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헌법학회 학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한태연 헌법학회 고문.
ⓒ 오마이뉴스 황방열

지난 72년 10월 공표된 유신헌법의 기본 골격은 프랑스의 드골 헌법을 모델로 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구상했으며 당시 신직수 법무부 장관과, 김기춘 법무부 법제과장(현재 한나라당 의원)이 실무작업을 주도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유신 전에 김기춘 파리에 보내"

 

이는 한국헌법학회(회장 서울대 안경환 교수)가 지난 8일 개최한 '역사와 헌법' 학술대회에서 72년 공화당 국회의원으로 유신헌법 제정과정에 참여했던 헌법학회 한태연(86세) 고문이 밝힌 것으로 한 고문은 "측근들 얘기를 들으면 평소부터 박 대통령은 드골 헌법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며 "김기춘 과장을 파리에 보내 1년 동안 드골 헌법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도록 했다"고 소개했다.

 

"유신헌법 제정 상황에 대해 증언해 달라"는 질문에 대해 한 고문은 이같이 밝히면서 "유신 이튿날 아침 청와대에서 '들어 오라'는 연락을 받고 갔더니 박 대통령이 메모를 꺼내 놓고는 '이건 내가 만든 건데 이 안을 헌법학자들한테 맡기려고 했으나, 보안관계로 맡기지 못하고 법무부에서 작성한 것인데 내용은 헌법제정에 대한 내 구상이다'라면서 '이제부터 법무부에 가서 작업을 도와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한 고문은 박 전 대통령이 설명한 권력구조의 핵심은 대통령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하는 것과 긴급조치권이라고 설명했다.한 고문은 이어 "나와 갈봉근(당시 중앙대) 교수가 (법무부에)가보니 신직수 장관과 김기춘 과장이 주동이 돼 안을 모두 만든 상태였다"며 "장관이 '골격은 손댈 수 없다'고 해 '자구수정' 정도만 했다"며 "이게 내가 (유신헌법 제정에) 관여한 전부"라고 말했다.한 고문은 또 "헌법안을 보니 몇 개 조항은 국민의 지탄을 받을 만한 사항임을 직감했으나,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며 "욕은 우리가 다 먹고 만든 사람은 다 빠져버렸다"는 소회를 나타냈다.

 

한 고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한태연, 갈봉근(당시 중앙대 교수) 등이 유신헌법을 기초했다'는 그 동안의 '정설'이 부정되는 것은 물론 박정희 전 대통령이 71년 대통령선거 당선 직후부터 '유신'을 통한 장기집권을 준비한 것이 된다.

 

그러나 이에 대해 김기춘 의원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확인해 보면 알 일이겠으나 자료수집을 위해 파리에 간 일이 없다"며 "(한태연 고문의 기억에) 착오가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나는 당시 법무실 평검사였는데 장관이 여러 검사들에게 자료조사나 스터디를 맡겼다"며 "프랑스에서는 비상사태하에서 대통령 권한이 어느 정도냐 하는 것 등에 대해 조사하고 스터디해 보고하는 정도 외에 다른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70년대를 무사히 넘긴 것은 유신의 덕"

 

한태연 고문은 "유신의 정당성에 대한 홍보활동을 했는데 지금은 유신 헌법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5·16이전 정치상황은 매우 엉망이었기 때문에 극단적 조치가 안나왔으면 내부로부터 붕괴되는 상황이었다"며 "70년대를 무사히 넘긴 것은 유신의 덕"이라고 답했다. 제 2공화국의 내각책임제 헌법 제정에도 참여했던 한 고문은 2공화국 헌법에 대해서는 "헌법 자체로는 85점 정도를 받을 수 있으나 나는 내각제가 당시 상황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직감했으며 결국 그래서 실패했다"며 "이승만 정권 몰락이후 성립된 '대통령제는 독재, 내각제는 자유'라는 통념에서 내각제가 채택된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한 고문은 49년 일본 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서울대, 동국대, 한양대 교수를 거쳐 63년에 공화당 의원이 됐으며 유신 이후에는 유정회 의원으로 활동했다. 또 나치즘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던 독일의 헌법학자 칼 슈미트의 이론을 국내에 소개, 국내 헌법학계에 한 흐름으로 자리잡게 했으며 2·3·4 공화국 헌법 제정 과정에도 참여한 원로 헌법학자다.

 

헌법학회 측은 "헌법에 대한 사료는 물론, 제정과정에 참여한 인물들의 증언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유신이라는 한국현대사의 결정적 사건에 대한 증언과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한 고문을 초청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학술대회에 참가한 50여 명의 법학교수들 중 일부는 한 고문이 당당하게 유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그간 알려져 있던 것과는 다른 사실들을 소개하자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태그:#유신헌법, #김기춘, #한태연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