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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환 노동부 장관(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남소연
1974년 영국의 노동당 정부는 영국 출신 다국적 광산기업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노동자들에게 행한 '야만적인 착취'를 조사하고 비판했다.

위험하고 더러운 노동환경에서 낮은 임금을 주면서 너무 오랫동안 노동시키는 영국 자본가들을 비판하면서 윌슨 수상은 "우리에게는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capitalism with a human face)가 필요하다"고 외쳤다.

과연 자본주의가 사기와 폭력과 인권 유린을 버릴 수 있을까? 미국이 북베트남에 융단 폭격을 가하기 시작한 '이유'라고 말한 것-미국 함정이 통킹만 앞의 '공해' 상에서 어뢰 공격을 받았다는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었고,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하면서 내건 '이유'-이라크가 '대량 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도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나 부시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거짓말쟁이라는 것이 아니라 미국 자본주의가 기초적인 도덕성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를 '흡혈귀'라고 불렀다. 드라큘라는 아름다운 여자의 목에 이빨을 넣어 살아있는 피를 마셔야 정신이 들며 피를 많이 빨면 빨수록 더욱 원기가 왕성해지는데, 그 사이에 여자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는 불가능한가?

최근 몇 년 동안 자본가들과 그들의 지지 세력이 하는 행동을 보면 드라큘라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들이 피를 말리는 상황을 견디다 못해 계속 죽어 가는데, 이것을 보면서 자본가들과 정부 관리들은 투자환경이 개선되고 있다고 천연스럽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법안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노동자의 '인권'의 입장에서 개정을 권고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노동자는 자본가의 밑에서 억압받는 노동자이기 이전에 자본가와 마찬가지로 동등한 하나의 시민이고 인간이다.

"모든 인간은 법 앞에 동등하다"는 표어는 이미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권'의 입장에서 비정규직법안을 비판한 것에 대해 "잘 몰라서 그렇다"고 대응한 장관이 오히려 잘 모르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나는 노동부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헷갈린다. 재벌계 기업의 사장인 내 친구가 김대환 장관을 만난 뒤 나에게 "이전의 장관보다는 김 장관이 노동문제의 핵심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고 평했을 때 아차 했다.

지금과 같은 노동부는 없애는 것이 예산 절약에 도움될 듯

기업이나 재벌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왜 '노동부' 장관이 되어야 하는가? '기업부'나 '재벌부'의 장관이 되면 좋을 것이 아닌가? 그런 부처가 없다면 처음부터 장관이 되지 않았다면 훨씬 문제가 쉬워졌을 것이다.

인권위가 비정규직 문제를 어렵게 만든 것이 아니라 노동부에서 일할 수 있는 마음씨가 없는 사람이 노동부 장관이 된 것 때문에 문제가 이렇게 어렵게 된 것이다.

▲ 김수행 교수
ⓒ 남소연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모든 부처가 사실상 기업 편이기 때문에 '기업부'라고 새삼스레 만들 필요가 없었을 것이므로, 노동부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 국무총리, 재경부, 법무부, 행정자치부 등과 싸워야 할 일들이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장관을 둘 봐에야 노동부를 없애는 것이 예산 절약에 도움을 줄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10위 안팎의 '선진국'이다. 이제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선진국과 같은 자유와 평등과 연대는 시기상조다"는 박정희 식의 유치한 유물론은 통하지 않는다. 더불어 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인권부터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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