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북한에 납북됐다 귀환한 뒤 지인들에게 북한을 찬양하는 말과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또한 이를 알고도 수사정보기관에 알리지 않은 혐의로 기소돼 옥살이를 했던 어부 등 3명이 경찰의 불법감금과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으로 판명돼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억울한 누명을 벗었다.

 

어업에 종사하던 박춘환(65)씨는 지난 1968년 5월 '영창호'를 타고 연평도 인근에서 조기를 잡던 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돼 억류됐다가 5개월 만에 귀환했는데 이 일로 반공법위반죄 등으로 기소돼 1969년 7월 징역 8월 및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고 전주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했다.

 

그런데 박씨는 그 해 12월 같은 마을 주민이던 유명록(65)씨와 임봉택(64)씨 등에게 "연평도 조기잡이를 하다가 이북경비정에 끌려갈 때 죽이는 줄 알았는데 우리를 환영해 줬다. 평양 여관에 있을 때 매일 쌀밥에 쇠고기 등의 반찬과 인삼주로 대우를 잘 받았다. 이북은 가는 길마다 아스팔트가 깔려있고, 쌀도 배급제로 돼 굶고 못 사는 사람이 없고 평등하더라"는 등의 말을 수차례 하며 반국가단체인 북괴의 활동을 고무·찬양하고, 국가기밀을 탐지·수집하며 간첩활동을 했다는 이유 등으로 기소됐다.

 

유씨와 임씨는 박씨의 고무·찬양행위를 알고도 수사정보기관에 이를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위반죄 및 반공법위반죄로 기소돼 1972년 6월 전주지법 군산지원에서 박씨는 징역 7년 및 자격정지 7년, 유씨와 임씨는 각각 징역 8월 및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경찰의 불법고문과 구금 등으로 인해 자신들과 참고인들이 허위진술을 하게 됐다"며 선고에 불복했지만 항소·상고가 모두 기각돼 옥살이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다.

 

그러나 2009년 4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원회)는 "군산경찰서의 불법구금 및 가혹행위로 인한 수사로 인해 청구인들이 당시 범죄사실을 허위자백했고, 이 같은 수사를 기반으로 공소가 제기되고 재판이 진행돼 재심대상 판결이 확정됐다는 진실이 규명됐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박씨 등 3명은 2009년 10월 전주지법 군산지원에 "당시 영장 없이 위법하게 한 달 동안 감금됐고, 당시 수사관들은 허위자백을 강요하기 위한 폭행 및 고문 등 가혹행위를 했으며, 직권을 남용해 증거를 조작했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1심인 전주지법 군산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호제훈 부장판사)는 지난해 6월 박씨 등 3명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항소심인 광주고법 전주제1형사부(재판장 이상주 부장판사)도 지난해 9월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먼저 "당시 군산경찰서 경찰들이 피고인(청구인)들을 한 달 정도 구금하는 동안 낮에는 지하조사실에서 조사하고 밤에는 경찰서 인근 여인숙에 묵게 하면서 구타하거나 고문하는 등 가혹행위를 하면서 허위자백을 강요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검사가 피고인들에 대한 신문조서를 작성할 당시 가혹행위를 하지 않았더라도 경찰수사단계에서 불법구금, 폭행 및 가혹행위에 의한 심리상태가 검찰수사단계까지 지속됐다 할 수 있어 피의자신문조서 역시 증거능력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제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도 북한을 찬양한 행위로 기소된 박씨와 박씨의 행위를 알고도 수사정보기관에 알리지 않은 혐의(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유씨와 임씨 등 3명에 대한 재심청구에 대해 무죄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재심대상판결이 유죄의 증거로 들었던 각 증거들은 수사단계에서 불법구금과 고문 등 가혹행위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증거능력이 없거나 신빙성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무죄로 판결한 원심의 판단은 옳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간첩 누명, #납북 어부, #반공법위반죄, #재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