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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오후 사립학교법 개정안 표결처리를 놓고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격렬한 몸싸움을 하는 가운데, 한나라당 의원이 김원기 의장에게 피켓을 던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지난 9일 국회를 통과한 사립학교법이 원천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이규택 `사학법 무효투쟁 및 우리 아이지키기 운동본부`(가칭) 본부장 등 의원 20여명은 12일 오전 11시께 국회의장 면담 형식으로 의장실을 방문한 뒤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이규택 의원이 의장실에서 김원기 의장이 나간뒤 사학법 개정안 통과를 비판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정부 여당 사학법! 전교조에게 모든 것을 내주자는 것!"

아수라장 속에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통과되던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장에는 이같은 문구가 등장했다. 사학법 개정안 상정에 반발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든 팻말에서다. 팻말의 문구는 정병국 홍보기획본부장이 당 소속 교육위원들과 상의한 뒤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덕'에 한나라당이 그간 여당의 개방형 이사제에 반대하며 '사학이 투명적으로 운영돼야 하지만 그와 함께 자율성도 보장해야 한다'고 내세웠던 논리는 자취를 감췄다.

그날 밤 박근혜 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이념' 문제를 끄집어냈다. 여당의 사학법 개정안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개방형 이사제가 도입되면 '친 전교조 인사'들이 개방형 이사로 사학에 들어가게 되고, 그로 인해 전교조의 친북·반미 이념이 학생들에게 주입된다는 연결고리다.

박 대표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의 사학법을 거부한 것은 목적과 의도가 다른 데 있기 때문"이라며 "그들의 목적은 사학의 투명성을 높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친북·반미의 이념을 주입시키려는 것에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 대표는 "(사학법 개정안은)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우리 체제를 뒤흔드는 법안"이라며 "지금부터 저와 한나라당 의원들은 사학법 반대투쟁을 시작한다"고 '색깔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의원들, '대여투쟁'에는 동의해도 '색깔공세'엔 갸우뚱

▲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 대표는 `모든 당력을 사학법 무효투쟁에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 내에서 지도부가 임시국회 일정까지 모두 거부하며 강력한 '대여투쟁'을 선포한 데 토를 다는 의원들은 거의 없다. 그러나 박 대표가 또다시 국가 정체성 문제를 거론하며 '색깔 깃발'을 든 것은 과도한 대응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성권 의원은 "이렇게 가다간 또다시 '이념 공방'이 된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이 의원은 여당의 일방적인 사학법 개정안 강행 통과에 대한 비판은 별론으로 하자고 전제한 뒤 "'사학법 개정을 곧 '전교조의 사학 경영권 침해→친북·반미 이념 주입 강화'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한 접근이자 잘못된 방향 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지난 9일 본회의장에서의 팻말 문구를 보고도 다소 당황했다고 한다. 이 의원은 "전에는 당에서 사학법과 관련해 토론이 벌어질 때는 사학운영의 독자성이 보장돼야한다는 논리가 주가 됐는데, 이념문제가 튀어나온 것은 그 때가 처음인 것 같다"고 떠올렸다.

익명을 전제로 한 또다른 의원은 "당의 대응이 사학단체의 논리를 대변하는 식으로 흘러가선 안 된다는 생각"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지금 당에서 정책은 사라지고 정치공학만 남았다"며 "여당이 단초를 제공하니 곧장 내부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져 교육 문제가 또 이념 공방이 돼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더 나아가 개혁 성향의 고진화 의원은 "사학법 개정은 교육 혁신의 첫 걸음인데 이념문제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고 의원은 "사학법 개정을 전교조의 세 확장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도 문제"라며 "이러다간 한나라당이 일부 부패사학이나 사학단체를 감싸고 도는 것으로 비칠 우려도 있다"고 걱정했다.

또다시 꺼내든 '색깔 깃발'이 한나라당에 결코 유리한 전선을 구축해주진 않을 것이란 얘기다. 벌써부터 열린우리당은 기다렸다는 듯 박 대표의 색깔론을 공세적으로 맞받아치고 있다.

▲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비상집행위원회의에서 정세균 당의장은 '박근혜 대표가 강경 주장하고 터무니 없는 주장하니까 따져보자는 것이 제 취지'라며 "박 대표가 TV 토론에 응해줄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받아치는 우리당 "전교조가 장악? 뜬금없고 근거없다"

정세균 열린우리당 당의장 겸 원내대표는 11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왜곡' '망언' '작태' 등의 표현을 써가며 박근혜 대표를 비난했다. 정 의장은 "사학법 개정을 이념 공세로 몰고 가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로, 이런 작태를 보여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12일 열린우리당은 구체적인 반박 근거와 수치를 들이대며 한나라당의 주장에 반격을 가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유기홍 의원은 이날 오전 당 비상집행위원회의에서 사학법 개정으로 전교조가 사학을 장악하게 되리라는 한나라당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유 의원은 "전교조 소속 교사가 학교 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 비율은 14% 뿐이고, 나머지는 한국교총 소속"이라며 "한나라당의 주장은 무책임한 선동"이라고 몰아부쳤다.

▲ 유기홍 의원은 사학법 개정으로 전교조가 사학을 장악하게 되리라는 한나라당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개정된 사학법에 따르면, 실제로 개방형 이사제는 이사수의 4분의 1 이상만을 개방이사 몫로 배정하고 있고, 이나마 학교운영위·대학평의원회가 2배수 추천한 외부 이사 중에서 선임하도록 해 전교조 추천 인사가 이사회에 참여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더욱이 민주노동당은 개정된 사학법의 개방이사제가 그 취지를 살리기 어려울 정도로 실효가 떨어진다고 비판하고 있는 상태다.

유 의원은 "지난 2년 동안 상임위 심의 과정에서도 사학법 개정을 두고 '친북·반미' 얘기는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며 "박 대표의 주장은 뜬금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도 이같은 반론에 힘을 보탰다. 김 부총리는 이날 오전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학교운영위의 경우 교사 출신이 30~40%이고 전체 교사 중 전교조 교사는 22%에 불과하기 때문에 4명을 추천할 경우 전교조 출신은 1명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한나라당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다.

한나라 '나홀로 투쟁'?... 민노 "개혁법안 처리하자" 여당에 '러브콜'

한나라당의 임시국회 보이콧과 장외투쟁이 결국엔 '나홀로 투쟁'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민주노동당은 이 때를 기회삼아 "열린우리당이 원칙을 갖고 나가길 바란다, 민주노동당도 개혁과 민생으로 가는 길에는 적극 협력할 것"(심상정 의원단수석부대표)이라며 열린우리당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낙연 민주당 원내대표도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사학법 처리에 대한 부당성 제기는 국회 운영에 참여하면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한나라당의 '복귀'를 촉구했다.

김성희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은 "한나라당의 반박 논리는 결국 위헌론과 색깔론 외에는 없는 것 아니냐"며 "마치 '위헌 노이로제' '색깔 노이로제'에 걸린 듯 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김 부대변인은 "부패 사학의 주장을 대변해 임시국회 일정까지 거부한다는 국민들의 비아냥이 나오고 있다는 점을 한나라당은 새겨야 할 것"이라며 "한나라당이 구태정치로 민생법안의 처리를 가로막는다면 민주노동당으로서는 개혁법안 처리에 언제든 여당과 함께 할 수 있다, 결국 한나라당이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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