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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강: 22일 오후 3시 30분]

▲ <아파트 공화국>을 쓴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 교수
ⓒ 발레리 줄레조 제공
지난 1990년 한국을 처음 방문한 프랑스의 젊은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40·마른 라 발레대 교수). 서울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낯선 이방인의 눈에 충격 그 자체였다. 더욱이 프랑스에서는 빈민주택의 상징인 아파트가 한국에서는 그토록 높은 인기를 끌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신이 살던 곳의 풍경과 너무나 다른 주거문화에 충격을 받은 그는 이후 서울의 아파트 문제만을 10년 넘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고, 최근에 <아파트 공화국>이란 책을 펴냈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지난해 아파트값 폭등 이후 정부의 정책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처음엔 대도시에만 있던 아파트 단지가 점점 시골로 번져가는 요즘, 대한민국은 가히 아파트 공화국이라 부를 만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흔들어 놓은 엄청난 변화에 대해 변변한 분석조차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

대부분 한국인들은 "한국에는 아파트가 왜 이렇게 많은가"라는 물음에 "땅은 좁고 사람은 많기 때문"이라고 답할 뿐이다. 왜 그렇게 갑자기 아파트가 급증하였는지, 그에 따른 문제는 무엇인지 등은 생각하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해온 물음이 이방인 눈에는 뚜렷하게 보였다. 그저 땅은 좁고 인구가 많다는 이유 하나로 여태껏 한국의 아파트 현상을 '넘겨짚은' 한국인들이라면 줄레조 교수의 <아파트 공화국>을 들춰 보고 무릎을 칠 법하다.

현재 객원연구원(Visiting Scholar) 자격으로 미국 펜실베니아에 체류 중인 줄레조 교수는 21일 <오마이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정부, 재벌, 중산층의 '3각 동맹'이 깨지지 않는 한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 버블'은 수년에 걸쳐 그 여세가 계속될 것이다"고 말했다.

다음은 줄레조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

"한국 아파트는 '압축된 근대성' 반영"

@BRI@- 한국을 처음 방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지난 1990년에 어학연수와 연구 목적으로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에 오기 전 파리4대학(소르본)에서 석사 과정에 있었으며 서울에 대해 논문을 쓸 계획이었다. 그 당시에 서울은 88 올림픽 직후 국제무대에 등장한 매우 역동적인 수도였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어로 된 서울 관련 연구 자료나 책이 별로 없었다. 항상 아시아 문화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연구자로서 좀더 많은 전문적인 분야를 찾고 있었고, 한국과 서울은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했다. 1990년에 서울의 거리에 대해 석사 논문을 발표했다."

- 한국을 처음 방문한 이후 한국의 아파트에 대해 계속해서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첫 방문때 거대한 규모로 지어지는 한국 아파트의 건설에 매우 강한 인상을 받았다. 한국의 아파트는 내게 매우 중요한 주제였으며, 주택은 도심 빌딩과 거주자들의 생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파트는 한국 도심 지역의 강력한 상징(아이콘)이고, 지리학자인 나는 뿌리깊은 이 사회적 현상을 해석하기 위해 한국의 도시 경관(landscape)을 연구하기로 맘먹었다.

그래서 박사 논문의 주제를 한국의 아파트로 결정했다. 잘 알겠지만 박사 논문 조사는 매우 길다. 사실 1994년부터 1999년까지 이 논문 작업은 계속됐다. 그 후 한국의 아파트를 다룬 박사학위 논문은 2003년 책('Séoul, ville géante, ciotés radieuses')으로 출간됐다. 이 책은 사실상 프랑스어로 된 서울에 관한 첫번째 연구서이다.

그 후 고려대학교의 최장집 교수가 진행하는 '아세아문제연구소'의 몇몇 연구 프로젝트의 후원으로 추가로 관련 분야에 대해 연구를 했으며, 이번에 출간된 <아파트 공화국>은 이 같은 연구의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줄레조 교수가 서울 아파트 문제를 연구해 쓴 <아파트 공화국>
ⓒ 후마니타스
- 이번에 출간한 <아파트 공화국>을 읽어보면 아파트라는 프리즘을 통해 한국의 사회 문화의 속살까지 살핀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아파트를 통해 들여다 본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의 건설은 '압축된 근대성'(compressed modernity)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는 그동안 사회 과학 분야에서 이미 많은 사회학자들(Koo Hagen, Laurel Kendall, Nancy Abelman, Laura Nelson 등)에 의해 지적되기도 했다. 한국 사회가 갑작스레 매우 빠른 속도로 근대화했다는 것은 -심지어 탈 근대화까지도- 사실이다.

한국 사회에서 40~50년 안에 벌어진 이 같은 현상들은 이미 프랑스나 영국과 같은 산업화된 유럽국가들에서는 100년이 넘게 걸렸다.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 건설의 거대한 규모와 형식은 '압축된 근대성'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 사실 한국의 아파트는 또 건축학적으로도 '압축된 근대성'으로 가는 중간 역할 정도로 볼 수도 있다."

- 한국에서는 왜 대단지 아파트 건설이 그토록 급격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나. 아파트를 향한 한국인들의 열광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나.
"<아파트 공화국>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한국에서 아파트의 급속한 발전은 서울의 모든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분야가 포함된 매우 복잡한 산물이다. 이것은 내가 넓은 의미에서 아파트를 사회적 구조물(social construct)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재화(the products)인 동시에 특히 도시에서는 현대화의 매개체 또는 수단이며 현대화의 상징이다. 동시에 한국인들에게 아파트는 어떤 의미에서 투기의 목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아파트에 대한 한국인들의 열광 역시 이 같은 투기 목적에서 발생한 측면이 크다."

▲ 서울 송파구 아파트 단지
ⓒ 오마이뉴스 권우성

"70, 80년대 '3각 동맹' 지금도 유효"

- 줄레조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냉대받던 아파트가 명품으로 자리잡은 이유를 권위주의 산업화 아래 정부, 재벌, 중산층의 '3각 특혜동맹'에서 찾았다. 이 같은 동맹관계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가.
"좋은 질문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사회가 속한 환경은 최근 20년 동안 매우 급변했다. 민주주의의 개화와 더불어 시민 사회의 출현은 주요한 내적 변화이다. 외부적으로는 세계화의 움직임이 있으며, 국가와 지역을 초월한 (한반도의 특수한 지정학적 배경은 따로 두겠다) 것이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를 둘러싼 이같은 '3각 동맹'은,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상황을 매우 잘 표현하고 있다. 대기업은 정부의 든든한 파트너가 됐으며 중산층은 정부의 확실한 표밭이었다. 90년대 역시 '3각 동맹'으로 분석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3각 동맹'은 지금도 유효하며 이로 인해 이제 서울에서 아파트는 계급적 지위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 지금과 같은 한국인들의 아파트에 대한 열기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는가. 한국인들이 아파트에 대해 갖고 있는 환상은 언제 깨질 것인가.
"엄밀히 따져 봤을 때, 여러 가지가 이미 변화하고 있다. 싱가포르 스타일의 매우 고급스러운 콘도미니엄, 즉 주상복합이라고 불리는 서울의 타워팰리스와 같은 새로운 주거 모델의 등장이 그 신호이다. 이런 복합 주거의 형태는 15년 심지어 10년 전에 지어진 아파트 단지와도 매우 다르다.

기본적으로 한국인들이 아파트에 지닌 환상은 단순히 '땅은 좁고 사람은 많기 때문'이라는 단순 논리로 설명할 수 없다. 이미 한국에서 아파트는 '욕망의 상징'이 돼 버렸다. 그동안 '3각 동맹'의 틀 아래 아파트가 마치 유행상품처럼 취급돼 왔듯이 앞으로도 '3각 동맹'이 깨지지 않는 이상 아파트에 대한 환상은 계속 될 것이다."

▲ 발레리 줄레조 교수
ⓒ 발레리 줄레조 제공
- 최근 들어 한국에서는 아파트 가격에 대한 '버블 논란'이 일고 있다. 줄레조 교수께선 한국의 아파트에 버블이 있다고 보는가. 만일 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버블이 꺼질 것으로 생각하나.
"자주 언급했지만 나는 사회과학자이지 부동산 중개업자나 투자자가 아니다. 내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 특히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면 나는 지금 이 일을 하지 않고 부동산 투기를 통해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을 것이다.(웃음)

기본적으로 내 연구의 목적은 현재를 설명하는 것이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굳이 아파트 버블에 대해 의견을 말하자면 아파트 버블은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의 사회적 구조물(the social construct)에 대한 분명한 결과물이다. 이 같은 버블은 수년에 걸쳐 크게 여세를 몰아갈 것이다.

이는 단순한 수요와 공급의 문제와는 전혀 다른 부분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의 아파트를 둘러싼 정부와 재벌, 중산층의 '3각 특혜동맹'이 지속된다면 수요와 공급의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 아파트 버블은 계속될 것이다."

- 한국 사회 일부에서는 버블이 갑자기 꺼질 경우 한국 경제 전체에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는 걱정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 국민들의 그 같은 걱정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정말 이 문제는 앞으로 한국민에 하나의 도전이 될 것이다. 과거에도 늘 그랬듯이 한국 국민들이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아파트 문화가 하루살이 도시로 만들어"

- 줄레조 교수도 잘 알겠지만 한국 정부는 아파트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수많은 대책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그동안 아파트 가격은 쉽게 안정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가장 중요한 점은 아파트의 투기가 진행될수록, 내가 앞서 언급했듯이 단순한 수요와 공급의 문제를 넘어선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국민 주택 정책 역시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 사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한국의 주택 보급률(housing ratio)은 다른 개발도상국과 비슷하다. 문제는 양이 아니라 주거의 질이다.

구매력(affordability)과 상대적으로 덜 부유한 계층을 위한 공공주택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진정한 국민주택이 없다. 프랑스의 국민주택 정책은 노동자 계층에게 주거지를 마련해주면서 그들을 국가 안으로 끌어들이지만 한국은 전혀 그렇지 않다."

- 지금이라도 한국 아파트 가격의 안정을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보는가.
"(정치적인 주제가 아니라면) 이 질문은 대답하기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간단한 대답을 해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것이 한국 정부와 한국 사회가 도시 혹은 새것에 대한 맹목적 숭배에 벗어나길 원하는 것에 달려있다."

▲ 한국 아파트문화의 상징인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한국 아파트의 미래에 대해 줄레조 교수는 지금과 같은 아파트 문화가 결국 서울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로 만들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이 같은 미래를 막기 위해 줄레조 교수가 생각하고 있는 현실적 대안은 무엇인가.
"사실 하루살이 도시(ephemerous city)는 전적으로 부정적인 평가가 아니다. 이는 단지 하나의 표현 방식이고, 지난 30년동안 도시 정책에서 실패한 프랑스 도시 대부분에도 '하루살이 도시론'은 적용된다.

중요한 것은 아파트 단지는 매우 복잡한 주거 형태라는 점이다. 작은 규모의 빌딩 20채 보다 수백명이 밀집해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다루는 것이 훨씬 어렵다. 그러나 아시아 지역에서도 아파트 단지의 성공적인 관리 사례가 있다. 싱가포르 주택청이 리노베이션과 재건축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대규모 아파트 건설이 더 많은 가구를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니다. 모든 아파트 단지들은 현재 한국 도시 전통의 한 부분이다. 나는 한국 국민들은 이 전통을 유지할 수 있고 도시나 도시의 부분들이 하루살이가 되지 않는, 혁신적인 방법을 찾을 것으로 확신한다."

"한국 살았으면 나라도 아파트 원할 것"

- 책을 쓰는 동안 면접조사를 진행하면서 아파트 단지 주민들과 크고 작은 마찰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사실 아파트 단지에서 인터뷰와 표본 조사를 하는 동안 많은 마찰은 없었다. 반대로 대부분 거주자들과 더불어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매우 협조적이었고 친절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언어 문제, 특히 개념(concepts)에 관한 것이었다. 가장 다루기 어려웠던 개념은 사회주거(social housing), 즉 공공주택 내지 국민주택에 대한 개념이었다."

- 한국의 아파트와 연결지어서 앞으로 더 연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현재 공공장소 특히 방 문화(pang culture)라고 부르는 한국 도시 사회에 관해 다른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다. 찜질방이나 노래방과 같이 방 문화를 통해 한국인의 사회적 친교를 연구해 볼 생각이다."

- 끝으로 줄레조 교수께서 한국에 살고 있다고 가정을 할 경우, 만일 무주택자라면 지금 아파트를 살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언제 살 것인가.
"한국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나 역시 만일 내가 한국에 살고 있다면 아파트에 살기를 원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택 선택 역시 사회 구조의 산물이며 나는 그 구조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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