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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책이 수난을 당한 사례는 불행하게도 누차 거듭되었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맑시즘이나 주체사상 관련 책들이 공안당국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어, 그런 책을 읽거나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옥을 가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 괜찮다는 말을 아직도 자신있게 할 수는 없다.

국가보안법이 있는 지금도 사법 당국이 결심만 하면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는 여지는 남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사회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척되면서 예전에 금서 목록에 올라 있던 도서를 읽었다고 해서 처벌하는 분위기는 많이 누그러드는가 했다. 아니, 아직까지 그러한 책들을 구해 읽는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로 보일 만큼 세상이 그 사이 많이 변해버렸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80년대엔 이념 서적들이 금서로 줄곧 수난을 당했다면, 90년대 들어서는 성(性)적 표현에서 다소 도발적인 시도를 한 책들이 속속 심판을 당해야 했다.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해봐>,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 등이 그것이다.

군사 독재정권 당시는 반정부 시위를 잠재우고 국민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잠재우려 포르노와 같은 저질문화에 대해 방조 혹은 조장했다는 평가가 만만치 않았다. 반면에 문민정부 이후의 권력자들은 의사 민주화를 어느 정도 보장하는 대신, 문화적인 통제를 가함으로써 국민을 길들이려 했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책들을 직접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렇게까지 당국이 과잉대응을 할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데 대한 의문을 자연스럽게 가졌을 것이다.

나도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와 만화가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를 읽어 볼 기회가 있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이리도 난리법석인가 하는 의문과 호기심 때문에 기대를 잔뜩 안고 읽었다가 다소 실망한 책들이었다.

<즐거운 사라>의 경우에는 삼류소설 이상 이하도 아니었고, <천국의 신화>는 내용상 외설시비보다는 오히려 웅장한 스케일로 우리 민족의 기원과 신화를 다룬 점이 높이 살 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우리네 고루한 법관 나리들과 통치자들은 남들 걱정말고 제발 본인들만 그런 만화, 영화, 책들을 사서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많은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최근에는 이런 일이 뜸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종교 관련 서적이 한기'총'의 위협에 굴복하여 항복을 선언하고 말았다.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라면 우리나라 기독교의 보수교단들을 대표한다고 스스로 자임하는 단체다. 차기 대권을 노린다는 이모씨도 대선을 앞두고 방문해서 인사할 정도로 막강한 종교권력 집단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동아일보사가 출간한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이 예수를 실존자가 아닌 신화로 간주하여 기독교를 욕보였다는 이유 때문에 성명까지 발표해 출판과 보급 중지를 요청했었다.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동아일보사가 최근 그 책을 절판하기로 결정했단다.

한기총이 발표한 성명을 읽어보면 만일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동아일보에 대한 불매운동도 불사하겠다고 했으니, 동아일보사로서도 겁을 집어먹을 만했을 것이다. 신문 구독자를 한 사람이라도 더 늘리려고 자전거 경품까지 동원하는 그들이 아니던가. 전화 통화를 했던 동아일보사 어느 직원도 책 출간이 이렇게까지 큰 파장을 몰고 오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이 정당한 평가 없이 본의 아니게 수난을 당하면서 터무니없이 유명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내용은 둘째 문제고 책 자체가 그만큼 보수적인 기독교계에 가공할 만한 위협을 제공했다는 점만으로도 대중들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게 될까 심히 우려된다. 이미 10만부 이상이나 팔려나간 마당에 절판 조치가 한기총이 의도한 대로 실효를 거둘지도 의문이다.

아무래도 한기총은 스스로 제 무덤을 파고 말았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내용 자체에 대한 비판과 토론은 없이 오로지 실력행사 방식을 택한 것부터 잘못되었다. 이러니 기독교는 대화가 통하지 않을 만큼 꽉 막히고 상대 못할 집단이 되고 마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이런 그들의 과잉 대응은 <예수가 신화다>고 주장하는 그 책의 주장에 더 무게를 실어줄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

한기총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사회 공기(公器)나 다름없는 유력 신문사가 이렇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종교 서적을 출간한 것은 문제가 있다. 공감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런 수구 신문사들이 행한 수많은 편파, 왜곡 보도들에 비하면 이런 문제는 오히려 가벼운 것에 속한다. 이들이야 철저한 상업적인 의도로 반기독교적인 정서가 팽배한 이 호기를 놓치지 않고서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장사를 포기할 리 만무하지 않은가.

더구나 절판한 다음 다른 출판사로 판권을 팔아 적당한 시기에 다시 출간하면 문제 될 게 없을 것이라는 계산도 작용했을지 모른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한기총의 무리한 대응이 전체 기독교계의 편협한 모습으로까지 일반에 비춰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래서 다시금 간곡히 촉구하지만, 지금이라도 기독교계 자체 내에서부터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 내용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과 평가가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성 명 서 

-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을 출판한 동아일보사에 대하여 

최근 동아일보사가 출판한 [예수는 신화다(The Jesus Mysteries)]라는 책은 영국의 작가 디모시 프리크(Timothy Freke)와 피터 갠디(Peter Gandy)의 책을 번역 한 것으로서, 예수님을 역사 속의 실존자가 아닌 신화로 간주한다. 이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것으로서 성경과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누구든지 자기의 생각을 책으로 엮어 발표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된다는데 동감하면서도, '정론'을 표방하는 '동아일보사'가 이 책을 출판하여 보급하고 있다는데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은 보편 타당한 역사관과 문화관을 가지고 공익적 입장에 서서 알권리의 충족과 더불어 국민을 선도하고 계몽하되 불편부당 해야 한다고 본다. 
더구나 신앙의 대상과 그 종교적 신념에 대하여는 더욱 신중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동아일보사'의 출판물이라면 대중들이 사회적으로 공인된 사실로 인식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화라고 우기는데서 더 나아가서 예수님과 바울을 영지주의자로 몰고 있는 이 책의 원저작자들도 문제지만,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라"는 골로새서 1장 17절을 거두절미하고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다"라는 구절을 내세워 "그리스도는 우리의 바깥에 있지 않고 우리 모두가 곧 그리스도(구원자)이며, 우리 모두가 곧 부처이다. 다만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뿐이다"고 강조하는 번역자의 기독교와 성경에 대한 인식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렇게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책을 출판 보급하는 동아일보사의 저의가 예수님과 기독교를 폄하하고 국민의 1/4에 달하는 1,200만 기독교인들을 모욕하려는 데 있다고 볼 수 밖에 없어 우리의 입장을 밝히며 조속한 시정을 촉구하는 바이다. 

1. 동아일보사는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을 즉각 회수하고 반기독교적 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사과하라. 
1. 동아일보사는 점술·미신 행위를 조장하는 각종 출판, 광고 등의 행위를 중단하라. 
1. 우리는 이와 같은 것이 시정되지 않을 경우 소비자운동을 펼쳐 대응할 것을 밝히는 바이다. 

2002. 9. 30. 

사단법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 김기수 
공동회장 : 최병두 예종탁 박태희 장효희 엄신형 박종수 엄기호 김춘국 신신묵 노태철 정인도 유상열 
총 무 : 박영률


예수는 신화다 - 기독교의 신은 이교도의 신인가

티모시 프리크 & 피터 갠디 지음, 승영조 옮김, 미지북스(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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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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