고제철(광주매일 회장) 금창태(중앙일보 부회장) 노승숙(국민일보 사장) 김대중(조선일보 주필·이사) 김명수(경인일보 사장) 김영렬(서울경제신문 사장) 김영일(국민일보 회장) 김재호(동아일보 전무) 김정국(문화일보 사장) 김중배(MBC 사장) 김학준(동아일보 사장) 박명훈(경향신문 편집국장) 백인호(YTN 사장) 서창훈(전북일보 사장) 신화수(인천일보 사장) 송도균(SBS 사장) 안병훈(조선일보 부사장) 안형순(강원도민일보 사장) 엄기영(문화방송 보도본부장) 이제훈(중앙일보 사장) 장재근(한국일보 부회장) 전만길(대한매일신보 사장) 전병채(KBS 보도본부장) 정재완(매일신문 사장) 최우석(조선일보 기자)

준회원: 김용술(한국언론재단 이사장)

사무국장: 최승우(조선일보 기자)


여기서 특별히 시선을 끄는 것은 조선일보의 평기자까지 IPI 한국위원회의 정회원에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그 장본인은 바로 9월 10일자 조선일보에 '기자수첩-IPI 訪韓이 남긴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쓴 최우석 기자.(소속을 '경제과학부'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이번 IPI 조사단의 가이드 겸 통역자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기자 신분이면서도 양측의 '비공개' 합의에 따라 기자가 들어갈 수 없는 면담에까지 참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위의 명단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IPI 전체 회원(48명)의 주류는 출신성분상(?) 신문사와 방송사의 오너(사주), 매니저(경영자) 등 언론계의 '최상층'이다.(42명) '중간층'에 비유할 수 있는 주필, 편집국장, 보도본부장이라고 해봐야 김대중(조선일보 주필), 박명훈(경향신문 편집국장), 엄기영(MBC 보도본부장), 전병채씨(KBS 보도본부장) 등이 고작이다.(4명)


▲9월 10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IPI 정회원' 최우석 기자의 글.
그런데 언론계의 '최하층'이라고 할 수 있는 평기자로서는 유일하게 최우석 조선일보 기자가 명실상부하게 정회원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상식적으로 볼 때, 최 기자의 존재는 매우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회원이 될 수 있었을까. 이와 관련 언론계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기자에게 "최 기자가 회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영어를 잘 못하는 방우영 회장을 안내하고 보좌하기 위한 특별한 조치의 결과"라면서 "최 기자가 이번 IPI 방한 조사단의 가이드 겸 통역자로 활동한 것이 그 반증"이라고 설명했다.

그 제보자에 따르면, 최우석 기자는 과거 정부에서 외교관을 지낸 최모 씨의 아들이라고 한다. 외교관 아버지를 둔 덕분에 영어 등 외국어에 능통했을 뿐만 아니라 회사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IPI 회원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라는 것이다.

최우석 기자는 두 번째 단서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거니와, 자세한 설명은 뒤에서 하기로 하겠다.


(2) IPI 본부가 한국 정부에 공문을 보내거나 성명을 발표하면서 조선일보와 '부적절한 밀착관계'를 가졌다는 것은 사실인가

최근 IPI가 한국을 방문해 벌인 행위는, 양(量)으로나 질(質)로나 상식을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지나쳤다는 것이 대체적 여론인 듯하다.

우선 양적인 측면. 한국이 IPI에 가입한 61년 이후 약 40년 동안 IPI가 언론탄압과 관련하여 한국 정부에 항의서한을 보낸 것은 4회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3년 6개월 동안 그 횟수는 자그마치 8회나 된다.

다음은 질적인 측면. 항의성 서한이나 성명이라는 것도 99년의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 탈세사건, 이번의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 탈세·횡령사건 등 극히 '죄질이 나쁜' 족벌사주를 비호하려 했던 것이 대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IPI가 보낸 항의서한이 실제로는 청와대보다 조선일보에 더 빨리 전달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됐다.

단적인 사례 하나. 지난 8월 8일 IPI가 탈세사주 구속과 관련해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낸 항의서한이 청와대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5시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 비슷한 시간에 발간된 다음 날짜 조선일보 초판에는 벌써 항의서한 전문이 번역돼 실려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간신문의 초판 마감시간은 대략 오후 4시 30분경. 결국 조선일보가 그 문서를 미리 가지고 있었거나 사전에 전달받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사실 이러한 사례가 발견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이 내용에 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조선일보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찾아 보라!"

IPI가 배포한 보도자료에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면 독자들은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놀랍게도 그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 7월 1일 IPI는 자신들의 사무실이 있는 오스트리아 빈 발로 보도자료(Press Release)를 발표했다. 그 제목은 이름하여 'IPI, 한국 사법 및 정부 당국에게 탈세에 대한 사법처리를 신중하게 진행해 줄 것을 요청'이었다. 그런데 보도자료 맨 끝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Further details of this case can be found at:http://english.chosun.com"(이 내용에 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조선일보 인터넷 영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찾아 보라)


IPI는 결국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선일보와의 커넥션'의 일단을 드러내는 실수를 한 것이다. 이와 관련, 국정홍보처는 바로 다음날인 7월 2일 즉각 'IPI 보도자료(7.1일자)에 대한 정부 입장'이라는 보도자료를 내고 "IPI가 조선일보 영문 사이트를 명기해 주요 정보 소스로 조선일보를 활용하고 있음을 스스로 밝혔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정녕 '실수'였을까? 혹시 조선일보 관련인사가 그 보도자료를 직접 작성한 것은 아니었을까?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IPI 실무자가 보도자료를 작성했다면 그런 내용을 집어넣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우리는 이미경 의원이 9월 10일에 행한 다음과 같은 정책질의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IPI는 7월 1일 보도자료에서 '자세한 정보는 조선일보 영문 사이트를 참조하라'고 했습니다. 주요 정보 소스로 조선일보를 활용하고 있음을 스스로 밝힌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IPI의 항의서한을 작성하는 주체가 바로 조선일보 기자라는 것입니다."

아니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말인가? 그 의문은 조선일보 사내보(社內報)인 <조선일보사사보> 올 2월 9일자에 실린 최우석 사우(社友) 인터뷰 기사를 보면 곧 풀린다. 사보 인터뷰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최우석 사우(정치부 기자)가 2001년 1월 29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IPI 제50차 연례총회 이사회에서 '결의문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선임됐다.

-IPI 결의문위원회 상임위원의 역할은?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언론탄압과 침해사례를 수집·보고하고 항의서한 및 결의문을 작성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죠."

-결의문위원회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습니까.
"핀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IPI 사무국 담당자를 포함 모두 4명으로 구성되어 있죠. 각각 유럽, 아프리카, 미주, 아시아의 언론탄압·침해사례를 수집하고 있으며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의견을 나누고 있습니다."

-최근의 주된 관심은 어느 쪽입니까.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언론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상임위원으로서 당연한 임무라고 봅니다."


▲ '보다 자세한 내용은 조선일보 닷 컴에서 찾아보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IPI 보도자료 전문. ⓒ 오마이뉴스
우리는 최우석 기자가 <조선일보사사보> 인터뷰에 너무나 당당하게 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거니와, 그는 결의문위원회가 "언론탄압이나 언론자유와 관련된 사례를 수집·보고하고 항의서한 및 결의문을 작성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런데 그는 그 결의문위원회의 4명의 상임위원 중 한 명이라고 하지 않는가. 더욱이 그가 맡고 있는 지역이 아시아이며, 최근 한국을 주시하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지 않은가.

IPI나 혹은 이 단체의 사무총장인 요한 프리츠 명의의 수많은 항의서한 작성에 조선일보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시사해 주는 대목이다.

사실 우리 국민들은 IPI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다. 조선일보 등 주요 족벌신문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사실은 사주의 이해관계에 불과하지만) 때문에 대대적으로 보도하니까 무슨 대단하고 권위있는 국제단체인 것처럼 오해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IPI는, 특히 요한 프리츠 사무총장 등 사무국 관계자들은 수시로 한국위원회측에 특별기부금을 지원해 달라고 애처롭게 손을 벌릴 정도로 가난한 단체일 뿐 아니라, 오죽하면 그 단체의 회장을 오래 지냈다는 사람(위크리 마신게, 스리랑카)이 스스로 제 입으로 "IPI 총회에 여러번 참석해 보았는데 가만히 보니까 IPI는 International Press Institute라기보다 International Playboy Institute의 약자인 것 같다"(IPI는 '국제 언론인 협회'가 아니라 '국제 난봉꾼 협회'인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형편없는 단체에 불과하다.

그래서 박정희마저 이렇게 말한 것이다.
"IPI는 잡놈들의 모임이다."

한편 최우석 기자의 IPI 정회원 자격 논란과 관련하여, IPI 한국위원회 사무국장인 최승우 기자는 "IPI 한국위원회 규약에 따라 정당하게 이뤄진 것이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IPI가 한국의 언론자유 신장을 위해 노력한 점도 균형있게 보아달라"고 덧붙였다.

(계속....두번째 기사는 9월 12일 이어질 예정입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취재차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언론, 지역, 에너지, 식량 문제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