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간첩 안덕영'에서 '시민 안덕영'으로 돌아왔지만 가정과 직장은 송두리째 파탄났다. 안씨는 국보법은 악법 중에 악법이라며 폐지를 촉구했다.
ⓒ 오마이뉴스 조호진
간첩이란 누명 아래 삶이 파탄난 40대 전직 대학강사.

그는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간첩이란 누명을 벗었지만 돌아온 것은 이혼과 실직뿐이었다. 국가보안법이 무고한 한 시민의 인생을 어떻게 파탄시킬 수 있는지, 또 그 마수(魔手)의 손길은 독재정권을 넘어 지금까지도 뻗치고 있다고 그는 증언했다.

안덕영(41. 경기도 용인. 전직 대학강사)씨는 이날 탑골공원에서 진행된 국보법 철폐 범국민 대행진 마무리 집회에 참석해 그동안 간첩이란 올가미에 걸려 겪은 곡절을 증언했다. 안씨는 국보법이란 악법을 휘두르며 자신의 인생을 파괴시킨 대공 수사진에 대한 원성도 함께 털어놨다.

안씨는 "서울대 미대(82학번)에 다닐 당시 ROTC(학군 24기)였기 때문에 학생운동에 참여한 적이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다"며 "군대 제대 후 일본에서 6년간 공부하고 직장생활을 한 뒤 귀국해 대학에서 디자인 강사생활을 했다"고 소개했다.

안씨는 그러나 "지난 2002년 5월 8일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이 보는 앞에서 영문도 모른 채 국군기무사와 경찰보안수사대 요원들에게 수갑이 채워진 채 홍제동 대공분실로 끌려갔다"며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교육받았다, 거제도 해금강 일대를 촬영해 남파간첩을 침투하게 했다, 일본서 100만 엔(円)의 공작금을 받았다' 등의 자백을 요구받았다"고 말했다.

안씨는 "대공분실에 끌려갔을 때 6천여 페이지에 이르는 수사기록이 이미 작성돼 있었으며 대공수사진은 4년간 자신을 미행했다"고 전했다. 안씨는 "심지어 중학교 때부터 쓴 일기장 17권을 가져와 7일간 일기를 쓰지 않은 것에 대해 북한에 갔다왔기 때문이라며 방북 증거라고 우겼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안씨는 특히 "국보법이란 미명하에 잔혹한 짓들이 서슴없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한나라당은 2002년 이후 국보법 피해자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내가 바로 2002년 국보법 피해자다, 악법 중의 악법인 국보법은 꼭 폐지시켜야 한다"고 국보법 철폐를 촉구했다.

안씨는 2002년 5월 8일 국군기무사와 경찰 보안수사대에 의해 연행돼 국가보안법과 총포·도검류 단속에 관한 법 위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구속된 지 182일 만에 풀려났다.

각고 끝에 풀려났지만 그의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고 대학강사직마저 잃었다. 2년여 동안 재판에 매달린 끝에 지난 5월 13일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어렵게 '간첩'이란 누명을 벗었다. 그러나 2년만에 그의 인생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