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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서울가정법원이 모여 있는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건물.
ⓒ 오마이뉴스 권우성

# 그날 저녁

15일 저녁 6시 30분 서울 송파구 한 아파트 입구. 전직 교수 김명호(50)씨가 1층 계단에 서서 박홍우 부장판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뒤 그 곳에 도착한 박 판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박홍우 판사, 그게 판결이야"라고 외치며 김씨는 박 판사를 향해 석궁을 쏘았다. (김씨는 실랑이를 벌이다 화살이 우발적으로 발사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그로부터 나흘 전

김씨가 성균관대학을 상대로 낸 교수지위 확인소송 항소심 판결이 있기 하루 전날인 지난 11일. 김씨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고등학교 동창 K씨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정신적 공황상태에 와 있다. 내일 판결이 잘못되면 이젠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 그래도 비리만은 반드시 밝히겠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꼭 이슈화를 시키겠다."

# 그날 이후

재판결과 법원은 김씨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언론을 통해 김씨는 판결에 불만을 품고 사건 담당 판사를 습격한 사상 초유의 법관 테러사건의 주인공으로 부각됐다. '석궁테러 살인미수 적용 (국민일보)' '두차례 답사… 살해의도 있었다(헤럴드경제)' '석궁테러… 사법권에 중대 도전(YTN)' '구멍뚫린 총기류 관리… 석궁 범행 잇따라(한국일보)'


불리한 판결에 테러? 아직도 이 사건은 '왜'가 부족하다

@BRI@한 전직 교수의 양심고백과 10여 년에 걸친 진실투쟁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경찰에 붙잡힌 김씨는 지난 16일 "합법적인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최후의 선택을 했다"며 범행동기에 대해 또렷하게 얘기했다. 그는 또 "이렇게라도 해야 세상이 진실을 알아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다만 "박 판사를 위협하려 했을 뿐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왜'가 부족하다. 전직 교수가 단순히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했다고 판사를 테러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과연'이라는 의문이 남는다.

<오마이뉴스>는 이번 사건의 실체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김씨의 주변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김씨와 공적·사적으로 친분 관계가 있는 몇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이번 사건이 가져다 준 충격에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김씨가 '파국'으로 치닫기까지의 배경에 대해서는 담담하게 과거를 더듬어 나갔다.

당시 김씨 사건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민주화를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김세균 공동상임의장(서울대 정치학), 최영찬 사무처장(서울대 농생명과학), 김씨의 고교·대학동창인 김현광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계승혁 서울대 수학과 교수, 김영식씨(자영업), 여동생 김아무개씨의 증언을 토대로 이번 사건의 출발점인 김씨의 '재임용 탈락'에서부터 최근 '법관 테러'까지의 10여 년간의 시간을 되짚어 봤다.

취재 과정에 만난 김씨 주변 사람들은 먼저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해 불만을 터트렸다. 이들은 "언론이 이번 사건의 본질적 측면인 학계의 학문적 비도덕성과 사학의 재임용 제도의 허점에 대해서는 외면한 채 김씨가 저지른 행위에만 초점을 맞춰 선정적인 방향으로 사태를 몰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지적대로 이번 사건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언론에서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법관 테러'에 관한 문제와 또 하나는 '재임용 탈락'이다.

법관 테러는 앞으로 경찰조사를 통해 시비가 가려지겠지만, 재임용 탈락에 대해서는 누가 옳은지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다. 법관 테러의 직접적 원인이 된 재임용 탈락과 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놓고 당사자들의 주장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왜①] 이번 사건의 발단 '수학문제 오류'의 진실은

▲ 판결에 앙심을 품고 서울고법 민사2부 박홍우 부장판사를 피습한 전직 교수 김모씨(사진뒤편 오른쪽)와 범행에 사용한 석궁을 15일 밤 경찰이 공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황광모
이번 사건을 불러온 재임용 탈락을 둘러싼 첫 번째 쟁점은 '수학 문제 오류' 논란이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선 김씨가 몸담고 있던 성균관대의 1995학년도 대학본고사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논란이 된 문제는 100점 만점에 15점이 배정된 '공간 벡터에 대한 증명' 문항이었다. 본고사 채점위원이던 김씨는 채점 도중 이 문제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고 장을병 당시 총장에게 이를 보고했다.

그러나 결과는 엉뚱하게 나타났다. 총장에게 보고하고 며칠이 지난 뒤 수학과 교수들이 그에 대해 징계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김씨는 그해 12월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정직 3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징계사유는 생뚱맞게도 '해교행위'와 '논문 부적격'이었다. 김씨는 이후 95년 부교수 승진 대상에서 제외된 데 이어 재임용에서도 탈락했다. 결국 그는 그해 10월 법원에 '부교수직 직위확인 소송'을 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국내외 수학계에서는 김씨가 지적한 오류에 대해 공감하는 의견이 많았다. 전국 44개 대학 수학과 교수 189명은 김씨의 정당성을 내세우며 '문항의 수학적인 오류'를 지적했다.

당시 김씨 변호에 앞장섰던 계승혁 교수는 "학교 측의 재임용 탈락을 납득할 수 없어 당시 수학과 교수들이 이를 반대하는 서명을 날인해 김씨의 '부교수 지위 확인' 청구소송을 맡고 있던 재판부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국제 수학저널인 <매스 인텔리전서>도 '정직의 대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김씨의 재임용 탈락의 부당성을 다뤘다.

이에 대해 성균관대 측은 "수학문제 오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 재임용에서 탈락했다는 것은 김씨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며 "재임용에서 탈락한 가장 큰 이유는 연구 실적이 미미한데다 교육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왜②] 진실감추기 급급한 대학, 유능한 수학자에 사망선고

그러나 김씨 주변 사람들은 학교 당국이 문제의 오류를 밝히기보다는 진실을 감추는 데 급급했다고 주장했다. 학교 측이 학계의 쓴소리에는 귀를 닫은 채 수험생의 문제제기가 없었다는 이유를 내세워 서둘러 이를 덮으려 했다는 것. 여기에 사법부는 "재임용 거부는 학교의 자유재량에 해당한다"며 김씨가 낸 소송에 대해 학교의 손을 들어줬다.

김세균 민교협 공동의장은 "논문 부적격 평가, 해교행위 등은 재임용에 탈락시키기 위한 재단 측의 방편일 뿐"이라며 "학교는 학문적 소신을 지킨 학자를 궁지로 내몰았고 법원은 교수의 연구실적을 무시한 채 재단에 재임용에 관한 전권을 보장하면서 한 유능한 수학자에게 사망선고를 내렸다"고 말했다.

이후 항소심에서도 잇따라 패소한 김씨는 진실규명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외국으로 떠났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인 2004년 말까지 뉴질랜드와 미국 등에서 무보수 연구교수로 지냈다.

그러나 그 곳에서도 재임용에 탈락한 수학자라는 '꼬리표'가 그를 따라다녔다. 연구 성과를 내더라도 이 때문에 인정을 받지 못했다. 결국 '재임용 탈락'의 멍에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헛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국내로 들어오게 됐다.

그리고 2005년 3월 김씨는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그해 1월 개정된 '사립학교법 및 교육공무원법'은 김씨가 용기를 낸 또다른 이유다. 개정 법률에 따르면 '재임용이 거부된 교원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재심청구나 법원소송 제기도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여기에 김민수 서울대 미대 교수가 재임용 거부처분취소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것도 김씨에겐 희망이었다. 민교협에 있으면서 두 사건 모두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최영찬 사무처장은 "김명호 교수의 경우는 김민수 교수보다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입시 오류 지적에 대한 보복으로 재임용을 거부당했다고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부족해 학교가 재량권을 남용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또 학교 측 손을 들어줬다.

김씨가 이에 굴복해 다시 항소했으나 법원은 지난 12일 이마저 기각했다. 당시 이 사건을 맡은 담당 판사가 이번에 피해를 입은 박홍우 부장판사다.

▲ 연구논문 부실을 이유로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던 서울대 미대 조교수 김민수씨가 지난 2005년 1월 서울대총장을 상대로 낸 교수재임용 거부처분 취소청구소송 파기환송심에서 1심과 같이 원고승소 판결을 받은 뒤, 서울대 본관 앞에 설치된 복직 촉구 농성장을 찾았다.
ⓒ 연합뉴스 황광모
[왜③] 법원은 과연 사실관계에 근거해 판결했는가

이번 사건을 불러온 재임용 탈락을 둘러싼 또 하나의 쟁점은 법원 심리의 충실성이다. 즉, 법원이 학교측의 재임용 탈락 조치에 대해 얼마나 면밀하게 진위를 가리는 작업을 했느냐는 점이다. 취재 과정에 만난 김씨 주변 사람들과 김씨 본인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점도 바로 이 부분이다.

실제 김씨는 경찰에 체포된 직후 기자들 앞에서 범행 동기에 대해 "법문을 무시하는 판사에게 국민의 마지막 권리로서 국민저항권을 행사하려 했다"며 "법을 무시하는 판사들에 대해서 사법부가 얼마나 썩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김씨는 이번 사건을 저지르기 전 "법원이 사건의 사실관계에 대한 파악 없이 그저 과거 판례에 따라 판결을 내리고 있다"며 "아무리 근거 자료를 모아 제출하더라도 소송 당사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이런 재판에서는 쓸모없는 일"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김씨의 여동생도 "오빠가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것 역시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재판부의 판결문 요지를 살펴보면 "…재임용 심사 과정에 원고가 주장하는 부당한 사유가 있었다 하여도…임용 청약행위에 승낙을 할지 여부가 피고 법인(성균관대)의 전적인 자유재량에 맡겨진 이상 원고(김명호)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적고 있다. 즉 김씨의 재임용 탈락이 부당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재임용 여부는 학교의 재량권에 속한다'는 이유로 학교 측 손을 들어준 것이다.

김세균 민교협 공동의장은 "지난 1987년 대법원의 '대학 교수의 임기만료는 당연 퇴직이고, 임용은 학교의 자유재량행위'이라는 판례 이후 20년 동안 '재임용 소송은 자동패소'라는 등식이 성립됐다"며 법원 심리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김씨가 2005년에 낸 소송 1심 판결이나 항소심 판결은 대법원 판례를 적용하지 않고 사실관계를 따져 판단한 것이다"며 "김씨가 이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왜④] 학문적 비도덕이 '석궁 습격' 불러

우리 학계의 뿌리박힌 학문적 비도덕성에 대해서도 김씨 주변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학문적 양심에 따라 순조롭게 풀려야 할 사건이 '법관 테러'라는 비극으로 확대된 데는 우리 학계의 무관심과 비도덕적인 풍토가 한몫 했다는 것이다.

법원은 재판 과정에서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수학 문제 오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대한 수학회와 고등과학원에 검토를 요구했지만 두 단체는 "한 대학의 재임용과 관련된 문제는 검토할 강제성이 없다"는 내용의 회신을 보냈을 뿐이다.

이에 대해 김도한 대한수학회 회장은 당시의 결정에 대해서는 답변할 처지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 "당시 학회가 답변하지 않은 것은 입시 문제 논란에 개입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 이후 국민들은 '법관 테러' 충격에 휩싸였지만 민교협을 비롯한 학계에서는 '재임용 제도'의 부당성에 눈을 돌리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언론은 한 대학의 진실 가리기와 학계에 뿌리박힌 비도덕적 풍토는 도외시한 채 한 전직 교수의 '법관 테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김세균 민교협 상임의장은 "이번 사건은 강고한 우리 학계의 카르텔 앞에서 진실이 또 한번 작동을 멈춘 결과"라며 "학문의 양심에 따른 정직한 고백이 재임용 탈락의 이유로 작용하는 게 우리의 학문적 풍토라면 대학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이해하려면 핵심을 잘 짚어야 한다. 김씨가 법관을 습격한 것을 비난하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그 과정에서 한 대학의 진실 숨기기, 그리고 그들을 비호하는 사법부를 환기해야 한다.

'석궁 습격'이라는 극단으로 사태를 해결하려 했던 김씨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애초에 김씨가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제도적으로 이를 사전에 방지할 수는 없었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게 또 다른 김씨를 막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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