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남북철도 연결구간 열차시험운행이 실시된 17일 오후 동해선 열차 시험운행을 마친 북측 열차가 강원도 고성군 제진역에서 출발, 군사분계선을 향해 돌아가고 있다.
ⓒ 연합뉴스 이상학
안개 자욱한 함경북도 안변역에서 동해북부선 열차를 기다리며 오들오들 떨고 있는 어린 남매의 모습이 아련히 젖어온다. 때는 1940년, 내 나이 열 살.

눈시울을 적시며 손을 흔들어주시던 어머니와 큰 이모를 자꾸 뒤돌아보면서 서울역 개찰구를 빠져 나와 밤 10시 55분발 경원선 열차에 올라 밤새 추운 겨울을 달려 아버지를 찾아가던 어린 남매의 모습이 애처롭게 떠오른다.

성에 낀 차창 틈에서 스며드는 찬바람에 몸을 웅크리면서도 끝없이 펼쳐지는 검푸른 동해를 그렇게도 즐겁게 내다보던 철없던 어린 남매의 모습이 서글프게 떠오른다.

어린것들을 보내던 어머님 가슴은

고성역을 지나 종착역 양양이 가까워지면서 겨우 몇 사람만이 흩어져 앉아있는 썰렁한 찻간에서는 나사못 빠진 전등 덮개가 천장에서 어지럽게 그네를 타고, 해 떨어진 차창 밖에서 밀려오는 을씨년스런 어두움을 내다보다 그만 왈칵 울어버린 어린 남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내 눈가에 맺힌 이슬을 닦는다.

어린것들을 먼 여행길에 오르게 하신 내 어머님의 그 시린 가슴을 조금도 헤아릴 줄 모르고, 짙은 회색 코트에 진한 밤색 중절모를 쓰시고 마중나와 계시는 멋쟁이 아버지를 소리높이 부르면서 속초역 개찰구를 향해 달리던 어릴 적 과거가 슬픈 영화처럼 내 머릿속을 스쳐간다.

하얀 수증기를 역 구내 가득히 깔아놓고 목멘 기적 소리만을 남긴 채 떠나가는 동해북부선 열차를 그렇게도 아쉬운 눈초리로 바라보던 내 어린 모습이 향수 짙은 한 폭의 그림처럼 내 눈앞에 펼쳐진다.

철썩철썩 방파제를 때리는 광란의 파도 소리와 짠 냄새가 물씬 풍기는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한 손엔 아버지의 따듯한 손을 잡고 또 한 손엔 낯선 어느 여인이 잡아준 야릇한 촉감에서 어렴풋이 어머님의 그 시린 가슴을 알 것 같기도 했던 그때 내 어릴 적 모습이 눈물을 뿌리면서 지나간다.

속초에는 북한 안변과 강원도 양양을 잇는 동해북부선 철로가 영랑호 위에 떠있다. 지금은 6·25 상처 입은 콘크리트 교각만이 남아 쓸쓸히 동해북부선의 흔적을 지키고 있고, 동해안을 따라 승승장구 질풍노도와 같이 북진하던 대한민국 국군의 도도한 기상은 밀려오는 파도 소리에서 들을 수 있다.

또한 같은 민족이 서로 총 뿌리를 겨누었던 민족상잔의 아픈 역사는 끓어진 동해북부선이 부끄럽게 기억하리라.

아! 동해북부선!

57년 만에 동해선이 남북으로 이어지는 시험운행을 TV로 보면서 추억의 슬픈 그리움 하나 가슴에 안아본다.

덧붙이는 글 | <철도와 함께 떠나는 여행> 응모글.


태그:#동해북부선, #안변역, #동해선, #남북열차시험운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