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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지역 '이주노동자 선거유세 퍼포먼스'에 참가한 아지즈 출마자와 이주노동자 선거원들이 대구백화점 앞에서 선거유세를 벌이고 있다.
ⓒ 전민성
"신선해요, 괜찮아요."

대구 백화점 앞에서 만난 강화영, 김지영, 정주영(남산고, 19)양은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선거에 출마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주노동자가가 정치인이 되면 어떤 점이 좋겠냐고 묻자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어요?", "학벌 학연 지연 등이 파괴되겠지요", "정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겠지요"라고 말했다. 김지영양은 "최소한 서로 싸우지는 않겠죠"라고, 현 정치인에 대한 불신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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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1시, 대구시내 중심가에는 이주노동자들의 선거유세 퍼포먼스가 펼쳐져 대구 시민들의 관심을 불러모았다. 1994년 연수생 비자로 한국에 입국한 후 10년 동안 일해 온 아지즈(37, 방글라데시)씨가 출마자로 설정된 이번 이주노동자 선거 퍼포먼스에는 중국, 방글라데시, 카자흐스탄 노동자 등 총12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선거 운동원 역할을 맡아 시민들에게 선거유세 유인물을 나누어 주며, 한 표를 부탁했다.

대구 중앙로 중앙파출소 앞에서 시작된 선거유세는 중앙로를 따라 이루어졌으며, 띠를 두른 선거운동원들은 대구백화점 앞에서 한 줄로 서서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이주민 정치인에게 투표할 것을 요청했고, 출마자 아지즈씨는 확성기를 들고, '만 백성을 위한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선거 연설을 했다.

대구 백화점 앞에서 나눠준 선거유세 전단지를 한참 읽고 있던 김창희(36, 내당동)씨는 이주정치인에게 한 표 던지겠냐는 질문에 '어느 지역에 출마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가상 퍼포먼스라는 것을 알고는 겸연쩍어 하며,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복지혜택이 마련되겠지요"라고 말했다.

▲ 이주노동자 정치 출마자 아지즈씨가 대구백화점 앞에서 선거유세 연설을 하고 있다.
ⓒ 전민성
미국에 이민간 지 30년 되었다는 가브리엘 백(48,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거주)씨는 "우리나라도 이주노동자를 한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동등한 자격을 주며, 노동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민으로서 한국의 이주민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묻자, "남을 위한 생각, 이해, 수용 등이 부족한 것 같아요. 국가 정책에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윤현지(20, 검단동)씨는 "(본인은) 현재 투표권이 없지만, 한국사회가 다양화되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이들 중에서도 국회의원이 나오지 않겠냐"고 낙관했다. 시민 영주권을 얻고 귀화한 외국인이 시·구의원직을 밟아가며, 차근차근 국회의원에 출마한다면 한 표 던지겠냐는 질문에, "다른 정치인과 비교해 선거공약이 마음에 들면 투표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대체로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진 대구에서는 외국인 정치인이 나오기 힘들지 않겠냐는 질문에 장우진(경북대 재학, 포항)씨는 "소외된 서민계층에 초점을 맞추면, 일반시민들의 표를 얻을 수 있지 않겠냐고 말하기도 했다.

출마자 아지즈씨가 속한 기독교 근로자 센터의 김경태 대표는 "현재 대구·경북지역 만도 5만여 명의 외국인 근로자가 일하고 있고, 한국사회도 세계화 되어 가고 있는데, 그에 맞는 사고의 틀을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며 "최소한 우리의 집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사회 일원으로 시민권, 영주권을 줘야 한다는 논의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이루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독교 근로자 센터는 이주노동자의 시민 영주권에 관한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으며,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합법화 되고 나면 시민권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룰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주노동자를 위한 봉사를 한 지 7년 정도 되었는데 초기의 열악한 상황이 나아져 이제는 '최저임금은 줘야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 그동안 노력의 결실"이라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이주민 정치인이 나오기 위해서는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냐는 질문에 “10-15년 정도 걸리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1994년 연수생 비자로 한국에 입국한 아지즈(37, 방글라데시)씨는 “일이 힘들어 친구가 일하던 다른 공장으로 옮겼다”며, "이주노동자들이 손이 잘리거나, 임금을 떼이고 할 때마다,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하소연 할 곳조차 없는 것이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또, "사장들이 나가라고 하면,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현실이 가장 힘들다"고 털어놨다.

대학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한 아지즈씨는 무역업체를 차려서 한국제품을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한국에서 계속 일하기 위해서 합법적인 체류를 보장할 수 있는 노동비자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아지즈씨의 선거운동원으로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며 시민들을 만난 리턴(30, 방글라데시)씨는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온 지 6년 되었다. 처음 평택의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6개월간 일하다가, 작업시간이 너무 길고 식사도 나빠 대구로 오게 됐고, 현재는 도금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턴씨는 지금도 일이 고되고 힘들지만, 이주민 정치인이 나와 이주 노동자의 문제들을 해결해 줄 주 있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비쳤다. 리턴씨는 한국에서 몇 년 더 일해 결혼도 하고,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카자흐스탄에서 들어온 지 7개월 됐다는 존(21)씨는 매달 50명의 카자흐스탄 인들이 한국에 오고, 그 중 10여명씩 잡혀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또 6년 전 연수생 비자도 들어와 대전에서 도배지 프린트 하는 일을 일 년 반 동안 한 섹 아점 아하메드(37)씨는 IMF가 닥쳐 일이 줄자, 의정부의 원단 공장으로 옮겨 1년간 일했다. 현재는 대구의 도금업체에서 철판에 염색하는 작업을 3년째 하고 있는데, 가장 힘든 것은 무거운 철재 작업물을 나르는 것과 지독한 냄새라고 털어놨다.

▲ 모두 12명의 이주노동자 선거원들이 참여한 이번 퍼포먼스에서 이주노동자들은 대구 중앙로에 나온 시민들에게 선거유인물을 나누어 주며 한 표를 부탁했다.
ⓒ 전민성
본국에서는 건설 수주를 따내 작은 건물이나 도로를 건설하는 일을 했다는 아점씨는 고국에 누나 둘, 부모님이 계시지만, 100만원 정도의 월급으로 방세와 밥값을 제하고 나면 살기 힘들어 돈을 부칠 수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아점씨는 한국에서 계속 일하며 고국의 가족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밝혔다.

독일 유학시절부터 6년째 '이주노동자'에 관한 작품 활동을 벌여 온 작가 박경주씨는 지난 9월 안양에서 가진 이주노동자 선거유세 퍼포먼스에 이어 지역의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참여의 기회를 주고, 지역 시민들의 다양한 관심도 살피기 위해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며, 앞으로 12월 중에 광주, 대전, 창원에서도 행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는 이주노동자 행사들이 수도권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지역의 공단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이번 행사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예상과는 달리 시내에서 만난 대부분의 대구 시민들은 이주민 정치인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고 한 표 던질 수 있다는 의견이 다수였으나 카메라가 다가오자 인터뷰에 응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중앙파출소 앞에서 시작하여 세 시간 가량 치러진 선거유세 퍼포먼스는 대구 백화점 앞을 돌아 오후 4시 쯤 한일극장 앞에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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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동네의 성미산이 벌목되는 것을 목격하고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이주노동자방송국 설립에 참여한 후 3년간 이주노동자 관련 기사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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