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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시험이 며칠 안 남았다. 수험생을 둔 가정의 부모들은 조바심이 나서 부처님을 붙잡고 소원을 빈다. 어느 부처님이 가장 영험이 있을까? 이즈음 가장 붐비는 곳이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이 있는 데라고 한다. 경산시는 아예 이 시기를 맞춰 갓바위 축제를 연다고 선전하고 있다.

▲ 팔공산 갓바위 불상. 통일 신라시대의 것으로 갓은 후대 누군가 올려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대단한 위엄이 느껴진다.
ⓒ 국보 도판
팔공산 갓바위 부처는 '관봉석조여래좌상'이란 이름을 갖고 있다. '갓을 쓴 부처가 있는 봉우리에 돌로 만든 앉아 있는 부처님 상'이란 뜻이다. 부처가 성불할 때 갖추는 손 모양에 매우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상화된 이목구비에 세상의 어려움을 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위엄이 보인다. 그러나 갓은 아무리 봐도 몸체와 어울리지 않는다. 부처님 머리 위에 갓이 유행하던 후대 어느 시기에 누군가 씌운 것으로 추정된다.

관봉의 정상 바위 끝에 앉아 아래로 내려다 보고 있는 이 부처님께 소원을 빌면 그 어려운 수능 고득점도 가능할 것 같다. 왜 이 시기에 인산인해를 이루는지 알 것 같다. 갓바위 부처님보다 더 영험이 있는 부처님은 없을까? 진리를 깨우쳐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절대자 모습의 부처님으로 손꼽히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석굴암 본존불일 것이다.

▲ 경주 석굴암 본존불. 통일신라 절정기에 왕이 곧 부처라는 인식 아래 만들었다. 전륜성왕 부처를 정치적 절대자 국왕으로 대체하였다.
ⓒ 국보 도판
석굴암 본존불은 당당한 체구와 완벽하게 균형잡힌 몸매를 지니고 있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중간 손가락 하나 살짝 검지로 올려 놓아 태산 같은 적막감 속에서도 생동의 숨결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절대적 진리 속에 자비로움으로 승화된 미소가 숨겨져 있는 것 같다. 이 부처님이야말로 절대 진리의 화신으로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 낼 듯하다. 석굴암 부처님께 한 번 소원성취를 빌어보시라. 언젠가는 자신도 모르게 성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으리라.

갓바위 부처님도 석굴암 본존불도 통일신라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만든 부처님이다. 통일신라 시대만 해도 종교와 정치 이념이 지금처럼 나뉘어져 있지 않았다. 불교가 철학이자 정치이념이었다. 왕족은 석가모니의 집안으로, 왕은 살아 있는 부처로 인식하도록 강요되었다. 왕이 곧 부처(王卽佛)라 하여 국왕전제정치를 종교로써 포장하고 있었다.

▲ 경주 남산 용장사터 마애불. 통일신라 시대에 만든 불상들은 국왕의 모습을 형상화했고, 그래서 이렇게 위엄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 신병철
따라서 불상은 곧 왕의 모습이었다. 진리를 깨달은 존재가 부처였고, 그가 곧 국왕이었다. 전륜성왕 부처는 절대권력자 국왕으로 대치되었다. 전국에 두루 부처 곧, 국왕의 모습을 새겼다. 경주 남산의 용장사터 바위에 새긴 마애불도 권위가 흘러 넘친다. 국민을 종교에 귀의케 함으로써 절대 권력에 복종시키고자 했다. 통일신라 시대의 부처님이 이렇게 대단히 위엄있는 절대자의 모습을 띤 것은 이런 이유였다.

가장 어려운 문제와 아무리 노력해도 풀리지 않는 갈등은 석굴암 본존불과 갓바위 부처님 같은 통일신라 시대의 부처님께 빌어야 가장 영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석굴암 본존불은 너무 근엄하여 가까이 다가서기가 겁이 난다. 그의 곁에만 서면 무조건 작아짐을 느낀다. 좀 편안하고 어려움 없이 찾아가 투정을 부릴 만한 부처님은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예산 수덕사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미륵보살상과 이천 소고리 삼존불상을 추천하고 싶다.

▲ 예산 수덕사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는 미륵불, 고려시대에는 각 지방마다 독특하고 어쩌면 조잡한 미륵불을 만들어 소원을 빌었다.
ⓒ 신병철
예산 수덕사 입구 미륵불은 길가에 아무렇게나 서 있다. 고려시대에 마을 사람들이 성의를 모아 마을과 가정의 안녕과 풍요를 빌기 위해 세운 것이 어찌어찌 하다가 지금은 도로변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뛰어난 조각술도 없다. 당당하고 균형잡힌 몸매도 없다. 권위와 절대성도 보이지 않는다. 어떤 격의를 차리지 않고서도, 언제든지 소원을 말해도 괜찮을 것 같다.

고려시대 불교는 이미 국왕전유물이 아니었다. 지방 유지와 백성들도 생활 속에서 불교를 향유하고 있었다. 부처님은 이제 국왕을 대신하지 않았다. 지방마다 비록 조각 수준은 떨어지지만 개성 있는 불상들을 만들었다. 조각 수준의 하락을 규모로 만회해 보려고도 했다. 관촉사관음보살과 같은 거대하고 토속화된 부처와 보살상들이 전국에 독특한 지방색을 띠고 등장하였다.

아마도 고려 후기쯤이었을 것이다. 이천 소고리 마을 사람들도 부처님을 만들어 소원성취를 빌려고 했다. 마을에 영향력 있는 향리가 돈을 내놓았고, 마을 사람들도 형편에 맞게 돈을 내놨다. 주변에서 가장 솜씨가 좋은 석수장이를 데려다가 마을 뒷산 바위에 불상을 새기도록 했다. 그런데 전문적인 조각가가 아니었나 보다. 사람들이 들락거리며 '잘 만들었네, 못 만들었네' 입질하면 기분이 상해서 그만둘까봐 천막을 치고 완성될 때까지 절대 보지 못하게 했다. 드디어 불상이 완성되었다.

▲ 이천 소고리 삼존불. 마을 사람들이 합심해서 마을 뒷산에 만든 불상. 토속적인 향취가 물신 풍긴다. 못 생겨서 편안하다.
ⓒ 신병철
정말 권위도 없고 균형도 무시했다. 토속적인 냄새가 물씬 난다. 아프리카 토인들이 하룻밤새 와서 불상이랍시고 새기고는 달아나 버린 것 같다. 그래도 부처님, 우리 부처님이었다. 그래서 더욱 어떤 어려움이나 거리낌없이 언제든 찾아가서 소원을 빌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사소한 투정도 격의없이 쏟아낼 수 있을 것 같다. 남이 보기에는 사소하지만 자신에게는 매우 소중한 소원이 있는 사람은 전국에 널려 있는 고려시대 토속 부처를 찾아가 볼 일이다.

소원을 비는 사람은 그 소원이 꼭 이뤄지기를 바란다. 그 성취에 대한 확답을 받고 싶은 사람에게 찾아가 보기를 권하고 싶은 부처님들이 있다. 삼국시대 왕족이 주도하여 만든 미륵반가사유상과 마애삼존불상들이 그것이다.

▲ 부여박물관 삼화관 금동미륵반가사유상. 도솔천에서 중생 구제를 위해 정진하고 사색하고 있는 구세주 미래불인 미륵불. 고대의 '생각하는 사람'
ⓒ 국보 도판
미륵반가사유상은 다음 세상에 부처로 성불하여 중생을 구제하기로 예약되어 있는 미래불 미륵이 현재 도솔천에서 한쪽 다리를 풀고 사색에 빠져 있는 모습을 띠고 있다. 3개 꽃잎 모양의 관을 쓰고 있는 부여 박물관의 금동미륵상과 탑모양 관을 쓰고 있는 중앙박물관의 금동미륵상이 손꼽힌다.

부여금동미륵반가사유상의 편안한 자세와 살포시 볼에 대고 있는 손과 배시시 배어나온 미소는 너무나도 포용적이다. 다음 세상에 설법을 통하여 290억 명을 동반 해탈시켜야 하는 과업을 해결하기 위해 저렇게 사색에 빠져든 것이다. 무슨 소원이라도 들어주고 말겠다는 자세다. 너무나 깊은 사색에 빠지고 보니 자신도 모르게 발가락을 홀비틀고 있다. 이들 구세주 미륵불에게 미래의 소망을 한 번 기원해 볼만 하지 않을까.

▲ 서산마애삼존불. 온화한 몸매와 자세로 모든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백제의 미소'가 정겹다.
ⓒ 신병철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가장 포용적인 모습의 불상은 단연 돌에 새기거나 돌로 만든 서산마애삼존불과 경주배리삼존불이다. 서산마애 삼존불은 절벽에 새긴 백제의 삼존불이다. 중앙에 큰 본존불이 있고 좌우에 보살이 자리 잡고 있다. 본존불은 환한 미소를 띠고 오른손은 들고 왼손은 아래로 향하여 찾아온 사람을 반기고 있다. 적당히 통통한 몸매는 맏며느리처럼 매우 후덕스럽게 보인다. 오른손은 중생들에게 설법할 때 취하는 손모습이고, 왼손은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손모습이다.

오른쪽의 보살은 22살쯤 된 처녀가 살짝 부끄러운 듯 미소 지으며 서 있고, 왼쪽의 보살은 초등학교 4학년쯤 되어 보이는 어린이가 참았던 똥을 누고 난 뒤에 저절로 지어지는 시원스런 미소를 띠고 앉아 있다. 전체적으로 매우 우아하고 온화하며, 매우 포용적인 자태를 지니고 있다. 본존불은 미소가 아니라 아예 환하게 웃고 있다. 이 특유의 미소를 고고학자 김원룡은 '백제의 미소'라고 이름 붙였다.

이 부처님께 말하면 정말 무엇이든지 들어줄 것 같다. 소원을 마음 속에 혼자만 갖고 있지 말고 말하라고 부추기는 듯하다. 그러면 너무나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소원이 성취되고 말 것 같다.

▲ 경주남산 배리 삼존불. 본존불과 두 협시보살의 살가운 자세가 너무나 포용적이다. 삼국시대 왕족들이 불교를 전파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 국보 도판
신라 불상 중에서 백제에 버금가는 포용의 부처님이 경주남산 배리의 삼존불이다. 일제시기에 주위에 흩어져 있던 삼존불을 모아 놓았고, 지금은 집을 지어 보호하고 있다. 중앙의 본존불은 역시 통통하고 후덕한 몸매에 둥그스레한 얼굴을 지니고 서 있다. 입고 있는 옷도 부드럽다. 옷주름도 멋진 곡선으로 부드럽고 후덕한 몸매를 한층 돋보이게 한다.

이렇게 수용의 자세를 완벽히 갖추고 있는 존재를 본 적이 있는가? 오른손과 왼손은 무엇이든지 들어 줄테니 얼마든지 말하라고 지긋이 강요하고 있는 듯하다. 살짝 머금은 미소는 소원을 말해보라고 말할 듯 말 듯, 찾아온 사람의 자율에 맡기자만 일단 말만 하면 온갖 정성을 다해 소원이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 해보겠다는 적극적 포용의 마음을 나타내 보이는 듯하다.

오른쪽의 보살은 온갖 치장을 걸치고 허리를 구부려 애교 띤 모습으로 본존불을 돕고 있다. 관세음보살로 보인다. 왼쪽의 보살은 별로 치장을 하지 않았지만 손을 들어 역시 본존불이 뜻에 동조하고 있다. 미륵보살로 보인다.

삼존불 모두가 얼마나 친절하고 공손한 자세인지 눈물겨울 정도다. 그 태도가 너무나 마음에서 진정으로 배어나온 것이기에 조금의 억지스러움도 거슬림도 없다. 친절한 자세와 몸매는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부처님께 배울 일이다.

▲ 퉁퉁한 몸매 후덕스러운 자태의 배리 본존불. 무엇이든지 소원을 들어주고야 말겠다는 손으로 표현한 의지, 너무나도 포용적인 자세가 돋보인다.
ⓒ 국보 도판
삼국시대 부처님들은 왜 이렇게 공손하고 포용적일까? 당시 이상적인 모습의 중국 불상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아울러 고대 삼국 국왕들이 불교를 전파하기 위한 정치적 필요성도 한 몫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국가의 전제적 왕권이 자리 잡기 전에는 여러 부족이 군사적, 정치적 필요에 따라 연맹체를 구성하고 있었다. 각 부족은 각기 다른 종교와 이념으로 단결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왕으로 항한 구심력이 약했다.

하기에 이 시기에 유입된 불교는 고대국가 전제왕권의 이념적 구심력이 될 수 있었다. 왕족은 불교를 전파하고 내면화하여 고대국가 전제왕권의 토대로 삼고자 했다. 그러자면 불교를 어떻게 해서든 믿게끔 만들어야 했다. 그러자면 위엄있는 모습은 안 되고, 이렇게 온화하고 포용적인 자세라야 한다. 이런 시대·정치적 필요성으로 인해 불상을 저렇게 온화하고 포용적이며 공손한 모습으로 만들게 한 것이다.

▲ 서산마애본존 환하게 미소띤 얼굴, 삼화관미륵반가사유상의 배시시 배어나온 미소띤 미륵 얼굴, 석굴암 본존불 위엄 서린 얼굴, 이천 소고리 마애불의 토속적인 얼굴, 어느 부처님이 가장 영험있을까?
ⓒ 신병철
어느 부처님이 가장 영험이 있을까? 공손한 서산마애불, 절대적 진리의 화신 석굴암 본존불, 아니면 너무나 인간적인 이웃집 아저씨와 같은 이천 소고리 부처님일까?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모두 진리를 깨달아 무아의 경지에 이른 부처님일진대 그것이 무슨 상관일까? 괜히 자신의 소원이 꼭 성취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구별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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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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