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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9일 오전 핵실험을 강행한 뒤 열린 한나라당 긴급최고위원회의에서 김형오 원내대표와 정형근 최고위원이 무언가를 논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9일 국회 정보위 전체회의가 열린 국회 본관 6층 정보위 회의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열린 전체회의는 낮 12시 30분을 넘겨 끝났다.

회의를 마친 한나라당 정보위 간사인 정형근 의원과 공성진·박진·송영선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정원이 북한 핵실험의 시간과 장소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을 골자로 한 간단한 브리핑을 한 뒤에 점심식사를 위해 서둘러 중앙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안은 한나라당 소속 의원 4명과 보좌관 외에도 국정원 공보관 등 관계자들로 꽉 찼다. 일순 조용한 가운데 자타가 인정하는 정보 전문가인 정형근 의원의 억센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엘리베이터 안의 침묵'을 깼다.

"어이 공보관, 너희들은 와 이리 등신이꼬? 집(국정원 건물)만 번드르하게 지어 놓고선 '갑오시끼 등신'을 만드노?"

그러자 공성진 의원이 "정보위원들도 사퇴해야 하는 것은 아니죠"라고 거들었다. 이 말 속에는 '핵실험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국정원장은 사퇴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당황한 국정원 공보관은 아무 말도 못했다.

정형근 의원 "어이 공보관, 너희들은 와 이리 등신이꼬?"

'갑오시끼 등신'이란 '너나 나나 똑같이 등신'이 되었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즉, 국정원이 정보위에 북한 핵실험 관련 동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부실 보고를 하는 바람에 국정원의 부실한 정보를 믿고 언론에 공표한 정형근 의원 자신도 덩달아 '등신'이 되었다는 항변이다.

정형근 의원은 이날 오전 SBS라디오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북한은 이달이나 내달에 핵실험을 강행할 것이며 장소는 함경북도 길주군 만탑산이 틀림없다"면서 "한미 정보당국이 최근 20년간 주시한 결과, 만탑산이 가장 유력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일부 언론에서는 이날 "정형근 '북 핵실험 장소는 길주 만탑산' '시기는 내달 7일 전후 가능성 높아'"라는 제목으로 비중있게 보도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주장은 불과 한 시간여만에 '오보'로 판명되었다.

이와 같은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주장은 국정원의 '북한 핵실험 관련 동향' 보고에 따른 것이다.

김승규 국정원장은 이날 오전 10시30분께 국회 정보위에서 "현재까지 북한의 핵실험 징후가 없다"면서 "향후 핵실험을 한다면 길주군 풍계리 만탑산이 유력하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언자'는 한나라당측 간사인 정형근 의원이다.

정 의원은 이날 오전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하는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 소집에 따라 김승규 원장이 정보위 회의장을 떠난 뒤에 정회후 가진 약식 브리핑에서 이같이 밝히고 "이는 국정원이 핵실험 장소와 시기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갑오시끼 등신'이란 표현은 국정원에 '물먹은' 정형근 의원이 북한에 '물먹은' 국정원에 분풀이를 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불행중 다행', 미국 '레드 라인'은 넘지 않은 듯

지난 2003년 6월 9일 당시 이상배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노 대통령의 이번 방일 외교는 한국 외교사의 치욕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고, '등신외교'의 표상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난해 논란이 된 바 있다.

▲ 김승규 국정원장이 북한의 핵실험이 실시된 9일 오후 국회 정보위에 출석하기 위해 무거운 표정으로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은 당시 노 대통령이 현충일에 방일한 점과 방일 당일에 한반도 유사시 일본이 북한을 공격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된 유사법제가 통과된 점을 들어 "북핵 문제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원칙없는 대응이 유사법제 통과를 자초했다"면서 이를 '등신외교'라고 비판했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북핵 문제의 정점인 핵실험이 실시된 날이자 한·일 정상회담이 11개월 만에 열리는 날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오늘 저녁에는 한나라당이 '등신외교의 수장'으로 공격했던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 최종 선출될 예정이다.

한나라당의 '공식'에 따르면 10월 9일 오늘은 핵실험 정보에 실패한 국정원과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에 실패한 참여정부 그리고 '등신외교의 수장'이 '세계 외교무대의 주역'으로 등단한 '3등신'의 날인 셈이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인 것은 정보 전문가인 정형근 의원이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더라도) 미국이 선제공격이나 (핵실험) 사후 군사적 공격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북한이 (다른 나라에) 핵을 이전하면 군사공격을 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강조한 점이다.

그토록 우려했던 북한 핵실험이 실시되었지만, 아직 미국의 '레드 라인'(Red Line)을 넘어서지는 않았다는 것이 자타가 인정하는 정보 전문가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아직 희망은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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