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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집에 갔어야 했어요.”

평소답지 않게 약간은 풀죽은 산드라의 뜬금없는 첫마디는 무슨 일이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무슨 일 있어요?”
“또 일이 없어요. 어제부터 일 안 해요.”

지난달 중순에 산드라는 불법체류자를 단속하는 출입국직원들에게 붙잡혀 외국인보호소에서 며칠 지내야 했습니다. 한국에 온 지 3년 반이 지나고 있는 산드라는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취업 비자를 갖고 있었지만, 허가된 회사가 아닌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같이 일하던 여남은 명의 불법체류자들과 함께 강제 출국될 처지에 있었습니다.

평소 똑순이로 일 잘하고 활달하기로 소문난 산드라는 회사에 일이 없을 때면 이웃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종종 하였습니다.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은 허락된 근무처를 벗어나 일을 하다 붙잡히면 강제 출국된다는 사실쯤은 산드라나 업체 관계자들 모두 알고 있었지만, 현실적인 면에서 일하지 않는 것보다 하루라도 일을 하여 돈을 버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합동단속을 나온 출입국 직원들에게 잡혔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지난주 수요일, 강제 출국될 줄 알았던 산드라가 무사히 풀려나왔습니다. 그날 밤 산드라가 강제 출국된다는 소식을 듣고 있던 친구들 이십여 명이 산드라의 비좁은 반지하방에 모여 축하의 말을 한마디씩 하였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은 그간의 소식을 듣고 싶어했습니다. 호기심어린 눈으로 친구들이 주위에 모여들자, 산드라는 기대에 부응하듯 특유의 큰 몸짓과 진지한 눈빛으로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군을 막 제대한 젊은이가 제 또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약간의 허풍을 담아 군 얘기를 할 때 이제 곧 군에 가야 할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진지했습니다.

“아침에 아저씨들이 다 모여! 다 모여! 한 다음에 우리를 앉게 했는데, 출입국직원들이 비자 있어! 비자 있어! 묻고는 그냥 다 수갑을 채우기 시작했어. 난 그때, 아 잘됐다! 싶더라구. 그래서 출입국아저씨한테 웃으면서 '아저씨, 나 안 도망가요. 이거 안 해도 돼요' 했는데, '그냥 가!' 하면서 차에 태우는 거야.”

“잘 됐다” 싶더라는 이유를 산드라는 곧이어 얘기했습니다. “요즘 일이 없어서 자꾸 아르바이트해야 하고, 가족도 보고 싶었는데, 잘 됐잖아. 그래서 출입국에 잡히고 바로 집에 전화했어.”

산드라는 깔깔 웃으며 자신이 전화했던 모습을 재연해 보였습니다.

”여보세요. 나야, 산드라. 내일 집에 갈 테니까, 공항에 나와, 알았지?“
“언니, 무슨 일인데?”
“무슨 일인지는 내일 얘기하고, 준비하고 있어. 비행기표는 내가 갖고 있는데 시간은 모르겠어. 비행기 탈 때 전화한다.”

일이 없어 불안한 신분적 상태에서 일해야 하는 스트레스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단속에 걸렸을 때 오히려 잘됐다 싶은 생각이 들게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단속이 두려워 자살까지 했던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을 여럿 보아왔던 저로선, 산드라의 말은 의외였습니다. 하지만 산드라의 그 말은 '절망' 가운데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웃게 만드는 것, 삶을 긍정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것이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
ⓒ 고기복
연이어 산드라는 외국인보호소에서 나오게 된 경위를 얘기했습니다.

“사장님이, 산드라, 너 왜 여기 있어? 하면서 나를 그냥 데리고 나왔어. 나도 어떻게 나왔는지 몰라. 같이 잡혀갔던 필리핀 여자는 매일 울었는데, 아무도 안 와. 그래서 맘 편하게 집에 가려고 했는데 지금은 안 된대. 혼자 나와서 미안했어. 차라리 그 사람이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얘기를 듣고 있던 친구들이 신기한 듯 몇 가지를 묻기 시작했습니다.

“수갑은 아퍼? 언제까지 했어?”
“몰라, 느낌은 안 좋아. 난 버스에 타고 바로 풀어 줬어.”
“거기 음식은 어때? 맛있어?”
“음식이 맛있겠어? 아참. 김치는 매일 나와.”

시원시원 간단하게 답하는 산드라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으려는 친구들의 속내는 자신들도 언젠가 불법체류자로 있다가 쫓겨날지 모르는 마당에, 잡혔을 때의 상황과 외국인보호소의 형편을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풀려나고 집에 전화했어?”

“응, 바로 전화했지, 내일 못 가! 했더니 왜? 왜? 자꾸 묻는 거야. 그래서 지금 비행기 자리 없어. 내년에 갈게! 라고 말해 줬어.”
“그래도 지금 가지 않으니까, 좋지?”
“지금 가는 게 좋은 건지 내년에 가는 게 좋은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어. 어쨌든 사장님이 나오게 했으니까 거기서 갈 때까지 일해 줘야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웃 공장에서 일하다가 출입국에 잡히고, 다시 업체 사장의 도움으로 풀려나왔던 산드라는 지금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일하는 회사에서 일이 없더라도 조금만 더 벌고 내년에 갈 것인지, 아니면 연말에 집에 돌아갈 지 말입니다. 하지만 비자가 만료되기 전에 스스로 가기에는 아직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어 산드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차라리 그때 갔으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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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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