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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최장집 교수님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최 교수님과 저의 학문적 전통은 달랐지만 한국의 지역주의와 반미감정에 관한 시각은 놀랍게도 일치했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 속에는 항상 최교수님이 학문적 은사로 남아 있습니다.

최근 최 교수님이 지난 1월 22일자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참여정부에 대해 여러 가지 평가를 하신 것을 읽으며, 이 부분에 관한 한 저와 생각이 많이 달라 놀랐고 또 참여정부의 홍보수석을 지냈던 제게 가장 큰 책임이 있음을 절감했습니다. 청와대 안에 있을 때 최 교수님을 직접 찾아뵙고 이해를 구했어야 했는데 당연히 우군이라 여기고 제 임무를 소홀히 했음을 깊이 반성하며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교수님의 주장에 몇 가지 의문이 있어 공개질의를 드리고자 하오니 후학에게 좀 더 많은 학습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성심껏 답변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이러한 공개토론이 향후 민주화세력이 고민해야 할 문제와 대안을 찾는 데에도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와 대통령 지지도는 별개

▲ 최장집 고려대 교수
ⓒ 오마이뉴스 권우성
최 교수님의 논지에 여러 가지 의문이 있지만 지면 관계상 한 가지에만 집중하겠습니다. 최 교수님께서는 참여정부가 민주정부로서 실패했다고 단정적으로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지지자의 신뢰 상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등 객관적 정책수행의 지표는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거를 통해 집권정부가 실패했다고 다수가 평결하면 그것이 곧 민중의 평결이 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것입니다.

저는 참여정부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는 별개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낮은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노 대통령과 저를 포함한 청와대 참모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으며, 열린우리당과 진보진영도 공동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해 최근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낮은 지지도만으로 참여정부가 실패했다는 주장은 전형적인 개체주의적 오류(개인의 주관적 평가를 합산해 시스템에 대한 객관적 평가로 환원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대종상 연기상과 인기상이 별도로 존재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겠지요.)

이회창 후보가 집권했다면 나아졌을까요

이러한 오류를 피하기 위해 참여정부의 성공과 실패는 객관적 기준으로 검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평가 기준은 상대적 평가와 절대적 평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바드대학의 로저 피셔 교수는 결과를 평가할 때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대안이 있었느냐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정치는 어차피 선택의 문제입니다. 가령, 이회창 후보가 집권했으면 이보다 더 잘했으리라는 근거가 있다면 참여정부는 실패한 것입니다. 이것은 상대적 평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절대적 평가는 선거공약을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 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 기준으로 볼 때 참여정부는 매우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이회창 후보가 집권했다면 북핵문제와 복지문제를 참여정부보다 더 잘 해결했을까요. 분명한 것은 차떼기·책떼기는 절대로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며 선거혁명도 없고, 정경유착도 그대로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기업이나 공기업의 경쟁력이 지금만큼 나아졌으리라 믿을만한 근거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후보의 선거공약은 낡은 정치의 청산이었으며, 2004년 총선에서 깨끗한 선거혁명을 이루는 순간 선거공약의 절반 이상을 완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대통령 공천권 금지, 정당 민주화, 권력기관 중립 등을 통해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새정치는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2002년 아시아에서 정치만족도가 꼴찌였던 한국은 2006년 75%의 만족도를 보여 1등을 차지했습니다.

지금 노 대통령의 지지도가 낮은 데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가 있지만 선거공약을 너무 빨리 완수해 선거연합이 와해된 데에 가장 큰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IMF위기를 극복했다고 선언하는 순간, 노무현 대통령이 새 정치를 달성하는 순간, 두 정부가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이로 인해 선거연합이 해체되었기 때문입니다.

진보학자들은 양극화 대안 내놓았습니까

참여정부 들어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된 것 맞습니다. 과거처럼 카드채를 이용하여 경기부양을 하지 않으니 성장이 둔화되었고, 재정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복지를 본격적으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양극화 때문에 참여정부가 민주정부로서 실패했다면 미국은 OECD국가에서 가장 양극화가 심한 나라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민주주의로서 가장 실패한 나라입니까?

대통령이 재정문제를 어떻게 할지 함께 토론해보자고 하자 언론은 '세금인상'으로 보도해 버렸습니다. 그 때 진보학자들은 양극화를 해결할 대안과 방법을 내놓으며 공론의 장을 살리기 위해 어떤 기여를 하셨는지요?

50%의 국민이 면세인 나라에서, 세금을 올리자면 세금을 안 내는 서민들이 가장 쌍심지를 켜고 반대합니다. 저소득층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건 독재시대부터 지속되는 전통적인 유형입니다. 참여정부 들어 새삼 강화된 현상이 아닙니다. 진보학자들은 서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요?

양극화해결은 참여정부가 새정치를 이루고 나서 들고 나온 새로운 의제였지 2002년 대선의 선거 공약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선거 내내 후보들은 경제성장률 경쟁을 할 정도로 양극화에 대한 고민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제2의 금융위기를 걱정하는 가운데 참여정부가 탄생했습니다. 양극화 해결을 위한 정책적 수단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없이 어떻게 정부가 정책을 실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는 복지예산을 가파르게 올려가고 있습니다. 서민들의 소득은 줄었을지 몰라도 복지수준은 예전보다 훨씬 향상되었습니다. 저소득층의 삶이 과거정부에서보다 더 나빠졌는지 경험적으로 현장검증을 해보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지난 연말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복지예산·교육예산·장애인 예산을 삭감했음에도 최 교수님은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좋다고 말씀하시니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지자의 신뢰 상실이 최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참여정부의 실패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역대 한국의 민주정부 중에 국민들의 신뢰를 받은 정부가 과연 있었는지요. 한국은 공적 신뢰와 정부신뢰가 동구의 신생민주국가와 비교해도 중간 정도에 속합니다.선진국과 비교하면 최하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낮은 정부신뢰는 참여정부에서 새삼 등장한 현상도 아니고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신생민주국가는 모두 경험하는 현상입니다.

정부신뢰가 높았던 미국에서도 1960년대 이후 정부신뢰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1960년대 이전 미국의 대통령은 모두 성공했고 그 이후 대통령은 모두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요.

선생님의 평가가 유권자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 노무현 대통령. 사진은 1월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진행된 신년기자회견.
ⓒ 오마이뉴스 이종호
최 교수님이 참여정부가 실패했다고 말하는 또 하나의 근거는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것입니다.

선거가 민심을 가장 잘 반영하는 제도라는 점에 대해서는 저도 이견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지난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못하는 한나라당과 수구언론은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선거가 정부의 실패와 성공을 측정하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현대 미국의 대통령 중 중간선거에서 승리한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어느 나라든 중간선거에 집권당이 패배하는 것이 오히려 법칙에 속합니다. 그렇다면 이들 민주국가는 전부 실패했다는 말인가요. 중간선거는 투표율이 낮기 때문에 민심이 정확하게 반영되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독일에서는 매달 선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에서는 2년에 한 번 밖에 선거가 없습니다. 다양한 공직을 선출하는 것과 선거를 자주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우리처럼 6개월마다 재보궐선거를 전국적으로 실시하면서 그 결과를 대통령에 대한 심판으로 해석하는 나라가 또 있는지요.

재보궐선거는 조직선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재보궐선거는 그 지역의 행사일 뿐인데 이를 중앙당 차원에서 대선 전초전으로 치르는 나라는 아마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입니다. 참여정부에 대한 일차적 평가는 올해 치러지는 대선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참여정부에 대한 최 교수님의 평가가 유권자의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진보진영의 대표학자로부터 비판을 받으니 참여정부가 정말로 잘못했구나'하는 인상을 만든다는 겁니다. 오늘날 정치가 이미지 정치라는 점은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최 교수님의 지명도와 영향력을 감안하신다면 논리적 근거와 경험적 자료를 갖춰 참여정부를 평가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민주화진영이 뭉칠 수 밖에 없는 이유

그러나 최 교수님의 말씀에 한 가지 동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민주화진영이 분화해야 한다는 점과 유럽식 다당제를 이상으로 생각하는 점입니다. 우리 사회의 진보진영은 민주화세력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반독재진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화진영이 독재에 반대하는데 뜻을 같이 했던 것이지, 정치적 이상이나 지향점을 중심으로 뭉친 것이 아니므로 독재자가 사라지면 민주화세력의 분화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올 대선에서도 민주화진영의 분화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역주의가 살아있는 가운데 우리의 선거제도가 1등만 당선되는 다수제를 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제도 하에서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니다.

최 교수님은 열린우리당이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가 노 대통령이 여당과 국회를 우회했기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역대 정부 중에 당정협의가 참여정부에서처럼 많이 또 활발하게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고 봅니다. 열린우리당이 대통합 신당을 선언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지역주의와 다수제 선거제도의 결합이라는 환경적 제약 때문입니다. 탈당파들이 특정지역에 기반을 둔 의원이 다수라는 점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노 대통령이 대연정을 통해서라도 선거제도 개혁을 주장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열린우리당을 구하고 정당이 뿌리를 내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독재자는 사라졌지만 여권이 분화하기보다 다시 뭉쳐야 하는 이유는 그것만이 그들의 생존을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민주화되었지만 아직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독점적 권력이 모두 해체되었다고 보기 어려우니 제2의 민주화를 위해 여권이 단결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정당의 분화 필요성은 존재하지만 선거제도 때문에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민주화진영이 다시 합칠 수밖에 없는 운명이 바로 정당의 제도화를 막고 있는 근본 원인입니다.

선거제도의 개혁 없이 최 교수님이 선호하는 유럽식 다당제가 만들어지지도 않지만, 정당의 제도화 또한 불가능합니다. 대연정을 통해서라도 선거제도를 고치려는 대통령의 제안을 진보학자들은 왜 외면하셨는지요. 어차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비슷하다고 비판하시면서도 대연정에는 반대하신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상의 질문에 대해 사신으로 답을 주셔도 좋고, 공개 토론에 나서신다면 저로서는 영광으로 알고 응하겠습니다. 공개질의가 혹시 결례가 되었다면 너그러운 용서를 부탁드립니다.

태그:#최장집, #진보, #참여정부,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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