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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형사법학회 등 3대 학회 형사법 교수들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보법을 폐지해도 현행 형법으로 충분히 대체가 가능해 처벌 공백이 생기지 않는다"며 국보법 폐지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기사대체 : 20일 오후 4시 5분]

전국의 형사법학 교수들이 최근 쟁점화한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에 대해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행 국보법은 '사상형법'으로서 형법의 기본 원칙에 맞지 않는 법이며 폐지해도 처벌 공백이 생길 우려가 없다는 의견이다.

한국형사법학회를 비롯해 형사정책학회·비교형사법학회 등 3대 학회는 20일 오전 11시 서울시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보법을 폐지해도 현행 형법으로 충분히 대체가 가능해 처벌 공백이 생기지 않는다"며 국보법 폐지 의견을 공식 표명했다.

3개 학회는 형사법학자 모임 중 최대 규모로 이들 단체가 국보법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이날 발표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국보법은 애초 형법이 제정되면 폐지하려고 했던 한시적 법률이고, ▲국보법을 폐지하더라고 처벌공백이 발생할 여지가 없으며, ▲오히려 유엔(UN)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서도 여러 차례 폐지 권고를 해왔다며 폐지 입장을 밝혔다.

국보법 존치론 반박 1 : 광화문에서 인공기를 흔들면?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학자들은 현재 국보법 존치론을 내세우는 극우보수진영의 주장에 대해 적극적인 반박 논리를 펴 눈길을 끌었다.

학자들은 "(극우인사들이) 국보법이 폐지되면 마치 '적전에서 무장이 해제'되는 것처럼 국민을 감성적으로 호도하고 있지만 이에는 어떠한 이론적 근거도 없다"며 "국민들의 막연한 불안 심리만을 부추길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중에서도 특히 "국보법이 폐지되면 광화문에서 인공기를 휘날리며 '김정일 장군 만세'를 외쳐도 처벌할 수 없지 않느냐"는 주장에 대해 조국(서울대 법대)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을 생각해볼 때 광화문에서 인공기를 흔든다고 해서 이 행위에 감화를 받아서 친북인사가 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판단부터 해야 한다"며 "현 상황에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어 조 교수는 "예를 들어 주체 사상에 대한 학술 연구를 목적으로 한 단체 구성이나 행위는 처벌될 수 없지만 외양상으로는 학술 연구 단체라 하더라도 이면에는 내란 예비의 음모가 있으면 처벌이 가능하다"며 "객관적으로 드러난 행위 양태와 이면의 생각들을 고려해 현행 형법이나 각종 특별 형법을 통해 처벌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국보법 존치론 반박 2 : '김일성 추모집회' 등 단순 동조행위는 어떻게 되나?

그간 현행 국보법(7조 '찬양·고무, 이적단체 구성 및 가입' 등)은 헌법에 보장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왔다는 것이 국보법 폐지론자들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우리 형법은 사람의 생각을 처벌하는 법이 아니다. 형법은 외부적으로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칠 때 적용되는 법"이라며 국보법 폐지를 계기로 사상을 처벌해왔던 법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국보법을 폐지하더라도 국가 체제에 대한 명백한 위협이 되는 행동의 경우에는 처벌이 가능하다는 해석이다.

예를 들어 국보법 폐지 이후 '김일성 추모집회' 등이 열릴 경우, 겉으로는 단순한 집회의 성격이라 하더라도 그 이면에 국가 체제를 전복하거나 위협하려는 행동이 있다면 형법상 처벌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어 학자들은 현행 국보법 7조가 사실상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이제 사상은 '사상의 자유 시장'에 내놓고 표현은 '내란 또는 외환을 위한 폭동의 선전 선동'으로 제한해 처벌해야 한다"며 형법의 기본 취지를 살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보법 존치론 반박 3: 우리만 무장해제하는 것 아닌가?

학자들은 '국보법을 폐지하면 우리만 무장해제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서도 "근거 없는 불안을 부추기는 말"이라고 잘라 말한 뒤 "국보법 폐지는 군인들의 무장해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잠재적 침입을 막는 것은 군사력이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들은 "국보법 폐지 이후를 걱정하는 국민들의 막연한 불안감은 자유가 재갈물린 상태를 인식하지 못하는 중독 상태에 있기 때문"이라며 "이제는 그 금단 증세에서 깨어날 때"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는 허일태(동아대 법대, 한국형사법학회장) 교수, 배종대(고려대 법대, 한국 비교형사법학회장) 교수, 신동운(서울대 법대, 한국 형사정책학회 부회장) 교수, 조국(서울대 법대) 교수, 한인섭(서울대 법대) 교수, 서보학(경희대) 교수 등 약 15명의 법학자 및 교수들이 참석했다.

이날 기자회견의 배경에 대해 허일태 한국형사법학회장은 "국보법에 대한 전문가 집단인 전국의 형사법 전공 교수들이 논의에서 배제된 채 국가의 근간에 관련되는 법률의 운명이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한 현실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에 형사법 전공교수 일동이 전문가적 입장을 피력해 정치권이 냉정하게 국보법의 문제점을 직시할 수 있도록 하면서 올바른 국론형성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 한국형사법학회 등 3대 학회 형사법 교수들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보법을 폐지해도 현행 형법으로 충분히 대체가 가능해 처벌 공백이 생기지 않는다"며 국보법 폐지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다음은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학자들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보법 폐지 후 형법보완론이나 대체입법을 내세우고 있다. 이에 대한 의견은 무엇인가?
"우리는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원칙적으로 주장한다. 근본적으로 우리 현행 형법만으로도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잘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형법은 잘 정비돼있다. 다시말해 현행 형법은 국보법을 보완할 만큼 충분히 대처가 마련돼있는 법률이라는 얘기다.

대체입법으로 국보법 폐지 후 문제 해결하겠다는 태도도 옳지 못하다. 현행 형법이 냉전시대에 만들어져 일부 부적절한 문구가 있다면 이를 합리적으로 고쳐나가면 된다. 현행 형법도 반국가적인 행위, 폭동·협박 등 명백한 위험성을 가진 선전선동, (내란 등에 대한) 예비 음모, 간첩행위 등을 모두 처벌할 수 있다.

현재 정치권에서 타협을 위해 폐지하고 대체입법하자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 국보법 폐지론을 반박하는 보수 진영의 주장 중 '(사상적) 무장해제론'이 있다. 선전·선동까지도 형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고 하는데(현행 국보법 7조), 형법으로 어느 선까지 처벌할 수 있나?
"우선 우리 형법이 제정될 당시 시대 상황을 먼저 떠올릴 필요가 있다. 우리 형법전은 1953년 7월 국회를 통과했다. 휴전 협정을 앞둔, 남과 북이 한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는 전시에서 제정된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 형법을 제정하면서 가장 염두에 둔 것은 국가의 안위와 안보다. 여러 가지 점에서 국가안보와 관련한 조문을 정비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형법이 통과되자 형법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표방한 대한민국이 출범했는데 (형법에) 선전선동죄 까지도 포함돼있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국보법과 비교해보면 국보법은 '선전·선동, 찬양·고무' 등의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국보법이 폐지될 경우에도 '폭동하기 위한 선전·선동행위'는 형법상 처벌 대상이 된다. 폭동의 개념은 흔히 '물리적으로 많은 이들이 몰려다니면서 하는 파괴활동'을 연상하는데, 우리 대법원은 훨씬 넓게 적용하고 있다. 폭행과 협박을 비롯해 이를 준비행위와 보조행위도 포함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국보법을 폐지한다해도 처벌 공백은 없다.

예를 들어 어떤 교수가 '국군들은 어디서 뭐하나, 궐기하라'고 할지라도 이는 내란의 선전, 선동에 해당되지 않느다. 표현은 했지만 그 말이 가진 위험성이 사소하기 때문이다.

만약 대한민국의 존립과 안전을 해롭게 하기위한 폭동의 선전, 선동이고 명백한 위협이 있다는 것이 판단되면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

- '김일성 추모집회'와 같은 단순 동조행위는 어떻게 되나?
"형법은 사람의 생각을 처벌하는 법이 아니다. 형법은 법률이고 법률은 외부적으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때 적용된다.

우리 형법은 '폭행'이라는 넓은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데, 폭행이 아닌 평화적인 집회(표현) 자체를 처벌하면 '사상형법'이 된다. 생각 자체를 처벌하게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겉으로 추모집회라 할지라도 이면에는 비합법적이고 혁명적인 방법으로 우리 체제를 위협하려는 행동이 있다면 우리 형법상 '선전 선동죄'에 의해 처벌된다."

- 현행 국보법 상으로는 단순히 북한의 주장과 같은 주장을 해도 처벌이 됐다. 이런 행위들은 어떻게 되나?
"현재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을 생각해볼 때 광화문에서 인공기를 흔든다고 해서 이 행위에 감화를 받아서 친북인사가 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판단부터 해야 한다. 현 상황에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주체 사상을 동조하거나 이를 위한 단체를 만들어도 단순한 주체 사상에 대한 학술 연구를 목적으로 한 행위는 처벌되지 않는다. 그러나 외양상으로는 학술 연구 단체라 하더라도 이면에는 내란 예비의 음모가 있으면 처벌된다.

인공기를 흔들거나 '김정일 만세'를 외쳐도 그 행위 자체가 아닌 객관적으로 드러난 행위 양태와 생각 등을 고려해 형법이나 각종 특별 형법을 통해 처벌이 가능하다."

- 오늘 발표의 정치·사회적 의미는 어떻게 볼 수 있겠나?
"형사법을 평생 다룬 전문가들이 학자적 양심에 비춰 봤을 때 국보법이 없어지더라도 국가의 안녕과 존립에 이상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순수하게 학자적 입장에서 나온 결론이다.

우리 국민들이 국보법을 폐지하는 데 대한 막연한 불안 심리를 갖고 있는데,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형법 규정만으로도 충분하다. 불안감 느낄 요소가 없다.

그간 국보법은 국가의 존립이나 안녕, 질서 유지를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니다. 국보법은 북한 사람들에게 적용하기 위해 만든 법이 아닌 남한 국민을 처벌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또한 규정 자체가 모호하고 행위가 아닌 생각에 대한 처벌을 중심으로 규정돼 법 집행자 누구나 의지가 있다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국가의 존립, 안녕 질서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 법이 왜 있어야 하나. 국가의 안녕과 존립을 지키기 위해서도 이 법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고 생각이다."

- 국보법과 유사한 법제를 가진 다른 나라의 사례는 어떠한가?
"냉전시기에 우리의 국보법과 비슷한 법이 있었던 나라들이 있다. 미국도 '사회안전법' 등이 있었으나 냉전시대가 종결되면서 연방법원에서 위헌으로 판결했다.

유럽은 공산당 자체가 합법화됐다. 대만도 민주화된 이후 '모택동 주의'를 신봉하는 조직이 합법화되어 있고 일본도 공산당과 사회당이 합법화 돼있다.

독일은 국보법과 같은 법이 없을 뿐더러 사상처벌적 시스템도 없다."

- 국보법 폐지 이후를 불안하게 생각하는 여론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국민들의 불안감에 대해서도 학자들과 정치권, 사회 지도층이 그렇지 않다는 점을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국보법 폐지가 군인들의 무장해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잠재적 침입을 막는 것은 군사력이 해야야할 일이다.

국보법 폐지 이후를 걱정하는 국민들의 막연한 불안감은 일종의 자유가 재갈물린 상태와 같다. 그런데 재갈 물렸다고 생각하지 못한 채 중독돼있기 때문인데 그 금단 증세에서 이제는 깨어나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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