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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P는 근육이 뼈로 변하는 병으로 일명 '뼈의 감옥'이라고 불린다.
ⓒ www.uphs.upenn.edu

희귀질환 기사를 쓰고 난 뒤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메일을 보낸 사람은 자신을 진행성 골화성 섬유이형성증(FOP) 환자라고 소개했다. FOP는 자라면서 온 몸의 근육이 점차 뼈로 바뀌는 병으로 일명 '뼈의 감옥'이라고 불린다. 현재 200만 명당 1명꼴로 발병하는 희귀질환이다. 국내 환자 수는 20~30명 정도로 추정하지만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다. 이연화(가명, 32)씨는 관련 단체를 만들 정도로 꽤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자세한 사정을 듣고 싶어 메일을 보냈다. 통화를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답장은 '힘들다'였다. 병 후유증으로 인한 청각장애로 컴퓨터 외엔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손발이 굳어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다. 결국 메일을 통화 대화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오고간 메일이 대략 네다섯 차례. 답장을 받는데 3일이 걸리기도 했다. 손이 불편하기 때문이었다.

현재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충북의 한 소도시. 정부로부터 약 30만원의 보조금을 받고 있으며, 아무런 의학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완치를 바라진 않는다"면서 "단지 통증만 줄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바깥 나들이는 꿈도 못 꾼다. 잘못 부딪히기라도 하면 통증을 감당할 수 없을 뿐더러, 이동에 필요한 소도구 준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어머니, 오빠와 함께 살고 있지만, 병 수발로 가족 모두 건강이 좋지 않다. 게다가 중증 환자가 있는 탓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 이연화씨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한다.(그는 스스로를 "맑은 정신이 아니어서 오락가락한다. 소리를 듣지 못해 아는 단어가 부족하다"고 표현했지만 답변을 이해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오타 교정 외엔 거의 원문 그대로 실었다.)

- 언제 발병했는지.
"FOP는 유전성 질환으로 태어날 때부터…."

- 부계나 모계 쪽에 관련 병이 있는지.
"현재는 저 한 명밖에 없습니다."

- 발병한 뒤 어떻게 대처했는지.
"가난이란 울타리 안에 병이 있다고는 생각도 못했으며 잦은 사고로 그런 줄 알았었지요. 부모님께서 발견한 시기는 4~5세쯤이고요.(아기 때도 아팠지만 모르셨고, 늦게 아시게 되었어요.) 병명을 정확히 알게 된 지는 몇 년 되지 않았습니다. 알게 된 뒤에도 뾰족한 방법은 없었습니다."

- 발병한 뒤 회사, 가정생활에 많은 불편이 있을 것 같은데. 혹시 병 때문에 차별 등을 받은 적이 있는지.
"저는 (병이) 일찍 심해져 일반 회사를 다닌다거나 사회생활은 별로 경험하지 않았어요."

- 발병한 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병의 진행과 재발로 통증에 시달려야 했고, 장애를 수반하게 돼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생겼습니다. 병이 진행되는 상태에 따라 하루아침에 팔 하나를 잃거나 다리 하나를 잃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육신의 일부분을 하나씩 잃어갔습니다. 그럴 때마다 좌절에 빠지고…. FOP는 사람을 고문하듯이 두고두고 시들게 만드는 병입니다. 마음 잡고 일어서려고 하는 순간 바람이 불고, 다시 힘을 내 살려고 하면 또 바람이 붑니다. 이러기를 수차례. 포기와 좌절, 도전이 연속이었던 삶이었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사정이 있어 떠나질 못했고, 이만하길 감사하며 그렇게 또 한 때를 살았어요."

- 현재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는지.
"정부에서 사정을 알고 난 뒤 나오는 보조금 조금과 오빠의 수입인데 점점 상황이 나빠지고 있습니다."

"화장실 자유로이 못가니 가족도 힘들죠"

- 외부 나들이가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떤 방식으로.
"외부 나들이는 불가하고요. 응급상황일 때, 그러니까 아주 많이 아프게 되면 앰뷸런스를 이용해 누워서 병원이동을 합니다. 앰뷸런스도 많이 불편하고 위험하며 힘든데요. 어쩔 수 없이 이용합니다. 가능한 외출은 안하고 참고 지내요. 지금은 이전보다 저의 상태가 심해서 이동이 힘들어요. 이동하다가 조금만 잘못해도 저한테는 치명적이고, 그 뒤에 오는 고통은 몇 달, 몇 년이 걸려도 가시지 않기 때문에…. 또한 눕는 것도 편하게 누울 수 없어서 베개나 깔개 등 필요한 짐을 모두 가져가야 하는데 무리거든요. 도와주는 사람이 여럿이면 조금 낫겠지만."

- 청각 손실 외에 또 다른 문제는 없는지.
"이 병은 몸 전체적으로 방대하게 진행이 되는데요. 개구 장애가 있어서 먹는 것이 제한돼 마음대로 음식을 섭취하기가 어렵습니다. 개구 장애가 악화되면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FOP 합병증 중 하나죠. 고비를 겪어도 봤습니다.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어서. 음식물이 목에 걸리는 위험도 있지요. 입을 못 벌리니까 치아 관리를 못해서 치아가 손상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치아가 아파도 입이 안 벌어져서 치료 또한 불가능하고. 마취 문제로 치료가 어렵습니다. 폐렴도 있고. 그 외에도 전음성 난청, 호흡기 감염, 개구 장애로 인한 영양실조 사망, 원형탈모, 흉곽운동의 제한, 지능저하, 척추측만증 등등 합병증이 있습니다. 화장실을 자유로이 못가니까 가족도 힘들죠. 저 하나 때문에."

- 가족과도 대화를 컴퓨터로 하는지.
"가족과 대화는 거의 안하는 편입니다. 얼굴 마주 보고 입술을 읽으면서 대화를 합니다. 보청기가 생겨서 소리와 입술을 동시에 겸해서 말을 반복하면 간단한 의사소통은 가능합니다. 보청기도 연습단계를 거쳐서 단계식으로 연습을 해야 하는데 손을 자유롭게 쓸 수가 없어요. 대충 음높이를 맞추고 쓰기 시작해서 아직은 적응단계에 머물러 있어요."

- 치료법이나 치료약이 없다고 하는데 지금 치료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치료비용은 얼마이며, 의료보호 1급일 텐데 실제 어느 정도 혜택이 있는지.
"현재 치료약이 없어 뾰족한 해결책은 없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통증만이라도 줄일 수 있는 약물조차도 사용할 수 없어 병원진료는 거의 안하고, 아파도 이동하기 힘들고 치료가 어려우니까 의료보험은 사용 안하게 되네요. 의료보험은 병원에서만 사용할 수 있고 서양의학 쪽만 해당이 돼요. 자가 치료에는 혜택이 안되더라구요. 아마 이 부분(자가 치료)은 다른 분들도 원하실 것 같아요. 큰 병을 앓고 있을 때 어떻게든 치료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니까요. 병원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고 싶지만, 개인적인 제약이 있고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엄두를 낼 수 없네요. 꼭 서양의학 쪽이 아니더라도 고통을 줄일 수 있다면 좋은 거 아닐까요."

▲ FOP는 현재 정확한 원인이 밝혀져 있지 않다.
ⓒ www.pathguy.com

뼈가 자라 내 몸 상태는 마네킹 모양

- 지금 증상이 어떤지(외형상).
"글쎄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뼈가 자라기 때문에… 뼈의 모양과 크기에 따라서 겉으로 보기에는 혹이 있는 것처럼 환부에 표가 납니다. 그래서 보기에 징그러워 보일 수도 있고,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 생각과 보기 나름이죠. 얼굴이 좀 커졌고, 목은 숙여진 상태로 굳었고 상체는 왼쪽으로 틀어진 상태에서 조금 구부러진 상태… 팔다리도 마찬가지로 전부 뼈가 생겨서 붙어 굳었는데요. 뭐랄까? 마네킹이나 깎아 놓은 조각상 같다고 생각하시면 좀 이해가 쉬울 듯해요."

- 혼자 움직이기가 힘들 텐데 주위에서 도움을 받고 있는지.
"몸이 불편하고 연세가 많으신 어머니가 수발을 해오셨는데요. 그러다가 어머니도 많이 아파 쓰러지시기도 하고 점점 안 좋아지시더니 점점 수발하시는 것이 줄어들고 지금은 저를 전혀 못 도와주세요. 주의에서 도움은 거의 못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 2004년부터 환자 찾기에 나서고, 홈페이지 운영, 단체 운영 등 굉장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신데 이렇게 나선 이유는, 성과가 있는지, 병이 있는 것을 많이 숨길 것 같은데.
"사람들은 자신을 숨기려고 합니다. 단체를 만들면서 행동에 나선 이유는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환자분이나 가족 친지 분들과 마음과 아픔을 나누고 싶어서예요. 제가 살아오면서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혼자라는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고 해야 하나요? 지구밖에 동 떨어진 그 느낌, 고독? 이 아픔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이렇구나 하는… 아무튼 제가 표현력과 단어 실력이 없어서요.

저는 살아오면서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같은 아픔을 지녔거나 진실된 친구. 홀로 특이한 병과 싸워야 한다는 외로움과 고독. 마음과 아픔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친구가 필요했었지요. 아직 아무런 대책도 없지만, 다른 사람들도 저와 같이 외로울 것이라는 생각으로 홀로 외로이 병마와 싸우는 분들의 친구가 되어 주고 싶기도 했습니다. 서로 위로하고 아픔을 나누고 용기와 힘도 심어주고 그렇게 함께하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네요.

사람들은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합니다. 숨으려는 사람도 있고, 누구 앞에나 이 사회에 나서길 꺼려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데 사람마다 상황이 달라요. 컴퓨터가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고, 또한 저는 전화 연락이나 오프라인 활동을 못하니까. 아무튼 활성화가 어려운 상태라 온라인 모임은 중단시켰고, 가끔 연락할 일이 생기면 메일 한 번씩 띄우곤 합니다. 어쨌든 제가 많이 부족한 탓이죠. 큰 성과는 없지만 여러 환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몇몇 사람과 연결도 돼서 만나도 봤습니다. 친구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 정보 등이 아무래도 부족할 것 같은데.
"정보는 부족하지만 병에 관해서 자료가 있긴 합니다. 미국 홈피를 통해 소식이 나오고, 작은 잡지식 책자에 투병기나 참고사항 등이 발간되고 있습니다. 단지 영어라는 단점이… 별로 좋은 정보는 없지만 사람들의 삶을 알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을 통해 힘도 얻을 수 있겠지요. 내년에는 국내에도 한국판으로 에세이가 나온다고 하네요."

- 혹시 같은 병 환자들을 만나본 적이 있는지, 그들의 상태는 어떠한지.
"오프라인에서 10대 아이를 만나봤습니다. 대화는 제가 청각장애로 인해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 중간단계라서 양호하긴 하지만 척추가 많이 휘었고, 겨드랑이 쪽에 자란 뼈 때문에 팔이 올라가지 않아서 식사를 스스로 못하는 상태였어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옆에서 먹여주면 되기 때문에."

- 지난해 서울대 어린이병원 최인호 조태준 교수팀이 진행성 FOP 발병 원인을 처음으로 밝혀냈는데, 이 소식을 듣고 느낀 기분은.
"FOP를 앓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희망이 없는 삶은 더 더욱 고달프니까요. 이번 기회에 희망이 심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진 못했지만 희망을 가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긴 해요."

지칠 대로 지쳐, 이제 마지막 발버둥...

- 이 병은 치료방법도 치료약도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도 막연한 병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요.
"잘 아시다시피 원인조차도 모르는 단계니까 저도 막연합니다. FOP는 치료할 수도 없고 방법도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질환들을 치료하고 싶습니다. FOP만으로도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다른 질환들 때문에 몇 수십 배의 고통이 있습니다. 육신의 자유를 빼앗기고 '뼈의 감옥' 안에서 지내야 하는데다가 청각을 잃었고, 나머지 건강마저 잃으니 삶이 너무 버겁고 괴롭고 힘드네요.

저, 이전에는 무너져 내려도 다시 서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수 없이 반복하고 이제는 모든 상황이 악화되어 지칠 대로 지치고 이제 남은 힘마저 잃어서 마지막 발버둥 치고 있어요. 끝내지 못하는 이 삶을 그냥 두어도 흐르기에 그럴 바에는 노력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남은 힘 다 긁어모아서 쏟고 있습니다. 살려고 발악하는 것이 맞다고 해야 할까요?

다른 질환을 치료하고 싶지만 여유가 없네요. 후원이 필요하지만 도움 청할 길이 없습니다. 한 가지 질병이라도 나아지면 제가 하루를 버티며 사는데 희망도 되고 삶이 조금은 덜 힘들어지겠지요. 하나의 고통이 줄어드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될 수 있으니까."

- 그 외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현재 저는 간호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간호해줄 사람이 없어서 자세를 바꾸지도 못하고 혼자 눕거나 일어나지를 못하기 때문에 하루 17시간 이상 장시간을 종일 앉아서 생활하는데 그게 고문입니다. 몸이 많이 아프거나 심한 통증이 밀려와도 혼자서는 누울 수 없기 때문에 아파도 쉬지 못합니다. 몸이 천근만근 나가고 땅에 붙을 것 같아도 어쩔 수 없이 모든 고통을 앉아서 감당해야 합니다.

한쪽 엉덩이로 의자 끝에 앉아 있다 보면 중심을 잡기 위해 휠체어 손잡이를 손으로 잡게 되는데, 그러면 손이 재발이 돼 뼈가 자랍니다. 그냥 자라기만 하는 게 아니고 뼈와 붙어버리고 통증까지 있죠. 그렇게 앉아 있으면 혈관이 눌려 피가 돌지 못해서 붓고, 머리까지 아프고 소화에도 지장이 생깁니다. 결국 전신 문제가 일어납니다.

또한 FOP 악화를 일으키는 외부 원인 제거가 필요합니다. FOP는 가구나 책상 같은 장애물에 부딪히거나 넘어지면 재발합니다. 미미한 충돌이라도 상황에 따라 악화됩니다. 예를 들어 딱딱한 물건을 장시간 만지거나 몸에 닿아 있으면 병이 진행됩니다.

진행성이라 점점 더 힘들어지는데… 손가락마저 다 굳어버리면 자판을 누를 수 없게 됩니다. 손이 심해지지 않게 하려면 휠체어도 가능한 만지지 말아야 하는데… 저는 아주 기본적인 것도 참아야 합니다. 어머니가 간간히 식사를 차려준다 해도 먹으면 화장실을 봐야 하니까요. 배가 고파도 참고 살아야 하지요. 화장실 때문에 물을 열흘씩 굶어가면서 한여름 갈증으로 목이 타고 속이 타들어가도요. 현재 처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이 없네요. 희망이 필요합니다."

덧붙이는 글 | FOP와 싸우는 샘물이와 사람들 카페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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