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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아침 햇살이 모기장 안에서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내 얼굴에 살며시 와 닿으면서 나를 깨웠다. 내 나이 마흔아홉이었던 1978년 6월 25일 일요일이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옆에서 자고 있는 12살 된 어린 아들을 흔들어 깨웠다. 그리고 배낭을 꾸려 아들의 손을 잡고 허둥지둥 집을 나왔다.

아들과 나는 아침 8시 성북역을 출발하는 신탄리행 열차를 타고 차창 밖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푸른 들판과 시골 농가의 풍경을 내다보면서 마냥 즐거워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한탄강으로 물놀이를 가기 위해 사전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그저 수동적이고 목적 없는 여행이었다.

기차는 아침 9시 30분경 한탄강 유원지에 도착했고 나는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강변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강가에는 아직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를 않았고 조용한 아침이었다.

푸른 강물은 유유히 흐르고 신선한 강가의 정취는 상쾌하기만 했다. 아들과 나는 관망이 좋은 자리에다 배낭을 내려놓고 천막을 쳤다. 그리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아들은 튜브에 바람을 넣느라고 양쪽 볼이 동그래지도록 힘들게 불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강 쪽에서 철썩철썩 물장구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심코 흐르는 강물 쪽을 바라보았더니 무엇이 강 복판에서 들먹거리는 게 아닌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크게 뜨고 다시 쳐다보았더니 어느 누가 익사 직전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얼떨결에 아들이 힘들게 불고 있는 튜브를 빼앗아 황급히 바람구멍을 막고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람을 향해 내 있는 힘을 다해 튜브를 던졌다. 튜브는 작은 원을 그리면서 쏜살같이 날아가더니 정확하게도 익사 직전 허우적거리고 있는 그 사람 앞에 떨어졌다. 이상하리만큼 내 투환 솜씨가 돋보이는 듯해 어깨가 으쓱해 지기도 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사람은 자기 앞에 떨어진 튜브를 꼭 붙잡고 있었고 나는 단숨에 헤엄을 쳐 튜브를 잡고 있는 그 사람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사람은 튜브를 꼭 잡고 있었지만 뜨질 못하고 자꾸 물 속으로 빠져들고만 있었다.

생각해 보니 당황한 나머지 공기를 가득 채우지 못한 튜브이었으니 체중을 이기지 못해 물에 빠져들고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였다.

나는 즉시 물 속으로 잠수를 해서 그 사람의 양쪽 다리를 잡고 밀고 또 밀면서 내 혼신의 힘을 다해 그 사람을 강가까지 끌고 나오는 데 성공했다. 인명 구조 대원도 아닌 나로서는 얼떨결에 너무도 힘에 겨운 일을 해냈던 것이다. 물 속에서 그 사람을 끌고 나와 모래밭에 눕히고 나도 반죽음이 되어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 후 정신을 차려 옆에 누워 있는 사람을 보니 고등학교 학생쯤 되어 보였다. 실신하다시피한 그 학생은 양쪽 눈 알맹이가 시퍼렇기는 했지만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멀리서 학생을 찾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 학생은 친구 등에 업혀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생각하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가 이렇게 알지도 못하는 어느 한 학생을 살리기 위해 보잘 것 없는 나를 아침 일찍 깨워 정신없이 여기까지 달려오게 했을까?

그 뒤 아들과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루종일 물놀이를 즐기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해 내도록 시종 이끌어 주신 나의 하느님의 능력에 몸 둘 바를 몰라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태그:#한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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