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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상인들은 정부의 대형할인점 규제완화 방침에 맞서 이를 저지하기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지난 5월 9일 발족시켰다. 비상대책위원회는 260만명 소상공인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의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대형할인점은 100%의 성장률을 기록한 반면, 중소영세업체들은 20%가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다. 대형할인점에 맞서 중소영세업체가 어떻게 자신의 생존권을 지켜내고 있으며, 이들이 정부에 요구하는 정책은 어떤 것인지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봤다... 편집자 주


▲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중산12단지에 위치한 슈퍼마켓협동조합 코사마트. 주인인 장기준씨가 과일을 옮기고 있다.실평수는 10평 남짓하다.
ⓒ 오마이뉴스 박수원
밖에서 보기에는 꼭 30평은 넘는 슈퍼마켓처럼 보였다. 그런데 웬 걸? 슈퍼마켓 안으로 들어갔더니 실평수가 10평 남짓이다. 그나마 등기부 상에 등록된 평수는 7평이란다. 문 밖에 설치해 놓은 5미터 가량의 음료수와 과일 진열 냉장고 때문에 슈퍼가 커 보였다.

17일 오전 10시. 50대 중반의 여자 손님이 오더니 오이 3개 1200원, 콩나물 500원, 부추 1000원, 깻잎 1000원, 밀가루 1050원, 모두 4750원 어치의 물건을 샀다. 단골 손님이라는 그녀에게 이 곳을 자주 찾는 이유를 묻자 주저없이 답했다.

"채소가 신선하고 싸니까. 그리고 친절하거든."

계산을 마친 단골 손님은 진열된 수박을 보면서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제 딸네 집 앞 과일 가게에 갔는데, 수박이 여기 보다 비싸더라고. 여기서 살 걸 잘못했어."(참고로 이 슈퍼에서 파는 수박은 1만원이다)

대형할인점의 틈새 찾기

장기준(49)씨와 최호래(46)씨 부부가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중산12단지에 슈퍼마켓협동조합 코사마트를 낸 것은 지난 2003년 2월. 장씨는 다니던 회사가 화의 신청을 하는 바람에 지방 발령이 나자 전업을 선택했다. 샐러리맨이던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슈퍼마켓을 시작하게 됐을 때 부인 최호래씨는 "앞이 캄캄해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슈퍼마켓협동조합 코사마트를 알게됐고, 3000만원을 투자해 물건이며 가게 인테리어를 꾸며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원래 이 자리에 수퍼가 있었어요. 근데 이 동네에 있는 3곳 슈퍼 가운데서 제일 장사가 안 됐지요. 시작하기 전에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아마 이 동네 슈퍼 가운데 저희 집 매출이 제일 높을 겁니다."

장기준씨와 최호래 부부의 근무시간은 오전 8시부터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정확하게 말하면 장기준씨의 근무시간은 다음 날 새벽 4시까지다. 장씨는 가게 문을 닫는 새벽 1시에 서울 강서구 발산동에 있는 강서농수산물센터로 과일과 채소를 구입하러 간다. 그때 가야 좋은 물건을 싼 값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 최호래씨는 "우리 집의 경쟁력은 500원 콩나물과 깐 대파"라고 말한다.
ⓒ 오마이뉴스 박수원
10평 남짓한 이 슈퍼의 경쟁력은 신선한 과일과 채소다. 장기준씨는 가게를 시작하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가져오기 위해 새벽 도매시장을 찾았다.

"매일 매일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갖다 놓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더라구요. 지금이야 수요량을 어느 정도 예측하니까 재고가 없지만 초기에는 어디 그런가요. 채소와 과일은 신선하지 않으면 팔 수가 없잖아요. 손해 보고 버리기도 많이 버렸지요. 자꾸 버리게 되니까 아내가 옆에서 보다가, 그만 두자고 몇 번을 그러더군요."

장씨는 신선도 뿐 아니라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형할인마트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채소와 과일 가격을 꼼꼼하게 비교하기도 한다.

10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이 곳에는 없는 게 없다. 개별포장된 채소 아욱, 브로콜리, 부추, 콩나물에서 수박, 참외, 토마토, 방울토마토. 바나나까지. 그렇다고 이 곳에 공산품이 없다거나 비싼 건 아니다. 고양시슈퍼마켓협동조합에서 공동구매를 통해 물건을 구입하기 때문에 10~30%까지 할인된 가격으로 공산품을 소비자들에게 공급한다.

"조합원들 상부상조가 큰 힘... 세제 혜택 등 정책적 배려 아쉬워"

"주변에 하나로마트, 이마트, 롯데마트, 까르푸 등 여기서 차로 5~10분만 가면 갈 수 있는 대형할인점들이 많아요. 공산품은 가격경쟁력이 낮으니까 틈새 시장을 노렸죠. 과일이나 채소는 매일 매일 신선한 거 먹는게 좋잖아요. 많이 사서 먹기는 아무래도 부담스럽고."

장기준씨의 틈새전략은 적중했다. 채소와 과일이 신선하고, 가격도 저렴하다는 소비자들의 입소문이 돌면서 찾는 손님들이 부쩍 늘었다. 최호래씨는 자신의 점포 경쟁력은 포장해 파는 콩나물과 깐 대파라고 설명했다.

장기준씨와 최호래씨는 콩나물과 대파를 새벽 시장에서 사와서 500원 어치씩 포장을 한다. 소비자들이 먹기 편하면서도 저렴한 가격에 포장해 파는 것.

"사실 대파 한 단을 1000원에 파는데 잘 안사가요. 한꺼번에 사가지고 가면 버리게 되니까. 오히려 대파 한 단의 1/3정도를 다듬어 깨끗히 포장해 500원 가격을 붙여놓으면 더 잘나가요. 버리는 게 없잖아요."

10평의 슈퍼마켓이지만 신용카드 사용도 가능하고, 이 지역 슈퍼마켓 협동조합 61개 점포끼리 마일리지 카드도 만들어 운영한다. 대형할인점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다. 물건 가격 계산 뿐 아니라 재고 파악, 일별·월별 매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동시스템도 협동조합의 도움으로 이미 구축돼 있다.

장기준씨는 2년 동안 슈퍼를 운영하면서 꾸준한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일별 매출이 200만원 이상이다. 고양시수퍼마켓협동조합 가운데 매출 신장세가 가장 높은 곳이다.

단골 손님에게는 외상도 가능하다

▲ 계산대 앞에 붙은 외상 영수증

장기준씨와 최호래씨의 슈퍼 계산대 앞 유리에는 영수증이 10여장 정도 붙어있다. 물건 가격은 대형할인마트처럼 자동시스템으로 계산되지만, 이곳에서는 외상이 가능하다. 단골 손님 위주로 장사를 하기 때문이다.

계산대 앞에 붙어 있는 영수증 10여장에는 아파트 동호수와 함께 외상가격이 표시돼 있다. 대부분 5000원 내외다. 최호래씨는 외상이 가능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손님들을 믿기 때문에 외상도 줄 수 있는거 아닌가요. 우리 손님들 신용이 좋아요. 외상도 사실 하루 이틀이면 다 갚거든요."

손님들은 외상을 줄지언정 물품 납품하는 업자들에게 외상은 없다. 업자가 막걸리 10여병을 가져오자, 영수증과 함께 현금이 바로 지출됐다.

"월말에 결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바로 결제해 주는 게 서로에게 좋아요. 우리가 현금 유동성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야 물건 대주는 사람들도 일하기가 편하잖아요."
장씨와 최씨 부부는 그러나 먹고 살만해 진 원동력은 뭐니뭐니해도 지역슈퍼마켓협동조합 회원들의 상부상조라고 말한다.

"조합원들과 공동구매해서 저렴한 가격에 상품 공급 받고, 정보 공유하고, 어려운 일 있을 때 서로 품앗이 하는 게 가장 큰 힘입니다. 그게 없으면 대형할인점에 맞서 버티기 힘들죠."

장기준씨는 정부가 대형할인점을 위한 정책만이 아니라, 소형업체들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자영업자들, 중소업체들 살린다고 말은 하는데 우리 같이 슈퍼 운영하는 사람들은 대형할인점과 출발점이 달라요. 세제 혜택이 가장 절실합니다. 대형할인마트는 카드수수료가 1.5%인데 저희는 2.5%예요. 카드 지출이 점점 늘어나는데 수수료가 높으면 아무래도 슈퍼에서는 카드를 기피하게 되죠.

단적인 예로 주류(술)도 그렇습니다. 대형할인마트에 들어가는 주류와 저희들에게 들어오는 주류의 세금이 달라요. 소비자들에게 최소한 마진을 남기고 술을 팔아야 하는데 워낙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니, 싸게 팔고 싶어도 팔 수가 없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365일 영업하는 것이 가장 힘이 든다는 장씨와 최씨 부부. 세수도 제대로 못하고, 잠도 못자고 새벽까지 일해야 하는 고달픔은 있지만 소비자들의 입과 조합원들의 상부상조를 중요시 하는 영업 전략은 변함없이 이어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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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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