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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라고 하면 많은 이들은 겨울 잠을 자고 일어난 개구리나 수줍은 꽃망울 피우는 어린 새싹 꽃잎들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기상 이변이라는 뉴스의 제목이 낯설지 않을 만큼 벌써 3월인 지금까지 봄은커녕 겨울잠 자고 나왔던 개구리들은 우르르 동사했다는 기사를 접하곤 한다.

그 녀석들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이만큼 잠을 잤으면 되었다"라고 땅에서 나온 것이니 죄는 없다. 인간 또한 인간이 만든 세상에서 이래저래 피해 보는 것은 마찬가지니 기상 이변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 등은 일단 접어 두도록 하자.

기자는 봄볕만 따뜻한 지난 19일,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 친구들을 만나보려 서울 인근의 한 놀이공원을 찾았다.

놀이 공원을 왔으면 놀이 기구를 타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이나 햇살은 봄볕인데 반해, 바람은 겨울 바람 산타 클로스가 다시 투입될 지경이다. 난 애써 올려 붙인 마스카라가 번지기라도 할세라 아까운 자유이용권만 손목에 이어 붙인 채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하고 동물원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몇 미터 정도 오르고 올랐을까, 귀에 익은 정겨운 녀석들의 인사 소리가 들려왔다.

"꽤애애액~~""메에에에에~~" "꼬끼오!! 꼬꼬 꼬꼬."

동물원에 닭도 있다 보니 때 아닌 닭 울음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아무튼 녀석들 역시 자연을 떠난 존재들이라, 좀 더 자고 싶어도 사육사들이 등 떠밀어 억지로 끌려 나와 별로 반갑지도 않은 인간들 마주하느라 힘들었을 터. 과감히 애정 담뿍 담은 눈길로 카메라의 플래시를 마음껏 터뜨리며 녀석들의 상한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 시원해요~ 백곰.
ⓒ 박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티브이 광고에서 아주 친숙하게 낯익은 백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추운 곳에서만 산다는 백곰의 이야기도 옛말, 녀석은 이미 대한민국 동물원 체질이 되어 뭐가 그리도 좋은지 물속을 첨벙거리며 허우적대고 있었다.

두 마리의 백곰이 있었는데 녀석들 둘 다 이제는 인간에 익숙해져서 인지 우리 밖을 바라보며 포즈를 취해 주거나 가까이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쇼맨십도 볼 수 있었다.

저 하얀 머리에 빨간 모자에 콜라 한병 쥐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한 것은 비단 기자 뿐만은 아닌 듯 옆에 서 있던 다른 입장객도 연신 콜라를 들이키며 마른 입맛만 다시곤 했다. 이런 게 바로 광고의 힘이던가.

▲ 일광욕 중인 백호
ⓒ 박봄이
백곰 우리 옆에는 마치 무릉도원을 연상케 하는 웅장한 그랜드캐니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백곰 우리에 비해서) 울창한 소나무와 절벽, 그리고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폭포수. 한편의 그림과 같은 경관이 입장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집의 쥔장은 뉘신지 기웃거려보니 역시! 바로 호랑이 우리였다.

마침 그날 중국인 관광객들이 왁자지껄 한무리 호랑이 우리 곁에 몰려 있었는데 그들은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연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로 환호를 지르며 사진을 찍어댔다. 워낙 풍채가 우람하신 우리 호랑이 어르신, 웬만한 플래시에는 눈 하나 꿈쩍 않으신다.

좌측에는 백호 한 마리가 '따땃한' 일광욕을 즐기고 있고 우측에는 뱅골 호랑이 한쌍이 한폭의 그림마냥 자리하고 있었다.

▲ 대피 중인 뱅골 호랑이
ⓒ 박봄이
거리도 멀고 미동도 없어 혹 녀석들이 모형이 아닌가 하고 고개를 들이대는 철없는 기자의 등뒤로 어느 중국인 관광객 한 분이 목청이 터져라 "#%$#%*$%%"라고 외쳤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우리 뱅골 호랑이 풍채에 맞지 않게 움찔 놀라 자리를 피하는 진풍경도 목격할 수 있었다.

몸값 꽤나 나가는 녀석들이기에 다른 녀석들과는 다른 귀족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었고 녀석들의 우리에서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수의 무지개까지 볼 수 있었다. 자, 잠시 감상하시라.

▲ 무지개가 보이시죠?
ⓒ 박봄이
이윽고 찾은 곳은 미어캣의 우리. 자칫 큰 동물들만 감상하고 이런 작은 녀석은 건성건성 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녀석들, 제대로 스타 근성이 있는 녀석들인지라 군대 내무반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포즈를 취해 주었다.

미어캣은 원래 사막에 굴을 파고 사는 습성이 있는데 티브이에서 주변에 적들이 오는지 알아보기 위해 두 발로 폴짝 서서 주변을 경계하는 모습으로 익숙한 그 녀석들이다. 역시나 동물원에 살아도 천성은 못 버리는지라 연신 땅을 파며 굴을 만들고 있는데 기자가 도착했을 당시에는 잠시 새참 시간이었는지 파다만 땅굴만 보이고 녀석들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한 녀석은 내무반 말년 병장이나 되는 듯, 무방비 상태로 철푸덕 주저 앉아 있었다. 그 옆의 녀석은 군기 바짝 든 이등병마냥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마치 자신들을 구경하러 온 입장객들에 대해 병장 미어캣에게 보고하는 듯했다.

▲ 병장 미어캣과 이병 미어캣
ⓒ 박봄이
운동량이 갑자기 많아져 어디라도 앉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주위를 빙빙 둘러보았다. 그랬더니 오호라~ 물개쇼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 멘트가 들려왔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말로만 듣던 물개쇼를 볼 수 있겠구나 싶어 찾아 들어갔다.

3마리의 물개와 2명의 조련사, 그리고 엑스트라 펭귄이 보여준 물개 쇼. 녀석들은 이미 우리의 선입견 속의 '동물'이 아니었다. 물론 나름대로 철저히 조련된 결과이겠으나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녀석들의 영민함에 감탄사만 연신 나올 밖에. 글자 알아 맞히기. 다이빙에 작은 연극까지 보는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다만 울어대는 아이들 입막음 해가면서 끝까지 보고 계시는 분으로 인해 주변에서 소란이 있었던 것 빼고는.

▲ 자~ 물개 쇼에 빠져봅시다!
ⓒ 박봄이
쇼도 끝나고 이번엔 어디로 가 볼 것인가 고민하던 기자, 울타리도 낮은 아담한 마구간으로 들어간다. 그곳엔 양 세 마리, 염소 세 마리, 마구간엔 당나귀 등 초식 동물들이 한데 모여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그곳엔 입장객이 한 명도 없었기에 갑작스럽게 출몰한 기자의 모습에 놀란 초식 동물들 서로 눈치 보기 바쁘다.

▲ 어린 양들이 무슨 대화를..?
ⓒ 박봄이
이미 여러 해 동물원에서 잔뼈가 굵어 인간에 대한 경계심이 없는 어미 양은 첫 봄 나들이 나온 어린 새끼 양들을 기자 앞으로 밀어주는 예의도 갖추어 주었다. 이 부분에서 기자 감동 먹었음은 당연지사.

새끼 양들, 척 보니 태어나 처음으로 하는 봄 나들이 같은데 어찌나 울음소리가 우렁찬지 분명 동물원에서 한자리 차지할 것으로 보였다. 용기 있게 손을 뻗어 털을 만져보니 어미나 새끼나 까실까실 한 것이 털 가닥이 아니라 털 뭉치 그대로였다.

녀석들 부디 잘 자라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건강하게 다시 볼 수 있었으면 하고 양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을 내려주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잠시나마 짬을 내 찾아가 본 동물원. 바깥 세상과는 사뭇 다르게 그다지 치열하지 않은 그들만의 공간에서 녀석들은 자연과는 또 다른 세상에 적응하며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인간의 눈요기를 위하여 동물원 우리에 가두어 두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는 하나, 사육사들 역시 최선을 다해 그들의 건강을 체크하며 최대한 자연 환경에 맞추어 주려 노력하고 있었다. 동물들 역시 자연과는 비교되지 않겠지만 천적이 없는 그 곳에서 자신의 모습을 뽐내며 본격적인 봄맞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 왜 나만 보세요? 부끄러워요.
ⓒ 박봄이
아직 쌀쌀하지만 새싹이 돋아나는 봄.

이 봄에 누군가와 손을 맞잡고 산책하며 여유롭게 거닐 계획이 있으시다면 한번쯤 이 순수한 영혼들과의 만남은 어떤 지 추천해 드린다. 아마 한곳 한곳 세심한 눈길을 둘러본다면 여러분들이 그 동안 느끼지 못했던 동물들의 새로운 모습들을 찾을 수 있으실 것이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기자가 만나본 동물원 식구들의 가진 퍼레이드 감상하시면서 편안한 하루 되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 여러분들~ 저희 보러 빨리 오세요~!!
ⓒ 박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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