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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경기도립국악단과 김영동 예술감독
ⓒ 김기
70∼80년대는 지독히도 절망적인 시대였다. 그 절망을 견디기 위한 수단 또한 비애와 절망이었다. 절망 밖에는 절망을 이길 수 없었던 시대에 우리는 '조각배' '어디로 갈거나' '한네의 이별' 등의 노래에 기대어 쓴 소주잔을 가슴에 털어 넣어야 했다.

그리고 30년이 훌쩍 흘러버린 지금, 그 가슴을 대신 채우고 있는 것은 비싼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는 서양 라이센스 뮤지컬들이다. 연습 중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만난 김영동 경기도립국악단 예술감독은 "그때 20대에 김민기 등과 술을 마시면서 그랬지. 로이드 웨버가 20대에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만들었듯이 우리도 20대에 기념비적인 음악극 하나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야?" 하는 이야기들 속에서 <한네의 승천>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김민기는 그 후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지하철 1호선>을 통해 일그러진 우리 현대사를 말하고 있고, 김영동은 그때 절망 대신에 <한네의 승천>을 시대에 선사했다.

이 음악극은 '사랑가' '한네의 이별' 등 최초의 국악가요 히트곡을 내놓았다. 아니 그때는 국악가요라는 용어조차 없었던 때였다. 그저 한국적인 노래를 만들었고 그것이 후일 국악가요의 효시가 된 셈이다. 그 모든 노래는 김영동 현재 경기도립국악단 예술감독의 젊은 시절 작품들이다.

경기도립국악단 10주년기념공연 <한네의 승천>

▲ <한네의 승천> 연습 장면
ⓒ 김기
75년 초연 이후 영화로도 만들어지기도 했던 <한네의 승천>이 경기도립국악단 10주년을 기념하여 오는 17일부터 20일까지 경기 문화의전당에서 닷새 간 무대에 올려진다. 한국적 작품을 만들어온 박성찬 연출이 극을 만들고, <지하철 1호선> 등 창작뮤지컬에서 발군의 활동을 해온 서범석, 김유진, 추상록 등이 주연을 맡았다.

개막일을 앞두고 비지땀을 쏟고 있는 연습 현장을 찾았다. 경기도국악당 연습실은 50인조의 국악오케스트라에다가 출연진 70여명이 그냥 서있기에도 좁아 보였지만 그 속에서 겨우 동작할 공간을 만들어 실감나는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었다.

영화 <왕의 남자>로 부쩍 인기가 높아진 줄타기 공연을 포함해서 탈춤, 마을굿의 제례 등 한국전통의 정서를 담뿍 담고 있는 <한네의 승천> 2006 버전은 서양 뮤지컬과 한판 붙을 태세다.

박성찬 연출은 "그랜드 뮤지컬들이 블록버스터형 볼거리에 치중하고 있지만 우리는 한국적 예술성으로 승부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많이 덜어내고 비운다. 한국의 수묵화를 연상하면 될 것이다. 헬리콥터의 굉음보다 나비 한 마리의 호젓함을 선택해 동양적 미학을 담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주인공 만명 역의 서범석은 "판소리를 4년 배웠다. 그런 후 한국적 작품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20인조 국악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노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오른다. 개인적으로 서양 라이센스 뮤지컬을 한국에서 왜 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는 등 출연진도 모처럼의 한국 뮤지컬에 부푼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또한 필주로 출연하는 추상록(고 추성웅씨의 아들)은 "대부분 서양 뮤지컬을 해오던 사람들인데 생각보다 배우들이 음악에 금세 적응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역시 한국사람에게는 한국음악이 맞는 것이라는 느낌을 갖는다"고 젊은이들한테도 한국적 뮤지컬에 대한 갈증이 알게 모르게 존재함을 밝혔다.

서양뮤지컬에 맞붙는 한판 공연... 김성녀의 한네 이미지 극복도 관심

▲ <한네의 승천> 주역들. 왼쪽부터 추상록, 김영동, 박성찬, 김유진, 서범석
ⓒ 김기

▲ 한네의 이별을 부르는 김유진
ⓒ 김기
마당놀이 스타 김성녀가 불러 히트한 '한네의 이별' 등에 부담을 갖지 않는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한네 역의 김유진은 "극복이요? 그냥 열심히 하는 거죠"라고 신세대다운 대답을 하더니 이내 "많이 두렵기는 하지만 김성녀 선생님을 극복하기보다는 결국 김유진식 한네를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문제겠죠"라며 속내를 드러냈다.

문제는 한네이다. 75년의 한네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다. 당시의 음악극을 본 사람을 떠나서 국악음반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음반 중 하나인 김영동의 음반을 통해서 오랜 세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한네는 한(恨) 그 자체로써의 인물이다. 한네에는 그 동안 김성녀의 얼굴이 겹쳐 있었다.

연습장에서 본 김유진은 김성녀와 분명 달랐다. 선이 더 여리고 부드럽고 여성적이며 김성녀의 한네보다 좀 더 현재적이다. 공통점이라면 아름답고 또 노래를 잘한다. 연습임에도 배우들은 몸을 아끼지 않고 열연을 하고 있었는데 한네가 필주에게 강간을 당하는 장면에서는 지켜보는 입장에서 깜짝 놀랄 정도로 거친 연기를 소화해내고 있었다.

30년이란 세월은 많은 것들을 변화시켜 놓았다. 정치도 변하고 경제상황도 놀라울 정도로 변화했다. 특히 문화적으로는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이 요즘이다. 어쩌면 그 당시에는 치유될 수 없을 한(恨)도 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도 같다. 더는 한이 한국인의 대표정서가 아닐 지도 모른다.

그래서 2006 <한네의 승천>은 한(恨) 대신에 한(韓)을 발견하고자 한다. 스크린쿼터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스테이지 쿼터는 현안으로 떠오르지도 못하지만, 이슬비에 속옷 젖듯이 우리나라 공연예술계는 이대로 방치하면 한국 것은 모두 사라져 버릴 지도 모른다는 우려들이 공연예술계에 팽배하다. 그런 속에 30년 성상을 털어 내고 새롭게 무대에 오르는 <한네의 승천>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2006 <한네의 승천>은 경기도립국악단의 10주년 공연으로 준비되는 것이다. 그러나 닷새 간의 기념공연을 마친 후에는 서울 및 지방에서의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도 대형무대를 독점하고 있는 서양 뮤지컬과 맞붙어 한국 창작뮤지컬의 방향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재 초연 무대에 대중적 평가가 대단히 중요하다. 한국형 뮤지컬의 부활을 가늠할 17일 수원 경기문화의 전당에 관심이 모아진다.

덧붙이는 글 | 공연정보
공연일시 : 8월 17일(목) ~ 20일(일) 5회 공연
공연장소 : 경기도 문화의 전당 대공연장
공연문의 : (031)289-6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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