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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수목드라마 <쩐의 전쟁> 촬영 현장.
ⓒ 오마이뉴스 조은미
"급전""대출""동포사"란 빨간색 글자가 큼지막하게 창문을 수놓은 사무실에서 금나라(박신양)와 서주희(박진희)가 대화 중이다.

실내 곳곳엔 "초고속 대출"이란 문구가 표어처럼 붙어있는 사채업자 마동포(이원종)의 사무실에서 금나라가 서주희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기요. 담보 있어요? 담보? 담보 있냐구요. 담보 없어요?" 서주희가 황당한 어투로 말했다. "더 잘 알잖아요. 담보로 할만한 게 없다는 거." "서주희씨 어때요?" "네?" "서주희씨 담보로 어떠냐구요."

서주희가 어처구니 없단 표정으로 금나라를 쳐다보자, 장태유 PD가 외쳤다.

"컷! 이것도 나라를 (카메라에) 살짝 걸어주세요. 살짝."

감독님, 링거 꽂고 "액션!"

ⓒ SBS
15일 SBS 일산 제작센터 세트장. SBS 새 수목드라마 <쩐의 전쟁> 4회분 마지막 신과 5회분 촬영이 한창이었다. 24일과 30일 방송할 장면이었다. 아버지가 카드로 동맥을 끊고 자살하고, 사채빚에 쫓겨 노숙자 신세로까지 몰락한 금나라가 드디어 재기해 사채업자로 날개를 퍼덕이는 중이었다.

장 PD가 외쳤다. "진희씨, 이건 어처구니 없단 느낌으로 다시 한 번 갈게요."

같은 장면이 계속 반복 됐다. 금나라 얼굴을 클로즈업해 찍고, 금나라 얼굴을 화면에 살짝 걸치고 서주희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찍고, 멀리서 금나라를 잡아서 찍고, 배우들은 한 장면을 연기하고 또 연기했다. 대사가 끝나자 박진희가 씨익 웃으며 씩씩하게 말했다. "끝!" 다들 웃음이 터졌다.

스태프 한 명이 장태유 PD에게 말했다. "여기에서 링거 달고 있어요. 그럼 효과 확실해." 장 PD가 솔깃한 듯이 물었다. "진짜야?" "그럼요. 봉달희 때 링거 달고 있었잖아요. 효과 확실해요." 그 '효과'가 '건강 효과'를 가리키지 않는 건 확실했다.

촬영 현장에서 링거액 주사를 꽂은 채, "액션!"을 외칠 정도로 드라마 촬영 현장은 다급하기 일쑤다. <쩐의 전쟁> 1회분 방송이 나가지 않은 때에 4회분 마지막 신을 찍는데도 촬영 현장은 다급했다. 장태유 PD는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대충 해결하자마자, 얼른 대본을 들여다보며 체크하기 바빴다. 전날도 촬영하느라 밤을 꼬박 샌 터였다.

사채업자 사무실 벽에 걸린 문구가 도드라졌다. "저도 한 때는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내 가족처럼 도와드리겠습니다." 월드비전 같은 구호센터 사무실에나 붙어있을 듯한 문구가 아이러니를 더했다.

사채업자 마동포 사무실은 빈티지 느낌이 나는 인테리어가 예뻤다. 모니터에 비친 색깔은 근사했다. 김형근 촬영감독은 "금나라가 너무 차가워 보이지 않게, 색깔을 돌렸다"며 "드라마의 거친 면을 살리기 위해서, 따뜻하면서 거친 톤을 만들기 위해 감독과 함께 많이 고민한다"고 말했다. 사실 이날 같은 세트 촬영도 드문 일이었다. <쩐의 전쟁>은 야외 촬영이 70~80%였다.

박신양의 매력적인 미소? 그거면 시청률 30%야

촬영은 계속 됐다. 서주희가 차갑게 되물었다.

"지금 담보라고 하셨어요?"

금나라는 웃는 듯 마는 듯 심드렁하게 말했다. "네. 5000만원 빌려주는 대가로 서주희씨 담보로 하면 어떠냐고 했습니다."

둘은 대화로 치고 박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박신양은 끊임없이 물었고, 조금씩 진보했다.

스태프 한 명이 말했다. "좋아. 오늘 왠지 달라 보인다." 스태프들이 와르르 웃었다. 듣지 못한 박신양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짝이며 물었다. "뭔데? 나도 좀 웃게?"

스태프가 대본을 보며 말했다. "지문. 매력적인 미소. 캬." 박신양의 '백만불짜리' 미소가 필요하단 지문에, 스태프 한 명이 또 말했다.

"그거면 시청률 30%야." 촬영 막간에 또 누군가 말했다.

"연출 이름으로 달고, 장미 다방에 링거 2병 시켜!"

스태프 한 명이 뛰어가더니 링거액 대신 박카스를 박스째 들고 나타났다.

ⓒ 오마이뉴스 조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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