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나바라즈
ⓒ 고기복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과 인권침해 사실을 고발한 연극 '나마스테'가 이 땅에서 초연된 지도 10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나마스테는 94년 교사 출신 한 네팔 노동자가 한쪽 팔을 잃고 부당해고 당한 후 자신이 일하던 가구공장에서 한국인 노동자를 인질로 삼고 체불임금 해소를 주장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초연 당시 연극은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적나라하게 표현했다는 평을 들었고, 10년이 지난 올해 초와 추석에도 재공연되었습니다.

연극 '나마스테'의 주인공 나바라즈는 94년 경실련 외국인노동자농성을 주도했던 실제 인물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주인공을 온 국민이 수능으로 숨을 죽이고 있던 시간에 경희대학교 교정에서 펼쳐진 NGO 박람회에서 만나 오랜 친구처럼 한참 얘기 나눴습니다.

네팔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나바라즈는 92년도에 홍콩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 당시에는 한국입국이 지금보다 훨씬 자유로웠기 때문에, 비행기 티켓과 얼마 간돈을 마련하면 네팔로 다시 돌아갔다가 한국에 유학 올 작정으로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바라즈는 아시아의 발전된 나라, 대한민국에서 공부하겠다던 꿈을 펼치기도 전에 한국에 온 지 9개월만에 사출공장에서 오른팔 뼈가 부러지는 큰 사고를 당하고 맙니다. 사고가 나자 사장은 경찰을 데리고 와서 병원에 누워 있는 그를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강제 출국시키려 했습니다.

이때 나바라즈는 지혜롭게 사장과 경찰 눈을 피해 모 언론사에 연락했고, 그에 관한 기사가 언론에 실리면서 강제 출국을 면하게 됩니다.

그리고 언론 보도를 접한 두레마을의 김진홍 목사가 피난처를 만들어, 나바라즈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갈 곳이 없는 외국인이주노동자들에게 제공하자, 그곳에서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의 대변인 노릇을 하며 한국 내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의 근로여건이나 인권현실을 좀더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94년 초에 네팔인 9명을 비롯해 총 13명과 함께 한국사회의 부끄러운 단면을 들춘 경실련 농성을 한 달간(1.9-2.8)하게 됩니다. 농성을 시작하면서 그는 한국 언론뿐만 아니라, 홍콩과 인도네시아 언론에도 농성 사실을 알렸고, 결국 한국에서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의 인권보호에 대한 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내외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심어주게 됩니다.

한국내 외국인이주노동자운동의 단초가 되었던 경실련 농성 이후, 그는 여러 단체와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96년도에 홀연 네팔로 돌아갑니다. 네팔에서 나바라즈는 한국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관광가이드 일을 6년 동안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유학의 꿈을 저버리지 못한 그는 2002년도에 경희대 NGO 대학원에 진학해 꿈을 성취하게 됩니다. 나바라즈는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평소 품은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의 일을 한국에 있는 지인들의 도움으로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온 지 일 년이 되던 해인 2003년. 그는 자신의 고향에 코리아-네팔 지혜학교(Korea-Nepal Wisdom School)를 건립하고 운영에 들어갔습니다. 오는 2006년까지는 기술대학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외국인이주노동자들 한국에서 힘들어요. 조금 나아졌다고 하지만, 많이 바뀌어야 해요. 지금 한국 NGO들 서로 싸움하고 옛날처럼 한 목소리 내지 못해요. 너무 정치적이고 계산해요. 94년에 경실련에서 농성 시작하고 사흘 됐을 때, 경실련에서 나가라고 했어요. 저는 그때, 우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농성을 시작하게 했느냐고 따졌고, 한 달 동안 농성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외국인이주노동자들 중에 저처럼 따지는 사람도 없고, 그걸 들어주는 사람도 없어요."

한참 얘기를 나누다 문뜩 던진 이주노동자 운동권에 대한 거침없는 그의 비판 앞에 저는 달리 할 말이 없었습니다.

▲ NGO박람회장 외노협 부스 앞에서 책을 보고 있는 나바라즈
ⓒ 고기복
"10년 전과 비교해서 외국인이주노동자 운동 진영이 다양해진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다양한 목소리는 이주노동자 인권개선이라는 한 지향점을 향하고 있다고 봅니다."

저는 궁색한 답을 하면서 미안한 마음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저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자신이 한 말이 지나쳤다고 생각했는지 곧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래도 JCMK(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가 제일 잘 싸워요. 오래 됐고요. 옛날처럼 일이 있을 때 불러주세요."

그러고 나서 자신이 지금 하는 운동이 어떤 건지 아느냐고 화제를 돌리더군요.

나바라즈는 요즘 '동, 아시아를 보라!'(Look East) 운동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서양의 발전 모델이 아닌 동양의 발전 모델, 즉 한국과 같은 나라의 성장 모델을 네팔에 가르쳐서 지역사회개발의 본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한 교육사업과 주택개량사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한국시민사회가 많이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나바라즈에게서 위대한 교육자이자 선각자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10년 세월이 나바라즈를 이주노동자에서 변혁을 꿈꾸는 대학원생이자, 교육가, 시민활동가로 바꿨듯이, 앞으로 10년 세월이 나바라즈를 대학총장으로 혹은 교육부장관으로 바꿀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면, 이 땅에 와 있는 수많은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의 면면을 우리 사회가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 입니다.

제도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일을 했고, 앞으로 사람을 바꾸는 일을 하고자 하는 이를 만나고 헤어지는 시간. 교정 어디선가 짙은 솔향이 배어나오고 있었습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