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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대화 상지대 교수.
ⓒ 오마이뉴스 권우성
최장집-조희연-손호철-노무현-조기숙-김창호-정태인으로 이어지고 있는 진보논쟁.

아직은 '참여정부 평가'를 놓고 잘잘못을 따지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뜨겁게 진행되는 이 논쟁을 노무현 정부 평가에만 발을 묶어놓을 수 없다. 진도를 나가야 한다.

대표적 진보논객인 정대화 상지대 교수가 칼을 뺐다. 진보논쟁의 제2라운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진보이고 진보의 조건은 뭔지 꼼꼼히 따져보고, 미래사회를 제대로 구상하자고 제안했다.

정 교수가 보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진보가 아니다. 정 교수는 진보도 아닌 사람이 자꾸 진보논쟁에 끼어들지 말고 정부는 이 논쟁에서 조용히 빠지라고 권고했다.

"노무현은 진보가 아니다“

정 교수는 21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전화인터뷰를 통해 "정권 말기에 '네 탓 공방'하는 것은 퇴행적이고 소모적"이라며 "대통령이나 정부의 핵심인사까지 나서 이 논쟁을 벌이는 것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일침을 놓았다.

이어 "진보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적극적인 논쟁과 토론이 필요한데 적어도 노무현 정부의 핵심 관계자들은 이 논쟁의 주체가 될 수 없다"며 "이 논쟁에서 빠져주는 게 미래를 위해 좋다"고 일갈했다.

정 교수는 우선 대한민국에서 글줄 깨나 쓰고, 말 깨나 하는 사람들이 모두 참여하는 수준으로 논쟁이 확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 제기된 여러 문제를 누가,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교정해 나갈 것인지 '제대로' 문제제기를 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논쟁이 노무현 정부 평가에 머물러 한 단계 도약하지 못하면, 진보논쟁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정 교수는 진보진영에서 노무현 정부를 진보정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며 '노무현 정부=진보정부'라는 등식은 우익보수에서 비판하려고 만든 잣대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최소한 네 가지 조건 중 하나는 포함돼야 진보라고 말했다. 첫째,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다. 정 교수는 자본주의의 폭력성과 폐해를 근본적으로 교정할 수 있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야 진보적 가치가 있다고 지적했다.

둘째, 직접민주주의나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셋째, 사회적 측면에서 기득권 문제에 비판적으로 문제제기하는 것이다. 정 교수는 마지막으로 분단체제에 대한 근본적 고민도 한국적 진보의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FTA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따라 진보와 수구보수가 첨예하게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FTA 문제에 경제적 신빈곤, 계층 및 지역 간 양극화 등 핵심 사안이 다 포함되며, 의료·복지·교육 등도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정 교수는 FTA 문제부터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장집과 손호철, 그들의 진심은?

@BRI@최장집 교수 등이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넘겨도 좋다'고 한 발언의 진의에 대해서는 "특정한 한 마디가 강조된 것 아니겠느냐"며 "한나라당 집권을 옹호하거나 환영한다는 게 아니라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에 대한 분노가 반어적 표현으로 나온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그렇지만 이른바 '진보학자'들의 생각이 '열린우리당 실망=한나라당 집권용인'이어서는 안 된다며 차라리 민주노동당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한나라당 집권을 막자고 주장하는 게 맞는 것 아니냐고 고개를 갸웃했다.

현재 추진 중인 '미래구상'과 관련해서 정 교수는 "노사모와 반대의 길을 가야 할 것 같다"며 "주군을 향한 끝없는 충성 시스템인 노사모는 굉장히 낡은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이는 방식이 아니라 '수만을 위한 수만의 결집'으로 올 대선에서 진보의 방향을 새롭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정 교수는 직접민주주의 방식으로, 즉 아래로부터 결집하고 참여해서 국민후보를 만들어내는 방안을 곧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 교수는 최근 라틴아메리카 방문에서 포퓰리즘의 장점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왔다고 말했다. 제도에 의한 진보나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지도자가 직접 국민과 소통하면서 정책에 반영하는 게 포퓰리즘인데, 노무현 대통령이 이걸 제대로 했다면 많은 성과가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 교수는 이번 대선을 앞두고 민주노동당 밖에서 제2의 진보정당을 건립할 가능성도 타진했다. 시민운동세력이 민주노동당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보다는 그 바깥에서 제2의 진보정당을 만들면 민주노동당의 독과점이 깨지면서 '진보의 재구성'을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도전적 문제제기다.

다음은 정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진보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진보논쟁'을 어떻게 보고 있나.
"보수는 논쟁을 안 하는 사람들이다. 권력과 자본에 의존해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논쟁을 잘 안 한다. 진보는 대중노선을 취해야 하기 때문에 논쟁을 많이 한다. 논쟁이 있다는 것은 진보가 살아있다는 반증이다.

지난 몇 년간 진보진영 내부에 논쟁이 없었다. 역동적이지 못했다는 건데, 최근 이 논쟁을 통해 진보가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래사회에 대한 진보의 구상이 모색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언론에 뉴라이트가 과잉 보도되는 바람직하지 못한 흐름을 교정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 이번 논쟁이 참여정부의 잘잘못을 따지는 수준에 멈추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권력 말기에 권력의 주체와 학자들이 논쟁하는 것은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다. 권력 초기라면, 정부가 어떻게 가야할지를 놓고 정책을 집행할 사람과 정책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논쟁하는 것은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 말기에 '네 탓 공방'을 하는 것은 퇴행적이고 소모적이라는 생각이다. 대통령이나 정부의 핵심인사까지 이 논쟁에 참여하고 있는데, 별로 좋지 않다. 참여정부 평가에서 대통령이나 정부 핵심인사가 나서는 것은 당사자 문제가 된다. 책임론을 제기하게 된다.

노무현 정부의 잘잘못을 따지는 평가는 나중에 하면 된다. 진보논쟁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대선을 계기로 진보가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 토론해야 하는데, 적어도 노무현 정부 핵심 관계자들은 이 논쟁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이 논쟁에서 좀 빠져주는 게 미래를 위해 좋다."

"열린우리당 밉다고 한나라당 집권용인? 진보가 뭐냐"

- 진보논쟁이 '네 탓 공방'의 수준을 넘는 좀 더 생산적인 논의로 가려면?
"대한민국에서 글줄 깨나 쓰고, 말 깨나 하는 사람들이 다 논쟁에 참여하는 수준으로 확장돼야 한다. 정부는 빠지고. 노무현 정부 평가에서 한 발 더 나가지 못한다면 자꾸 과거를 따지는 논쟁을 하게 된다. 또 논쟁의 요점과 방향을 잘 잡는 게 중요하다. 참여정부 시기에 제기된 여러 문제를 누가,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교정해 갈 건인가 하는 식으로 문제제기를 제대로 하는 게 좋다. 신자유주의 문제, 양극화, 지역불균형 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논쟁 잘 하는 사람들이 논쟁의 제2라운드를 열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 평가로 이 논쟁이 촉발됐지만, 여기에 머물러 자꾸 발목 잡히지 말고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논쟁을 했으면 좋겠다. 이런 논쟁이 안 나오면 지금 논쟁을 진보논쟁이라고 하기 어렵다.

또 누가 진보인지도 정리됐으면 좋겠다. 노무현 대통령은 진보가 아니다. 조기숙 교수도 진보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개혁적인 정부지, 진보정부가 아니다. 진보가 뭔지, 누군지 그것부터 정리했으면 좋겠다."

- 그래서 요즘 '진보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말도 나오는 것 같다.
"4가지 조건 중 최소한 하나는 포함해야 진보다. 우선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으로 문제제할 수 있어야 진보다. 자본주의의 폭력성과 폐해를 근본적으로 교정할 수 있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야 경제적 측면에서 진보적 가치가 있다. 또 정치적 측면에선 직접민주주의나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접근해야 한다. 대의민주주의나 절차적 민주주의를 말한다면 개혁론자이지 진보주의자가 아니다. 직접민주주의를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 이 관점으로 정치를 봐야 진보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기득권 문제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가 있어야 한다. 하나 더 있다. 분단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도 한국적 진보의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다. 4가지 중 상당 정도를 담고 있는 이론이나 실천과제를 지니고 있어야 진보냄새가 난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이 진보? 박근혜가 중도? 뭐가 진보인지 모르는 가운데 초보적 이슈파이팅만 하는 것은 아직 우리의 진보논쟁이 초입 단계라는 것을 반증한다."

- 진보논쟁의 제2라운드가 필요하다면 핵심주제는 뭐가 돼야 한다고 보나.
"87년 6월 항쟁 직후와 지금은 몇 가지 대목에서 상황이 다르다. 경제적 신빈곤의 문제, 양극화 문제가 있다. 기업의 양극화, 계층 간 양극화, 지역의 양극화로 대표되는 사회경제적 차별화는 경제정책인 동시에 사회정책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문제, 비정규직 등 노동 문제, 농촌을 포함한 지역 문제, 수도권 집중 등 모든 쟁점이 FTA와 직결된다.

이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격화될 수 있다. 논쟁이 FTA에서 출발해야 하고, 그러면 의료·복지·교육 등이 다 걸린다.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이 분리되는 게 아니다. 노 대통령은 사회정책에서 차이가 난다고 하는데, 정말 차이 나는 건 경제정책이다. 이 부분에서 진보와 수구보수가 명백하게 갈린다."

▲ 최장집 고려대 교수.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최장집 교수가 '차기 정권이 한나라당으로 넘어가도 좋다'고 했다. 진의가 뭐라고 보나.
"한나라당 집권을 환영한다거나 불가피하다는 것은 최장집 교수나 손호철 교수의 진의가 아닐 것이다. 특정한 한 마디가 강조된 것이라고 보는데, 한나라당 집권을 옹호하거나 환영하는 말은 아닐 것이라고 본다. 한나라당은 지지도가 높고, 열린우리당은 지리멸렬하고, 민주노동당은 정체돼 있다. 대안이 없다는 현실적 판단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올 수도 있다고 보는데, 최장집-손호철 담론에 묻어난 정서는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에 대한 분노다.

지난 5년 간 상황을 이렇게 악화시키고도 또 당신의 집권을 위해 노력해달라는 게 말이 되느냐, 이런 것일 게다. 반어적 표현으로 한나라당 집권을 말하는 거지, 정말 한나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도 좋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지만 이런 아쉬움은 남는다. 한나라당 집권용인을 말하기보다는 민주노동당 강화 등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자고 발언해야 그간의 활동과 학문적 이론에 맞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특히 손 교수라면 열린우리당이 도저히 안 되겠으면 획기적으로 민주노동당을 변화시켜서 한나라당 집권을 막자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열린우리당이 맘에 안 든다고 한나라당 용인하면, 도대체 진보가 뭔가."

- 손호철 교수의 열린우리당 비판엔 속뜻이 따로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사실 손 교수한테는 '민주노동당, 집권하지 말라'는 지론이 있다. 약한 진보정당은 자칫 진보노선을 버리기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둘 중의 하나는 해야 한다. 한나라당의 집권문제를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불가피하게 권력이 넘어가야 한다면 진보와 개혁의 정치적 거점이나 근거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하는 부분을 얘기해야 하고, 더 바람직한 것은 이참에 진보세력이 집권하자고 해야 하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쪽박 찼으니 진보가 전진하자고 해야 한다는 말이다. 열린우리당 비판이 한나라당 옹호로 나타나면 잘못된 시각을 줄 수 있지 않나."

2000년 총선연대 열풍, 재현 가능한가

- 올 대선에서 다양한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진보적 정치세력과 개혁적 정치세력의 연합을 주장했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힘이 매우 약한 상태다. 가능하겠나.
"내가 말한 건 단체와 단체의 연대가 아니다. 잠자고 있는 국민을 협력해서 깨우자는 거다. 10명 더하기 10명은 20명, 이런 계산이 아니라 수많은 사회적 연대를 통해 그동안 밖에 빠져있던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분기탱천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운동은 힘이 없다. 노동운동과의 연대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이 새로운 상황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하는 게 힘이 된다. 수십만명이 파업해도 노동운동에 힘이 안 붙는다. 노동운동 밖에 있는 사람들의 감동과 참여를 촉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2000년 총선연대는 국민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이번 대선에서도 진보가 그런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나.
"못 만든다고 얘기하기는 어렵다. 그 바람의 실체가 '일부'는 사람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또 '일부'는 정책이 될 것 같다. 정치나 운동에 새롭게 접근해 이 문제를 풀어보자는 고민을 하고 있다. 노사모와 반대의 길을 가야 할 것 같다. 노사모는 주군을 향한 끝없는 충성 시스템이다. 굉장히 낡은 방식이다.

1명을 위해 수만명이 충성하는 게 아니라, 수만명을 위한 수만명의 결집이어야 한다. 이 힘으로 자기가 원하는 후보를 만들어내자는 거다. 무엇보다 이번 대선에서 제2의 노무현은 없다. 정운찬이든, 문국현이든 그 누가 되든 짧은 시간엔 불가능하다.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이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수백, 수만의 사람들이 모이고, 이들이 합의해서 '저 사람이 좋겠다'고 하는 직접민주주의 방식, 즉 아래로부터 결집하고 참여하는 후보형성 과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 미래구상에서 추진하는 '국민후보 선출과정'이 그럴 것 같은데.
"조만간 '다음 대통령은 이런 정책을 수행했으면 좋겠다' 등의 희망제작소식 국민창안 캠페인을 할 것이다. 국민후보 추천위원회가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또 권위 있게 운영되면 많은 국민들이 자유롭게 많이 참여해서 여론을 형성하고 사람을 걸러나가는 과정을 거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국민이 투표 말고 할 게 있나.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정책이 필요하고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참여정부 같은 실정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사람, 이런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섀도 캐비닛(shadow cabinet)도 가능하다. 사람과 정책, 시스템을 짜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한 사람의 대통령만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다. 수평적, 수직적으로 수천, 수만의 사람이 움직인다. 사람과 정책과 시스템이 어우러지는 장이 펼쳐지면 사람들이 참여할 여지가 생긴다. 대통령은 이런 사람, 그럼 총리는 어떤 사람, 이 정책 추진할 장관은 누구 등 한 묶음으로 국민을 위해 이런 정책을 수행해달라는 광범위한 운동이 가능하다."

▲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회에서 21일 주최한 '위기의 진보진영, 대반전 가능한가' 토론회. 이 자리에서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라틴아메리카의 장점이 한국의 진보를 자극할 수 있을까

- 얼마 전 좌파가 집권한 라틴아메리카 몇 나라를 돌아보고 왔다. 뭘 보고 왔나.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에 다녀왔다. 주로 보려고 했던 것은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사회적 양극화가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 그것을 사회에서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였다. 정말 심각하더라. 상황은 심각한데 1차적 과제로 보지 않는 것 같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엔 인플레를 중요한 정책과제로 삼고 양극화는 부분적으로 용인하는 측면이 있었다."

- 한국과 라틴아메리카를 동등 비교하기는 어렵지 않나.
"맞다. 라틴아메리카의 양극화는 인종차별과 맞물려 있다. 인디오 원주민과 원주민-백인 혼혈(메스티소), 원주민-흑인 혼혈(삼보) 등 다층적 인종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인종과 사회적 차별이 복합돼 있다. 해결이 쉽지 않아 보였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우리는 라틴아메리카의 '좌파열풍' 운운하지만 정작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좌파열풍을 시큰둥하게 보는 것 같았다.

우리가 말하는 좌파와 그들이 말하는 좌파가 다르다. 그들이 말하는 좌파는 변화세력 정도였다. 서구적 개념의 좌파가 아니라는 얘기다. 현지에 가서 봤더니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이나 키르치네르 아르헨티나 대통령, 룰라 브라질 대통령 모두 중도좌파 수준으로 취급받는다. 기본적으로 정책에 차이가 없다는 거다.

모두 미국의 용인 아래 나온,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라는 거다. 물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나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다를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원주민이 집권하면서 주요 자원을 국유화했다. 차베스 대통령이 석유자원을 국유화하지 않았나."

- 조희연 교수는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에게 차베스한테 배우라고 했다.
"일리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라틴아메리카에 조중동 기자들이 많이 왔는데 포퓰리즘과 페론주의에 대해 듣고 가서는 전부 엉뚱한 비판만 했다고 하더라.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포퓰리즘이 좋은 것이다. 제도에 의한 진보나 개혁이 이뤄지지 않을 때 지도자가 직접 국민과 소통하면서 정책에 반영하는 게 포퓰리즘이다. 제도가 기득권, 관료나 언론에 장악돼 있을 때 국민의 힘을 동원하는 게 포퓰리즘이다.

포퓰리즘을 대중영합주의가 아니라 대중참여주의로 번역하는 게 맞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대중의 뜻과 반대로 나아가면서, 하지 말라는 것만 했다. 이라크파병 안 된다고 했는데 파병했고, 대연정 안 된다고 했는데 추진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페론이나 차베스, 룰라가 추진했던 대중참여적 포퓰리즘을 못하고 엉뚱한 것만 한 거다.

정책이 보수의 장벽에 막혀 있을 때 건강한 포퓰리즘은 필요하다. 단 포퓰리즘을 오래 끌면 안 되고, 고개를 넘지 못할 때만 써야 한다. 그 다음 단계에도 계속 쓰는 것은 곤란하다."

- 라틴아메리카의 장점이 한국의 진보를 자극할 수 있을까.
"노동운동을 포함한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이게 최근 내 화두다. 미래구상을 하자고 나선 배경이기도 하다.

브라질의 룰라가 노동운동만으로 대통령이 된 게 아니다. 노동운동, 지역운동, 시민운동, 좌파운동을 엮어서 룰라정부가 탄생했다. 브라질에는 8개 정도의 주요 정당이 있다. 이 중 6개 정당이 룰라정부에 들어와 있다. 연립정부다. 우리는 브라질노동자당(PT)만 알지만 그 외에 5개 정당이 더 참여하고 있다.

한국의 진보도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분열된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연대를 확대해야 한다. 이것 없이는 한국 사회가 진보로 나아가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고, 통일로 가기도 어렵다.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손잡으면 진보의 문이 열리는 거고, 그게 아니면 문이 안 열리는 거다. 미래구상이 진보와 개혁의 단일 국민후보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공감할 수 있는 단일 전선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사고한다. 시민운동이 이걸 아는데 연대하겠나.
"민주노동당을 진보정당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동의한다. 그런데 시민운동 세력이 민주노동당 안으로 들어가는 게 민주노동당 강화인가? 아니면, 민주노동당 밖에 제2의 진보정당을 만드는 게 강화인가? 토론해야 한다. 가능한 방법은 여러 가지다. 시민운동 진영에도 정치적 역할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민주노동당과 의미 있는 접합을 할 수도 있다. 민주노동당과 양립하면서 나아가다가 나중에 접합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민주노동당이 변화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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