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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타결 직후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은 "앞으로는 김기춘 손에 달렸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국회법제사법위원장인 김기춘 의원이 이번 헌법재판소의 노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에서 검사 역할인 소추위원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 헌정사의 최대 오욕 중 하나인 72년 유신헌법의 초안작성자로 지목된 바 있는 김 의원이 헌법재판소의 검사역할을 하게 된 것은 우리 역사의 슬픈 굴곡을 떠올리게 한다.

 

"72년 비상계엄이 선포된 다음 날 아침 청와대에서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고 갔더니 박정희 대통령이 메모를 꺼내 놓았다. 박 대통령은 '이건 내가 만든 건데, 이 안을 헌법학자들한테 맡기려고 했으나 보안관계로 맡기지 못하고 법무부에서 작성한 것인데, 헌법제정에 대한 내 구상'이라면서 법무부에 가서 작업을 도우라는 것이었다.나와 갈봉근 (당시 중앙대)교수가 법무부에 가보니 신직수 법무부 장관과 김기춘 과장이 주동이 돼 법안을 모두 만든 상태였다. 신 장관이 '골격은 손댈 수 없다'고 해 자구수정 작업만 했다"

 

원로 헌법학자 한태연(88세) 전 서울대 법대 교수의 증언이다. 한 전 교수는 지난 2001년 12월 8일 한국헌법학회 주최로 서울대 근대법학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역사와 헌법' 학술대회에서 유신헌법 제정 경위에 대해 이와 같이 밝혔다.(관련기사:"유신헌법은 박정희가 구상하고 신직수·김기춘이 안을 만들었다"

 

한 전 교수는 1972년 신직수 당시 법무장관과 서일교 총무처장관, 갈봉근 전 중앙대 법대교수 등과 함께 유신헌법 제정 실무를 맡은 '법무부 헌법심의위원회'에 참여했다. 그는 갈 전 교수와 함께 유신헌법 제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날 이를 부인했다.한 전 교수는 "(박 대통령의) 측근들 얘기를 들으면, 평소부터 박 대통령은 드골헌법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며 "김기춘 과장을 파리에 보내 1년 동안 드골헌법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게 했다"고 밝혔다.

 

그는 계속해서 "헌법안을 보니 몇 개 조항은 국민의 지탄을 받을 만한 사항임을 직감했으나,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며 "욕은 우리가 먹고 만든 사람은 다 빠져버렸다"고 덧붙였다.

 

안경환 당시 헌법학회장(현 서울법대 학장)은 이에 대해 "유신헌법 제정 당시 기록이나 관련자료가 전혀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한 전 교수가 공개한 내용은 역사적 연구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김기춘 의원은 이에 대해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한 전 교수의 기억에 착오가 있는 것 같다"며 이를 부인했다. 프랑스는 비상사태하에서 대통령 권한이 어느 정도인가에 대해 조사해 보고한 정도일 뿐 프랑스에 가거나 초안을 만든 적은 없다는 것.

 


김 의원은 또 법무장관을 지낸 직후인 지난 92년 대선을 앞두고 부산시장과 부산지방경찰청장 등 부산지역 기관장들을 모아놓고 당시 김영삼 후보를 당선시키자는 '모의'를 한 이른바 '초원복국집 사건'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김 의원은 12일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결서를 헌법재판소에 접수시킨 뒤 "헌법재판소법에 소추위원은 피소추인을 불러 신문하도록 규정돼있다"며 "적극적으로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태그:#김기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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