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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주머니, 그거 말고 옆에 있는 거 주세요."
"응, 이건 못 써. 장사하는 사람이나 사 가는 거야. 이걸 가져가라고."

농수산시장에서 만난 아주머니들로부터 심심찮게 듣는 말이다. 매일의 식탁을 풍성하게 꾸미지 못하는 나는 반찬거리를 몰아서 산다. 그래서 1주일에 한 번씩 수퍼마켓이나 할인매장에 들르기도 하고, 또 2, 3주에 한 번씩 집에 오는 길에 있는 농수산 시장에 들러 야채나 과일, 또는 생선을 사기도 한다.

농수산시장은 언제나 사람들로 활기가 넘친다. 나 같은 '작은 손'의 주부나 손님을 맞으려는 '큰 손'의 아줌마들로 늘 북적대고 또 식당을 하는 주인들이 일손을 대동하고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선 야채나 과일, 생선 등이 신선하기 때문에 주부들과 상인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곳이다. 그런데 농수산시장에 갈 때마다 늘 듣는 말이 있다.

"이건 못 쓴다고. 장사하는 사람이나 사 가야지, 집에선 못 먹는다니까."

마늘을 살 때도 그랬고 바나나를 살 때도 그랬다. 고구마를 살 때도 그랬다.

"이 고구마는 맛이 없으니 집에선 못 먹고 중국집에서 맛탕이나 만들 때 쓰는 거라고."

그리고 감자를 사려고 할 때도 역시 사람은 달랐어도 같은 말을 들었다.

"이건 업소용으로 써야 하니까 대신 내가 골라 주는 '좋은 것'을 가져가. 이건 장사하는 사람들이 식당에서 많이 만들 때 그냥 '살짝' 넣어도 표시가 안 나니까 써도 되지만, 집에서 해 먹는 음식에다는 '못 쓰는 것'이여."

양이 좀 많아 보여 싼 맛에 사려고 했지만 '못 쓴다'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아주머니의 말을 무시할 만큼 나는 멍청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농수산시장에 있는 아주머니들의 말을 들으며 왜 '못 쓰는 것'을 팔고 식당 주인들은 사 가는지 늘 궁금했다(아니 궁금할 거야 없지. 다 돈 벌자고 하는 '짓'일 테니까). 물론 아주 못 쓰는, 못 먹는 것이야 아닐 테지만 제 식구들이 먹는다고 했을 때 말릴 거라면 문제가 있는 게 아니겠는가.

하여간 농수산시장에 갈 때마다 한두 번은 그런 말을 들었던 터라 나는 돌아서 나올 때마다 늘 기분이 개운하지 않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은 우리집에서 먹을 음식을 만들기 위해 깨끗한(?) 좋은 '가정용' 재료를 살 수 있지만 우리 가족들이 외식을 할 때는 그런 '나쁜' 재료를 쓴 더러운(?) 음식을 먹게 된다는 말 아닌가.'

최근에 '쓰레기 단무지'로 만든 만두가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어제 가 본 할인매장에서도 그 여파는 금세 나타났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할인매장의 만두 시식 코너는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 물건을 사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지만 누구도 그 앞에 서서 만두를 맛보려고 하지 않았다. 점원은 울상을 지은 채 '우리 만두는 쓰레기가 아니다'고 항변하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먹을 것을 가지고 장난을 칠 것인가. 이제 국민들은 분노할 기력조차 없다. 그런 쓰레기 만두를 버젓이 팔 생각을 한 '도덕성 제로'인 식품회사나 납품을 받고 관리를 소홀히 한 회사, 그리고 이를 감시해야 할 행정당국의 직무유기. 또한 이를 엄벌해야 할 사법당국의 솜방망이 처벌 등의 총체적 부실이 모여 '쓰레기 만두'를 낳은 게 아니겠는가.

하긴 이렇게 먹을 것을 가지고 장난을 친 게 어찌 만두뿐이겠는가. 분통 터질 일은 도처에 지뢰밭처럼 산재해 있다. 미군들이 먹다 버린 햄을 가지고 만든 부대찌개와 유통기한 지난 어묵으로 만든 시원한(?) 어묵국, 그리고 국산으로 둔갑한 중국산 농산물.

농약, 항생제를 과다하게 사용한 먹을 것들이 온통 우리의 식탁을 흔들어 놓고 있다. 도대체 먹을 게 없는 현실이다. 더구나 그런 각종 유해물질로 오염된 우리의 몸은 한 세대가 지나봐야 그 폐해를 알 수 있다고 하니 더욱 끔찍하지 않은가.

이번 만두 사건을 보면서 어떤 여성이 방송에서 외친 말이 생각난다. "우리나라도 싱가포르처럼 음식 가지고 장난을 치면 사형에 처합시다."

싱가포르가 음식 가지고 장난을 친 사람들을 정말 사형에 처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의 분노가 얼마나 컸으면 이런 극단적인 방법말고는 처방이 없다고 자조적으로 말하겠는가. 그런 사람들에 대해 사형까지는 아니어도 이제까지의 솜방망이 대신 철퇴를 내려 엄단해야 한다는 데는 나 역시 동감한다.

업자들도 그렇고, 관계당국도 그렇고 이제 정말 모두의 각성이 필요한 때이다. 언제까지 이런 짓을 되풀이하고 습관처럼 분노하고, 또 다시 반복한는 어리석은 짓을 계속할 것인가.

내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아이들이 먹을 음식이라고 생각하고 온 정성을 다하는 양심적인 업자들이 사방에 널려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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