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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됐다가 2004년 5월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온 '안덕영씨 사건'을 경찰과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수사하는 과정에 일본 공안당국이 긴밀히 협조했음을 보여주는 비밀문서가 13일 <오마이뉴스 재팬>에 폭로됐다. '안덕영씨 사건'은 아직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지만 경찰과 기무사의 무리한 수사에 의한 '간첩조작' 의혹이 짙은 사건이다. 여기에 놀랍게도 일본 공안당국이 가담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프리랜서 노다 히로나리(野田敬生) 기자가 기고한 기사에 따르면 일본 공안당국은 한국 기무사 요원들이 일본에 건너가 안덕영씨를 미행하는 과정에서 차량과 인력을 지원했을 뿐 아니라 주변인물들에 대한 잘못된 정보도 제공, '간첩조작'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밀문서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한·일 양국에 큰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보이며, 외교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오마이뉴스>는 앞으로 한·일 공안당국간 불법 유착의 전모를 철저히 파헤쳐 나갈 것을 다짐하면서 우선 <오마이뉴스 재팬>에 실린 노다 기자의 기사를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주>
▲ '간첩 안덕영'에서 '시민 안덕영'으로 돌아왔지만 가정과 직장은 송두리째 파탄났다. 안씨는 국보법은 악법 중에 악법이라며 폐지를 촉구했다.
ⓒ 오마이뉴스 조호진
한 나라의 치안조직과 정보기관이 다른 나라에 건너가 직접 수사나 정보수집 활동을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해당국에 대한 주권침해 행위로 간주된다. 그렇지만 한국군과 경찰의 정보기관이 최근 일본에서 공공연히 수사와 정보수집활동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밀문서가 입수됐다.

문서에는 일본 경찰당국과 공안조사청이 이러한 활동에 협력해 한국 정보기관에 의한 근거 희박한 '간첩사건조작'에 관여했다는 의혹도 기록돼 있다. 사실이라면 타국 기관에 의한 주권침해 행위에 일본 공안기관이 협력한 것이 된다. 입수한 문서를 토대로 그 전모를 추적했다.

유출된 기밀문서

2002년 5월 한국에 있어서 '북한 스파이'라고 해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체포, 기소됐던 전 대학강사 안덕영씨.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2004년 5월 항소심에서는 무죄가 언도됐다.

심리 과정에서는 한국 정보당국의 조잡한 추측수사의 실태가 폭로돼 이 뉴스는 당시 KBS 등에서 크게 다뤄졌다. 한국 미디어들은 "국가보안법이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했다"고 보도했고, 한국 <오마이뉴스>도 2004년 9월 19일 안씨에 대해서 "국가보안법 피해자"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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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씨는 무죄판결을 받은 이후 치안정보 당국에 항의데모를 계속해왔다. 그러더니 올해 봄 한국 정보기관이 작성한 놀랄 만한 기밀문서가 유출된 것이다. 나는 어떤 루트를 통해 그 문서를 입수했다.

입수한 문서는 A4용지 30장에 달하는 한국어 자료다. 1장마다 'CONFIDENTIAL'이라는 기밀지정 도장이 찍혀있다. 제목은 '결정적인 범증 수집과 현지 채증을 위한 요원의 일본 출장 결과보고서'. 간단히 말하면 '간첩용의 대상자'로 찍힌 안씨가 2000년 6월에 일본을 방문했을 때 한국군의 정보기관인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와 한국 경찰청의 보안국에 소속된 요원들이 몰래 방일해 일본 국내에서 수사, 정보활동을 전개했던 상세한 기록이 담긴 문서이다.

문서에 따르면 수사가 행해진 것은 2000년 6월 21일부터 30일까지. 문서에는 '출장계획'과 '결과'의 내용이 담겨있고, 출국 전 안씨의 전화를 도청한 것으로 보이는 대화기록도 기재되어 있다. 또 일본을 방문한 기무사 요원들이 법무성의 외국(外局)인 공안조사청과 공안경찰(자료에서는 '일경'이라고 기술)에 협력을 요청해, 일본체류 중 안씨를 함께 미행, 감시했던 사실이 기재돼 있다. 한국의 치안정보기관이 일본 국내에서 공공연히 수사활동을 전개하고, 그것을 일본 공안기관이 '지원'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자료다.

안씨의 변호인을 맡은 김칠준 변호사를 서울에서 만나 사건의 배경과 유출자료의 내용에 대해서 물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다음과 같은 감상을 말하며 계속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가 가장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일본의 기관이 한국의 기관으로부터 요청을 받고, 단지 정보를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요청대로 실제 조사활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일본에 '주권'은 없는 건가요?"

'입증할 수 없는' 간첩사건

▲ 국군기무사령부와 한국 경찰청 보안국에 소속된 요원들이 몰래 방일해 일본 국내에서 수사, 정보활동을 전개했던 상세한 기록을 담긴 비밀문서.
ⓒ 오마이뉴스 재팬
1964년생인 안씨는 82년에 서울대 응용미술학과에 입학, 86년부터 88년까지 ROTC로서 학생중앙군사학교에 근무했던 엘리트이다. 동기생에는 한국의 군대, 치안정보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도 많다. 그 후 안씨는 한국의 화학 메이커에 취직해 디자인 일을 시작했지만, 90년부터 92년까지 도쿄의 국제외국어학원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계속해서 쓰쿠바대학 대학원의 예술연구과 석사과정에 들어가 94년에 수료했다. 귀국 후에는 대학강사를 했다.

그런 안씨가 체포된 것은 2002년. 어버이날인 5월 8일이었다. 그 날 안씨는 부인과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딸을 데리고 외식하러 나가 서울시내를 걸어가고 있던 중 돌연 에워싸여 수갑이 채워졌다.

말할 틈도 없이 차에 처박혀진 안씨가 연행된 곳은 서울시 홍제동에 있는 경찰청 보안국 대공분실. 20일간 심문을 받은 다음 서울구치소의 독방에 이송됐다. 구속기간은 합계 182일간. 가혹한 취조와 생각지 못한 누명을 쓴 정신적 쇼크로 인해 체중이 15kg 이상 빠졌다고 한다.

입수한 문서를 다시 읽어보면 안씨는 군의 방첩활동에 의해 94년 9월께부터 점 찍혔던 것 같다. 그 요인의 한 가지가 일본에 유학했을 때 '조선장학회'로부터 월 4만엔의 장학금을 받았던 점. 또 일본의 철도에 흥미를 가졌기 때문에 일본 각지를 정력적으로 여행해 체포 시에는 한일 양국의 왕복회수가 72회에 달했던 것도 의심을 증폭시킨 듯하다. 사진촬영이 취미인 안씨는 가는 곳마다 많은 사진을 찍었다. 한국군 내에 친구가 많기 때문인지 이는 간첩활동 같은 인상을 줬고, 이런 눈에 띄는 행동이 당국을 자극했을 것이다.

다만 안씨가 일본체제 중에 장학금을 받았던 '조선장학회'는 민단계, 총련계, 각 1인씩의 대표이사로 구성되고, 이사도 양 단체에서 선출되고 있다. 한국적, 조선적, 어느 쪽이라도 장학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안씨를 간첩이라고 단정한 것은 무리가 있다. 무엇보다도 안씨에 걸쳐진 '간첩 혐의'의 희박함은 재판 중에 검찰 측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1심 양형에 불복해서 검찰 측이 2002년 12월 14일 작성한 항소이유서에는 사건의 본질이 단적으로 적혀있다.

"(사건은) 피고인이 조선장학회 내에서 대남공작원 등에 포섭돼, 군사기밀을 탐지, 전달하고 현역 장교를 포섭하려다 적발된 간첩사건이지만, 단지 그 실태를 '입증할 수 없을' 뿐이다."

"(피고인이) 북에 도피할 것이 우려돼 빨리 검거했기 때문에 간첩 용의를 '입증할 수 없는' 것으로, 어쩔 수 없이 국가보안법 위반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으로 기소한 사건이다."


'북으로 도피'의 우려가 있다고 하면서도 간첩행위의 핵심은 '입증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검찰 측. 정보기관에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라는 체질이 있다. 앞서의 김 변호사는 "그야말로 블랙 코미디다"라며 분개했다. 이런 엉터리 수사의 일부가 일본 국내에서 공공연히 행해져, 일본의 경찰과 공안조사청이 거기에 협력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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