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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두 명의 저승사자를 따라 나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윤학

[2신 : 10일 오후 6시 25분]

끌려가는 전두환·노태우... 서울광장에서 명동성당까지 87년 6월 재연


서울시청 광장에서 집회를 마친 400여명의 행진 참가자들은 오후 1시 10분께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87년 당시 분위기를 살리고 6월항쟁의 의미를 되새겨보기 위한 행진이었다. 이들은 도로 3개 차선 위를 함께 걸으며 "호헌철폐 독재타도" 등의 구호를 목청껏 외쳤다.

행렬의 맨 앞에서는 6월항쟁 당시를 재연하는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대부분 코스튬을 입은 대학생들이었다. 6월항쟁의 현장을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였다. 하지만 이들은 87년 거리의 선배들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웃옷을 벗어 던진 대학생, 태극기를 펼치고 달리는 청년, 넥타이 부대, 통치마에 밀짚 모자를 눌러쓴 농촌 아주머니, 안전모를 쓴 건설 노동자, 신부와 수녀, 그리고 평범한 옷차림의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향해 달렸다.


▲ 행진 대열의 맨 앞에서는 6월항쟁 당시를 재연하는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웃옷을 벗어 던진 대학생, 태극기를 펼치고 달리는 청년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윤학

퍼포먼스의 뒤를 이어 '집회 시위의 자유 보장', '노점상 탄압 중단',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등 시민들의 요구를 담은 만장이 뒤따랐다.

'호헌철폐'라고 적힌 만장을 든 대학생 이동열(남·27)씨는 "87년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이유는 서민·대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라면서 행진의 의의를 밝혔다.

10여 개 만장의 뒤로는 두 저승사자가 '세 명의 대통령'을 끌고 갔다. 군복을 입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이 그들이었다. 분장을 한 저승사자의 표정은 엄숙했고, 가면을 쓴 세 대통령은 비틀거리며 '저승길'을 향하고 있었다. 저승사자 역을 맡고 있던 대학생 김동수(가명·남·24)씨는 "역사를 청산하는 기분"이라며 웃었다.

▲ '호외'(시민사회단체 공동선언문)를 뿌렸던 변자영(여·30)씨와 한주희(여·31)씨. 이들은 "재연임에도 참으로 감동적이라 눈물이 나려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 오마이뉴스 안윤학

행진을 하는 동안 일부 건물에서는 '호외'가 뿌려졌다. '상생, 평화, 연대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자'는 시민사회단체 공동선언문이었다. 이 또한 6월항쟁 현장을 재연하는 퍼포먼스였다.

호외 퍼포먼스에 참가한 변자영(여·30)씨와 한주희(여·31)씨는 '호헌철폐'를 써 넣은 하얀 마스크를 두르고 모자도 깊게 눌러 썼다. "경찰이 뒤쫓아 오면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하기 위해서"란다.

이들은 "재연임에도 '민주화가 절박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참으로 감동적이라 눈물이 나려한다"고 흥분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일반 시민들은 6월항쟁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행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젊은 사람들은 신기한 표정을, 중년층은 과거를 회상하는 표정을 지었다.

20년 전 6월항쟁의 한복판에서 모자 장사를 했던 이명철(가명·남) 할아버지는 "당시는 최루탄 때문에 눈이 따가워 이리저리 도망 다니고, 화염병이 날아와 가게에 불이 붙고, 모자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도 했다"면서 87년을 회상했다.

이 할아버지의 모자 가게 맞은 편에서 꽃장사를 했던 박순봉(여·77) 할머니는 "누구나 귀한 생명인데 전경이나 시민들이나 다친 사람들이 많아 안타까웠다"고 당시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 미국산 수입소와 노무현 대통령이 어깨동무를 했다. 새시대예술연합의 퍼포먼스.
ⓒ 오마이뉴스 안윤학

▲ 400여 명의 시민들이 뙤약볕으로 달궈진 명동성당 앞 아스팔트 위에 앉아 "6월항쟁 계승하여 민주주의 완성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 오마이뉴스 안윤학

"보수 진영 활개치고 있으니 민주주의는 미완성"

행진단은 오후 2시 15분께 명동성당에 도착했다. 시민들은 뙤약볕으로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 앉아 "6월항쟁 계승하여 민주주의를 완성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단에 선 정광훈 한국진보연대(준) 공동준비위원장은 "시민들은 그들의 힘으로 20년 전 군사 파시즘을 무너뜨렸다, 이젠 한미FTA협상을 막아내는 것이 '6월항쟁'"이라면서 "오늘은 민주화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다가올 초국적 자본과의 싸움을 준비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 자유는 누가 베풀어 준 것이 아니라 87년 투쟁의 결과로, 시민 스스로 일궈왔던 것"이라며 6월항쟁의 의미를 되새겼다.

아쉬움의 목소리도 나왔다. 김호현(남·48)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부회장은 "마음은 20년 전 그대로지만 요즘 젊은 친구들은 사회에 무관심한 것 같아 행진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고 토로했다. 87년 당시엔 100만명 이상이 거리에 나섰는데 이날 참가자는 300~400명에 머무른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또한 김 부회장은 "말만 민주화가 이뤄진 듯하다, 87년 민주화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김 부회장은 "국가보안법이 살아있고, 양심수가 여전히 감옥에 있으며 양극화는 더 심화됐다"면서 "민주세력이 위축되고 보수 진영이 더 활개를 치고 있으니 민주주의는 아직 완성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1신 : 10일 오후 3시 5분]

"6월 항쟁 20주년이 마냥 즐겁지 않은 이유는..."


▲ '6월항쟁 계승 20주년 계승 범국민대행진' 행사가 열린 서울시청 광장. 노래패 '아름다운 청년'이 무대에 올랐다.
ⓒ 오마이뉴스 홍성식

"87년 6월항쟁은 수십 년 동안 고착돼온 부정과 비리, 독재와 기득권의 아성을 허물어내는 기폭제가 되었고, 각계각층의 국민 대중이 저마다의 처지에서 인간다운 삶을 향한 진한 모색과 실천의 발원지, 마르지 않는 젖줄이 되었다."

6월 10일 정오. 20년 전 "호헌 철폐, 독재 타도"의 구호가 수십만 군중의 입에서 외쳐지던 서울시청 광장. '6월항쟁 20주년 계승 민간조직위원회' 주최로 열린 '6월항쟁 20주년 계승 범국민대행진(아래 범국민대행진)'에 참석한 사람들은 1987년 6월의 의미를 위와 같이 정의했다.

'6월항쟁의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고, 그날의 정신을 실천적으로 계승한다'는 취지에서 준비된 범국민대행진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통일광장, 민가협, 실천연대, 범민련,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운동 단체 회원과 일반인 400여명이 참석했다.

초여름 뜨거운 날씨 속에서 진행된 행사는 '아름다운 청년'의 노래공연으로 시작됐다. 이들은 공연에 앞서 "항쟁 20주년을 맞는 오늘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이유는 6월항쟁의 정신이 아직도 온전히 구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어 연단에 오른 오충일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위원장 역시 "87년 이후 오늘까지 20년 동안 민주주의와 민중생존권을 위해 많은 사람이 투쟁했지만, 아직도 새 시대를 열지는 못했다"며 한 걸음 더 나아간 민주사회의 건설을 위해 "진보세력이 정확한 방향을 설정해 결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범국민대행진 행사장에선 가족 단위의 참석자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부모들은 팸플릿이나 모자로 아이들에게 쏟아지는 햇볕을 가려주었고, 6월항쟁 계승을 염원하는 구호를 외칠 때면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소형 피켓을 흔들기도 했다.

한나라당-보수언론 등 질타... 노무현 정부에도 쓴소리

행사가 무르익을 즈음이었다. 1987년 6월항쟁이 특정 단체나 세력이 아닌 민주화와 독재타도를 희구한 전국민적 저항운동이었음을 감안해 여성단체와 올해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 20년 전 언필칭 '넥타이 부대'로 불렸던 사무직 노동자, 반전·반자본주의 단체 '다함께' 활동가 등이 무대에 올랐다.

▲ 2007년 6월 10일. 20년 전 '6월'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서울시청 광장에 모였다.
ⓒ 오마이뉴스 홍성식

이들 중 특히 '다함께' 활동가의 발언이 가장 큰 박수와 호응을 받았다.

이 활동가는 "87년 6월항쟁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한 투쟁의 길을 열었다, 그런데 그때 역사의 쓰레기장으로 보냈어야 할 것들이 살아남아 여전히 민중의 생존권과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한나라당과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보수신문, 친미우파세력을 "치워야할 쓰레기"로 규정하며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 획책하는 그들이 재집권하겠다는 야심을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무현 정부 역시 이 활동가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미국이 벌이고 있는 이라크 학살전쟁을 방조하고, 불공정한 한미FTA를 주도한 이 정부 역시 6월항쟁의 계승자가 아니"라는 것.

마지막으로 이 활동가는 "반전운동과 반FTA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사람들, 국가보안법 철폐운동과 자본의 착취에 맞서 싸우는 이들이야말로 6월항쟁의 진정한 계승자"라며, 진보세력의 단결과 지속적인 투쟁을 호소했다.

오후 1시경. 1987년 독재정권의 고문과 무자비한 최루탄 난사로 숨진 고 박종철씨의 아버지 박정기씨와 이한열씨의 어머니 배은심씨의 목소리로 '범국민대행진' 출발이 선언됐다. 참석자들은 서울시청 광장에서 남대문을 거쳐 명동성당 앞까지 행진하며 그날의 함성을 재현할 계획이다.

오후 2시 명동성당 앞 기념식에선 '87년 6월항쟁 20주년에 즈음한 시민사회단체 공동선언문'이 발표됐다.

'상생, 평화, 연대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자'는 제목의 선언문에는 ▲87년 6월항쟁을 통해 확인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더욱 확장·발전돼야 한다 ▲이윤논리와 무한경쟁에만 매몰된 천민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화정책에 저항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하루빨리 실현되어야 한다 ▲세대와 인종에 따른 차별을 허물고, 문화적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태그:#6월항쟁, #범국민대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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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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