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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시 작전통제권(전작권) 논란을 둘러싸고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들의 보도 행태를 보고 있으면 어안이 벙벙하다. 옳고 그름을 떠나 보수적 논리 자체를 일관되게 견지한다면 그리 탓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한 달도 안돼 제멋대로 논리를 바꾸는 것을 보면 이것이 자칭 1류 신문들의 행태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원하지 않았다 → 방위비 분담금 증액 문제?

▲ <조선일보>는 지난 28일 '럼즈펠드는 2009년에 전작권 가져가라는데'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전작권 환수로 인한 막대한 국방비 부담을 언급하면서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또한 국민의 부담"이라고 비판했다.
전작권 환수와 관련 보수언론들은 8월 중순까지만 해도 "미국이 전작권을 반환할 생각이 없는데도 좌파 정권이 밀어붙인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28일부터는 일제히 "전작권 환수로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 국민 부담이 엄청나게 늘게 됐다"는 논리를 펴기 시작했다.

돌이켜보자. 지난 6월 9일 노무현 대통령은 "5년 남짓한 세월 안에 전시 작전통제권을 스스로 행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 아무 반응도 없던 조중동은 지난 8월 2일 역대 국방장관 15명이 문제를 제기하자 갑자기 "전작권 환수로 한미동맹이 파탄나게 됐다"고 동조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 논리는 곧 무력화됐다.

지난 14일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가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를 만나 "한미동맹에 아무 문제가 없다"며 "이 문제가 정치화돼서는 안된다"고 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25일에는 지난 14일(현지시각) 조지 부시 대통령이 미 야전지휘관 회의에서 "한국이 전작권을 행사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데 공감한다"며 "전작권 이양과 관련 한국이 원하는 대로 최대한 지원해줘라"고 강조했음이 알려졌다.

부시 대통령은 또 "전작권이 환수되더라도 주한미군은 한국에 계속 주둔할 것이며, 주한미군사령관도 4성 장군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작권 환수로 한미동맹이 미-태국과 같은 수준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주장하던 보수언론은 머쓱해졌다.

보수언론은 아마 철석같이 믿었던 아군(미국)으로부터 오폭을 당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전작권 환수 반대 운동의 전면에 나섰던 전직 국방장관 상당수가 재임 시에는 되레 전작권을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음이 드러나 더 군색해졌다.

일부는 여전히 "한국 정부가 떼를 쓰니 미국이 불만 차원에서 전작권을 준다고 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누구의 눈에도 설득력은 없다. 이들 논리대로라면 한미동맹의 핵심 사안인 전작권을 감정적으로 처리하려고 하는 미 행정부의 태도부터 비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전에는 미국에 퍼주라고 안달하더니...

지난 17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윤광웅 한국 국방장관에게 보냈다는 서신이 27일 공개됐다. 2009년까지 전작권을 이양하겠다는 것이다. 역시 조중동이 대단히 실망했을 내용이다.

그럼에도 보수언론은 시쳇말로 '껀수'를 찾아냈다. 럼스펠드가 방위비의 공평한 분담을 말한 것을 트집잡았다. 지난해 6804억원으로 40% 수준인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최소한 50% 수준으로 끌어올려 달라고 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28일 '럼즈펠드는 2009년에 전작권 가져가라는데'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전작권 환수로 인한 막대한 국방비 부담을 언급하면서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또한 국민의 부담이다. 대통령의 '자주' 콧노래에 반주 비용을 대다가 국민의 허리가 휘다 못해 절단날 판"이라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28일 '미국에서 오기 시작한 '안보 청구서'라는 사설에서 "방위비를 동등하게 분담하자는 럼즈펠드의 요구에는 전작권 이양을 보는 미국의 '냉소'마저 엿보인다"며 이는 '한국이 전작권을 단독행사할 만큼 국력이 큰 나라가 됐다는데 그에 걸맞은 부담을 지는 건 당연한 것 아니냐'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동아일보>는 '작전권 환수 비용, 대통령은 얼마나 내놓을 건가'라는 사설에서 "노무현 정권이 내건 '자주'가 마침내 이런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며 "우려했던 자주의 대가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대북 억지력 확보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시기마저 앞당기게 됐으니 국민의 세금 부담은 더욱 늘어나게 됐다"고 비판했다.

출발부터 어긋난 논리

그러나 이들의 논리는 출발부터 잘못됐다. 주한미군은 전략적 유연성 개념에 의해 대북억지력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동북아 기동군으로 변모한다. 따라서 주한 미군의 한국 방위에 대한 기여도는 현저히 떨어지며, 오는 2008년까지 주한미군은 2만5000명으로 현재보다 3분 1이 줄어든다.

그동안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냈던 것은 주한미군이 대북억지력으로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주한미군의 기여도가 떨어지면 그만큼 방위비 분담금을 깎아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이런 상식을 무시하고 전작권 환수로 인한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기정사실화하는 보수언론의 논리는 "미국의 입장은 무조건 수용해야한다"는 전제가 아니고서는 설명 될 수 없다.

1년 전에는 방위비 분담금 감액을 비판하더니...

보수언론의 논리적 모순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2005년 4월 한미 사이에 방위비 분담금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한국은 그 전해보다 600억원 정도를 깎겠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원화 강세로 한국 돈으로는 줄지만 달러로는 오히려 증가한다는 비판까지 있었다. 그러나 보수언론은 노무현 정부가 방위비 분담금을 몇백억 깎기 위해 한미동맹을 깬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지난해 4월 1일 찰스 캠벨 주한 미8군 사령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주한미군에 근무중인 한국인 1000명 감축을 발표했다. 미군기지 한국인 직원 감축은 2008년까지 주한 미군 숫자가 3분의 1이 줄고 기지 통폐합이 예정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과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보수언론은 앞다퉈 "이는 방위비 감축에 대한 미군의 반발"이라고 기사를 썼다. 한 예로 <동아일보>는 지난해 4월 2일 '한미 분담금 충돌, 동맹의 파열음인가'라는 제목의 사설까지 썼다.

그동안 시민단체와 민주노동당 등은 줄곧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이 과도하다며 감액을 주장해왔다. 이런 주장에는 코방귀도 뀌지않던 보수언론, 더구나 불과 1년 5개월 전에는 '방위비 분담금 삭감=한미동맹 이상설'을 유포하던 보수언론이 이제와서 정반대의 말을 하는 것은 너무 심한 자가당착이다.

부시 행정부의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GPR) 계획(2001년)→용산기지 및 한강 이북의 미 2사단 오산·평택으로 이전 합의(2004년 9월)→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인정(2006년 1월 한미 외교장관 회담)은 모두 전작권 환수의 수순이었다.

그러나 보수언론은 강제집행에 저항하는 대추리 주민들과 시민단체를 "좌파들의 난동"이라고 비난했다. 노무현 정부가 지난해 초 동북아균형자론을 들고나와 형식상 전략적 유연성을 부인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을 때 조중동은 뭇매를 때렸다. 전작권 환수의 전제 작업이 착착 진행될 때 쌍수를 들고 환영했던 스스로의 모습을 먼저 가슴에 손을 얹고 되돌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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