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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 해도 설레는 여름휴가. 자동차 여행도 이젠 식상하지 않나요. 그렇다면 빠름 속에 놓친 느림의 풍경이 있는 자전거 여행은 어떨까요. 10주 연속기획 '자전거는 자전車다-자동차와의 아름다운 공존을 위하여' 다섯째 주에는 자전거와 함께 떠나는 여행을 제안합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호흡하는 섬진강과 강화도 기행, 대전 도심에서 즐기는 짧은 여행, 자전거 타고 떠나는 신혼여행까지…. 여기선 해안도로가 일품인 강화도 석모도를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 영화 <시월애>의 배경이 된 석모도.
ⓒ 싸이더스
우리나라에서 네번째로 큰 섬이며 고려시대 유적지가 많은 강화도. 강화대교와 초지대교로 육지와 연결돼 이제는 섬이라기보다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 사람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가까운 시골 전원마을쯤으로 인식되는 듯하다.

그래선지 섬의 분위기를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은 강화도를 지나 좀더 한적한 섬을 찾는다. 무의도, 볼음도, 석모도가 바로 그런 곳. 그 중에서도 보문사와 민머루 해수욕장이 있는 석모도가 교통이 편리하고 볼거리가 많아 인기다. 나도 대학시절부터 저녁노을이 보고 싶으면 혼자서 가끔 찾는 섬이다.

석모도를 찾을 때마다 말끔한 석모도 일주도로가 자전거 하이킹에 적당하다고 생각했고 언제 기회가 되면 자전거로 구석구석을 돌아봐야지, 하고 다짐했는데 결국 며칠 전 그 뜻을 이루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살고 있는 인천 부평부터 자전거로 가려 했으나 오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로는 석모도를 제대로 둘러보기에 부족할 듯했다. 그래서 강화 외포리 선착장까지는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어 다녀왔다.

자동차 주차하느라 배 놓쳐...

▲ 석모도. 오른쪽이 강화도다.
석모도행 배를 타는 곳인 외포리 선착장까지는 서울이나 인천에서 1시간 40분 거리. 지난 8월 3일 아침 10시 40분, 집을 나서 초지대교와 한적한 강화 외곽길을 따라 달리니 12시 20분쯤 외포리 선착장이다.

여름휴가철이라 그런지 사람이 북적인다. 자전거 운임까지 왕복요금 2800원(여객 1600원, 자전거 1200원)을 냈다. 가져간 차를 한적한 곳에 찾아 주차하느라 잠깐 늑장을 부렸더니 선착장 배 후미에서는 흰 포말이 인다. 벌써 배가 출발한 것이다.

조급증에 얼마나 기다려야 하느냐며 매표소에 물어보니 바로 온단다. 혹시나 또 놓칠까 걱정되어 아예 맨 앞에 자리를 잡는다. 막 출발한 배 옆으로 석모도에서 오는 듯한 배가 선착장에 머리를 들이민다. 사람들이 다 내린 듯하여 자전거를 이동시키려 하니 승용차가 쏟아져 나온다. 사람들이 대부분 자가용으로 석모도를 찾았는지 그 끝이 보이질 않는다.

한참을 기다려 제일 먼저 배에 오른다. 내릴 때를 위해 자전거를 뱃머리에 주차시키고 2층 객실로 올라가니 완전히 찜통이라 푹푹 찐다. 바닷바람을 쐬러 객실에서 나오니 시끌벅적하다. 사람들이 갈매기들의 새우깡 낚아채기 묘기에 탄성을 질렀다.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던져주며 카메라와 핸드폰을 들이댔다.

새우깡 쇼를 구경하는 사이에 벌써 석모도에 도착한 듯 뱃머리의 철문이 내려지고 있었다. 선착장에는 돌아갈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긴 줄이 보인다. 뱃길에서 느껴지는 울렁이는 설렘도 잠시, 벌써 석모도다.

햇볕에 달궈진 자전거, 엉덩이가 데일 듯

▲ 석모도에 가면 연인들끼리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 장정구
햇볕에 달궈진 자전거는 너무 뜨거워 엉덩이가 데일 것 같다. 엉덩이를 식히고 갈증도 풀 겸해서 정류장 옆 슈퍼를 찾았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꺼내들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인아주머니에게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는지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이며 친절하게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자전거대여, 배달 가능'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이미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은지 전화번호가 여러 개다. 전화로 물어보니 자전거를 빌리는 데 3시간에 5000원, 하루종일 이용하는 데 8000원이란다.

뜨거운 날씨.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준비한 얼음물이 벌써 바닥을 보인다. 핸드폰 시계를 보니 오후 1시. 슈퍼아주머니에게 사정하여 물통에 물을 채우고 본격적인 자전거 라이딩을 시작했다. 석포 부두 선착장을 벗어나니 이내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은 석모리 가는 길이고 왼쪽은 보문사 가는 길.

어차피 섬을 한 바퀴 돌기로 하였으니 어느 쪽에서 시작하든 어떠랴. 일단 석모도 남측에 있는 삼량염전과 민머루 해수욕장으로 길을 잡았다. 해명산을 오른편에 끼고 '잔차질'(자전거 타기)을 시작한 지 채 5분이 지났을까. 평탄한 길이 끝나고 고갯길이다. 석모도에서 제일 넘기 힘들다는 전득이 고개. 워밍업이 되기도 전에 나타난 고개라 힘에 부쳤다.

결국 자전거를 길옆에 세우고 손수건과 물통을 꺼내들었다. 가방을 멘 등은 쏟아지는 땀에 흠뻑 젖어버린 지 오래고, 목덜미에도 땀줄기가 폭포수처럼 굴러 내렸다. 이미 손수건으로는 어쩔 수 없는 지경이다. 결국 길가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를 따라 본능적으로 계곡물을 찾았다.

모자와 웃옷을 벗고 세수하니 조금 낫다. 다시 길로 나와 바다 건너 저만큼 보이는 강화도 진강산과 마니산을 바라보며 자전거에 올랐다. 겨우 젖 먹던 힘을 다해 풀려버린 다리를 움직였다. 5분 정도 지나 혹시 하는 마음에 고개를 드니 전득이 고개 정상이 보였다. 너무 기뻐 고갯마루의 시원한 바람도 무시한 채 그냥 내리 달린다.

유명했던 천일염전,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 초록으로 덮힌 논과 골프장. 한 달쯤 전인가 인천시와 강화군이 석모도 염전부지 23만5000평에 18홀 규모의 골프장과 객실 52실을 갖춘 콘도건립을 추진한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 장정구
시속 58km다. 3초나 지났을까? 탁 트인 시야에 초록색 논이 들어왔다. 속도가 줄어드는가 싶더니 갈림길, 민머루 해수욕장 이정표를 따라 길에 접어들었다.

잠시 휴식을 위해 길옆으로 늘어선, 그러나 쓰러져가는 폐염전 건물로 목을 축이기 위해 들어서자 기계음이 들려왔다. 쉴 새 없이 오가는 트랙터 2대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에서 몇 남지 않은, 전국적으로 유명하여 항상 물량이 달렸다는 곳.

햇볕에 바닷물을 증발시켜 얻는다는 소금밭, 천일염전을 갈아엎고 있는 것이다. 한 달쯤 전인가 신문에서 인천시와 강화군이 석모도 염전부지에 골프장과 콘도건립사업을 추진한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낡은 건물 처마에 태양이 걸릴 무렵, 자전거를 즐기던 연인이 찾아들었다. 보문사에서 시작하여 해수욕장에 다녀오는 길이란다. 서울에서 왔다는 그들은 지척이라며 해수욕장 쪽을 바라봤다. 논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니 또다시 삼거리다. 이정표를 따라서 길을 잡고 나아가니 듬성듬성 있는 민박집에 온통 휴가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오후 2시, 드디어 민머루 해수욕장이다. 너무 더워서 일단 그늘을 찾아 앉아보지만 여간해서는 시원해지질 않았다. 이쯤 되면 둘 다 짠물이니 바닷물과 땀이 별다르지 않음이 느껴진다.

민머루 해수욕장은 동해안 해수욕장처럼 모래찜질을 즐기는 곳이 아니라 갯벌이 발달하여 갯벌체험이 더 어울리는 곳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장화를 신고 손에는 호미 들고 조개와 게를 잡기 위해 완전중무장이다.

땀으로 해수욕을 대신하고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보문사로 향했다. 장구 너머 포구를 지나 석모도 서쪽 해안길을 따라 자전거로 20여분을 가니 보문사 입구가 나왔다. 버스정류장 옆, 음식점을 찾아 도토리묵에 시원한 얼음의 강화인삼동동주로 허기를 채웠다.

▲ 민머루 해수욕장
ⓒ 장정구
보문사 눈썹바위 마애관음보살상은 민머루 해수욕장과 더불어 석모도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다. 주인아주머니는 보문사가 남해 보리암, 낙산사 홍련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도량으로 신라 선덕여왕 4년(635)에 금강산에서 내려온 회정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라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스러질 듯 스러지지 않는 석양이 더욱 일품이란다.

오후 4시, 자전거와 가방을 음식점에 맡기고 카메라만 들고 나선다. 진입로가 흙투성이로 아직 마무리작업이 끝나지 않았음을 짐작케 하는 와불을 둘러보고 극락보전 옆으로 나있는 계단을 올랐다. 올 때마다 중간에 잊어버렸지만 오늘만은 정확하게 계단 수를 헤아려보리라.

마애관음보살상... 상경한 그때를 떠올리다

▲ 영화 <시월애>에 나온 호수 위의 집 '일마레'.
ⓒ 싸이더스
400계단 만에 눈썹바위 아래 마애관음보살상 앞에 이르렀다. 이미 자리 잡고 불공에 열심인 가족이 있어 멀찌감치 물러나, 눈감고 15년 전 함께 이곳을 찾았던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려봤다.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찾아 느꼈던 섬 여행의 그 느낌으로….

오후 5시, 석모도 최고의 장관이라는 보문사 해넘이를 다음으로 기약하고 석모도 북쪽으로 길을 잡았다. 한가라지 고개, 이미 한차례 겪었던 탓인지 이번에는 비교적 쉽게 넘었다. 고개를 넘어 삼거리에 이르니 들판이 넓게 펼쳐졌다.

오른쪽으로 가면 삼산면사무소가 있는 석모리고, 왼쪽은 이정재, 전지현 주연의 영화 <시월애>의 무대였던 삼산면 하리로 가는 길이다. 밀물에 잠긴 석양 '일마레'의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지금은 태풍에 없어져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지만 영화 <시월애>에서 느껴지던 분위기는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아직 묻어 있는 듯하다. 석모리~하리~석포리로 이어지는 널찍하고 한적한 도로는 석모도에서도 자전거 하이킹 코스로 제일인 곳이다.

특히 석모도 3개의 산 중에 가장 북쪽에 있는 상주산과 이웃 섬인 교동도의 화개산과 봉황산을 바라보며 즐기는 이곳 가을 들녘의 자전거 여행. 올가을이 기대된다.

어느덧 6시. 등 뒤로 지는 해가 못내 아쉽지만 길게 늘어선 그림자가 서둘러 돌아오는 길을 찾는다. 손에 잡힐 듯 보이는 강화도 국수산이 석포리 선착장이 가까웠음을 알리고 야트막한 고개는 아직 석모도에서 보여주지 못한 곳이 많다며 나그네의 귀갓길을 막고 나섰다.

6시간이 걸린 26km 석모도 자전거 여행길, 4개의 크고 작은 고개를 넘었지만 과거 기억의 단상과 아쉬움이 가득하여 뱃머리를 물들이는 석양에 가을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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