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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출판사
그날 밤 늦은 시각, 캠퍼는 시체를 침대에 눕히고 또다시 시간을 했다. 아침이 되자 몇 시간 동안 시체를 꼼꼼히 자르고, 체액을 배수구로 흘려보내고, 파이프 세정제를 붓는 등 어떤 증거도 남지 않게 만전을 기했다. 그러고 나서 시체를 가방에 넣어 들고 뒷길로 나섰다. 손과 몸통을 서로 다른 지역에 묻었으며, 머리는 트렁크에 넣어 두었다. 법원에서 지정해준 정신과 의사에게 검사 받으러 갈 때까지도 머리는 여전히 트렁크 안에 있었다. 이런 사실도 캠퍼에게 짜릿한 스릴을 선사했다.

추리소설의 한 대목이 아니다.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살인사건을 묘사한 것이다. 에드워드 캠퍼는 15살 때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살해했고, 나중에는 어머니까지 살해했다. 살인을 하고 시간(屍姦)까지 한 그는 7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고, 사형을 언도받았다.

제프리 디머는 17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그는 성폭행과 시체절단, 시간을 했으며, 시체의 일부를 먹기도 했다.

존 게이시는 33명을 살해했다. 그는 살해한 사람들을 자신의 집 지하실의 비밀통로에 넣어두었다. 그는 IQ가 높은 사람이었으며, 살던 동네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 흉악한 연쇄살인범이 되는 걸까?

위에 열거한 연쇄살인범들은 전부 로버트 레슬러의 <살인자들과의 인터뷰>에 등장하는 실존인물들이다. 끔찍한 연쇄살인범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랍고, 그들이 살인을 저지르고 시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두려움이 느껴진다.

이 책에는 ‘이상살인자들의 범죄심리를 해부한 FBI 심리분석관 로버트 레슬러의 수사기록’ 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작가의 말 그대로 정상이 아닌 살인범들을 만나 인터뷰를 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작가는 무엇을 얻고자 이러한 자들을 인터뷰했을까?

범죄 프로파일링을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그는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보이지 않는 범인의 신상분석을 통해 범인이 어떤 인종이고 몇 살이며, 성격은 어떠하며, 직업은 무엇인지를 알아내 수사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살인자들의 성향은 어떠한지, 왜 살인을 하게 되었는지, 살인을 통해서 무엇을 얻었는지를 알아내야만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그는 살인자들을 수시로 만나 인터뷰를 했던 것이다.

프로파일링은 마술이 아니며 단지 행동과학의 원리를 응용한 작업일 뿐이다. 또 수년간 범행현장과 증거물을 면밀히 조사하고, 교도소에 있는 범죄자들과 면담을 하여 얻은 경험의 산물이다. 목적은 경찰에게 가장 가능성 높은 용의자의 유형을 알려주는 것이지 프로파일링 자체로는 결코 살인자를 잡지 못한다. 살인자는 경찰이 잡는 것이다.

범죄 프로파일링은 살인자를 검거하는데 상당히 많은 기여를 했다고 레슬러는 설명한다. 용의자의 유형이 나오면 수사 범위가 그만큼 줄어들고 범인을 잡을 확률이 그만큼 높아질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흉악한 연쇄살인범이 되는 걸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더할 나위 없이 정상적으로 살던 사람이 35세에 갑자기 사악하고 파괴적인 살인자로 돌변하는 일은 절대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짚어 두어야겠다. 살인의 전조가 되는 행동은 그 이전, 아주 어린 시절부터 존재하고 있었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진전된다.

흔히 살인범들은 모두 가난한 결손가정 출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연구를 해보니 이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우리가 만나 보았던 살인범들은 대다수가 극빈층도 아니고 수입도 일정한 가정출신이었다. 그중 절반 이상이 처음에는 양쪽 부모와 함께 살았던 자들이었고 대체로 영리한 편이었다.


작가의 주장에 따르면 살인자들은 어린 시절에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으며, 어머니와의 관계가 냉담하고 차갑고 사랑이 결핍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살인자로 돌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학대받고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들이 전부 살인자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럴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양들의 침묵> <레드 드래곤>은 실존인물 바탕으로 쓰여져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알지 못할 뿐 세상에는 정말로 '미친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살인충동을 억누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전율까지 느꼈다. 살인을 한 뒤 현장으로 다시 돌아오는 살인자의 심리가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살인이 불러오는 성적 쾌감 때문이라는 살인범들의 고백은 충격을 던져주기도 한다.

살인을 통해 쾌감을 느끼면서 경찰에 잡히기 전까지 혹은 죽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이런 경우 죄가 아니라 인간이 문제 아닌가.

연쇄살인범에 대한 적나라한 보고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책은 나로 하여금 추리소설을 보는 시각을 달리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살인범들은 그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인간형이 아닌 실제로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인간형이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레드 드래곤>과 <양들의 침묵>에 등장하는 잔혹한 살인범들이 실존하는 연쇄살인범들을 모델로 쓴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토마스 해리스가 그를 만나 자문을 구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설과 현실의 경계는 없는 셈이 아닌가. 결국 추리소설은 현실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섬뜩하다.

연쇄살인범, 사회에 복귀하면 또다시 살인 저지를 것

참으로 마음에 안 드는 건 미국의 사법제도다. 미국에서는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할 연쇄살인범들이 감옥에서 갱생의 시간을 보낸 뒤 감형되거나 형기를 마치고 사회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레슬러는 이런 자들이 사회에 복귀하면 또다시 살인을 저지를 것이라고 단언한다. 스스로 살인에 대한 욕구를 억제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최근 상습적인 아동 성폭행 혐의로 붙들려 복역 중인 한 남자가 자기의 행동을 도저히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준 예가 있었다. 그는 몇 년 동안 환상 속에서 어린아이들과 성관계를 가졌다고 털어놓았다. 교도소 당국에서는 그의 관심을 하다못해 남자 동성애자라도 좋으니 어떻게든 성인에게 돌리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그의 환상이나 자위행위는 언제나 어린 소년들을 향한 것이었으며, 감방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영원히 그 환상을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본인 스스로도 잘 안다고 했다.

아동 성폭행에 관한 대목이지만 연쇄살인범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동 성폭행범의 경우도 그런 충동을 절대로 자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감옥에서 나온 뒤에도 같은 범죄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에 아동 성폭행범이 출소 뒤에 또다시 어린 아이를 성폭행한 뒤 살해한 사건이 벌어져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결국 그런 자들은 재발 방지를 위해 죽을 때까지 격리 수용해야 한다는 건가?

일단 선을 넘어버린 살인범은 앞으로도 계속 사람을 죽일 가능성이 높으며, 그럴 경우 범행계획도 갈수록 치밀하게 세운다. 아마도 처음에는 홧김에 사람을 죽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음번에는 좀더 신중하게 희생자를 물색하고 처음보다 노련하면서도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할 가능성이 높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난 외톨이 소년이 마침내 연쇄살인범으로 변한 것이다.

범죄 프로파일링을 만들어 살인범 검거에 활용해야

살인의 천성을 타고나는 건 아니겠지만 일단 살인의 길로 접어든 살인자들은 살인충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계속해서 사람들을 죽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서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그런 살인자들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모조리 잡아서 사형에 처해야 하나?

나는 그들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내버려두기보다는 수감과 상담을 통해 그들의 전철을 밟게 될 다른 잠재적 살인자를 예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을 그냥 처형해봐야 사회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사형으로는 자신만의 환상에 사로잡혀 자아를 상실하고 범죄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대게 될 다른 잠재적 살인자들을 막을 수 없다.

살인범들이 살아 있기에 그들로부터 증언을 듣고, 그것을 토대로 범죄 프로파일링을 만들어 살인범 검거에 활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요즘에 출간되는 추리소설에는 웬만하면 프로파일링 이야기가 나오는 건 그만큼 미국에서는 많이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프로파일링이 살인사건을 전부 해결해주는 해결사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이 책은 미국의 사례겠지만 이런 일이 미국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에도 연쇄살인범은 존재한다. 신문지상에 오르내린 이름만도 몇 명이던가. 잡힌 자들은 그렇다고 쳐도 아직까지 잡히지 않고 있는 연쇄살인범들도 있는 건 아닐까? 더 이상의 것을 생각하면 피해망상이 될 것 같아 이 정도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게 좋겠다.

그 어떤 추리소설보다 생생하면서 깊은 두려움을 안겨주는 책이었다.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로버트 K. 레슬러 지음, 손명희 외 옮김, 바다출판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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