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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버 마초라고 통칭되는 남성 집단들의 사이버 폭력을 사회문제로 대두시켰던 부산대 여성주의 웹진 ‘월장’. 2001년 ‘월장’은 대학 내 예비역 문화가 지닌 폭력성을 다룬 특집을 진행했다가 수많은 남성 네티즌들로부터 사이버 폭력을 당했다. 이화여대(작은 사진)도 사이버 마초들의 주 공격 대상이다.
ⓒ 우먼타임스
[채혜원 기자] "나는 반대한다!"

디지털시대가 도래하기 전 자유로운 사회적 의사소통 통로나 수단이 막혀 있을 때 안티문화는 시작됐다.

지금은 포털사이트에 '안티'란 검색어를 치면 관련 커뮤니티만 1만 개가 넘을 정도로 인터넷은 안티문화의 온상지가 돼버렸다. 사이버 공간에서 보장되는 익명성과 정보성은 '안티' 물결을 하나의 문화현상으로까지 만들고 있다.

이 가운데 떠오른 신인류가 바로 '사이버 마초' 집단이다. 폭언, 욕설, 여성 혐오적인 인신공격을 일삼는 사이버 마초들은 반(反)여성주의적인 사이버 테러와 해킹, 사이버 성폭력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이들이 자행한 사이버 성폭력은 2001년 이른바 '월장 사태'를 시작으로 해마다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난 2001년 부산대 여성주의 웹진 '월장' 사태는 대표적인 사례다. '월장'은 음담패설과 여자 후배에게 술 강제로 따르게 하기 등 대학 내 예비역 문화가 지닌 폭력성을 돌아보는 기획, '도마 위의 예비역' 특집을 진행했다가 수많은 남성 네티즌들로부터 집단 린치에 가까운 공격을 받았다. 마초 사이버군단은 당시 '월장' 운영자들의 신상정보를 음란 사이트에 올려 운영진들이 수십 차례 폰팅과 협박전화에 시달리게 하는 폭력까지 자행했다.

2002년 벌어진 이화여대 총학생회에 대한 사이버 테러도 마찬가지다. 1999년에도 '군가산점 폐지와 관련한 헌법재판소 청원'과 관련해 사이버 테러를 당한 적이 있는 이대 총학생회는 당시 '양심적 병역거부 지지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가 '제2의 월장 사태'를 맞는다. 당시 사이버 마초 세력들은 총학생회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이화여대와 관련된 모든 커뮤니티를 공격했다.

여성가족부 자유게시판도 마초들의 공격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게시판은 2000년 헌법재판소의 군가산점 위헌 판결 이후 마초들의 집결지가 됐고 여성 관련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성적 모독에 가까운 여성에 대한 폭력 글이 올라오고 있다. 지난해 밀양 집단 성폭력 사건 때도 비난의 화살이 여성부로 몰려 홈페이지가 다운되기도 했다.

사이버 마초들은 '극렬페미들의갱생을위한시민들의 모임(cafe.dau m.net/babofemiboonja)', '남성해방카페(cafe.daum.net/menfree)' 등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집단으로 공격할 대상을 상의하면서 사이버 폭력을 저지르고 있다.

이들의 폭력은 사이버 공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 폭력행위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들이 주도하는 여론은 현실 정치에 반영되기도 한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와 미학자 진중권씨 등 8인의 글을 엮은 책 <페니스 파시즘>(개마고원)에서는 "군가산점제 위헌 판결 이후 사이버 공간에서 쏟아져 나온 마초 사이버 세력들의 욕설과 분노를 언론들은 여론의 성감대처럼 보도했고 정치권에서도 이들을 달래기 위해 '국가봉사경력가점제'를 제안하게 만드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분석했다.

디지털시대가 도래하면서 사이버 성폭력이 이제 일상적으로 자행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임재련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장은 "최근에는 개인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서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언어폭력, 스토킹 등의 방법으로 공격하는 새로운 사이버 성폭력이 증가하고 있다"며 "지금은 여성단체들이 자유게시판을 축소 운영할 정도로 사이버 테러 세력들로 인한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누리꾼들이 남성가면 쓰는 까닭은?"

▲ 김유식 디시인사이드 대표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이하 디시) 내에 있는 3백여 개의 갤러리 중 스타크래프트 갤러리는 게시물이 폭주하는 곳으로 악플(악성 댓글)도 가장 많다. 잠시라도 관리자가 자리를 비우면 등록 게시물이 8천 건까지 쌓이는 등 관리가 어려워 디시 측에서도 검열제를 도입할 정도다.

이 갤러리의 문제점은 팬들이 상대 선수를 비난, 비하하는 글을 많이 올린다는 것이다. 프로 게이머들과 경기 중계진들이 '정신건강'을 위해 갤러리를 찾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몇 달 전에는 한 해설자의 딸을 거론하며 해치겠다는 리플까지 올라와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이 갤러리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 남성일 것 같은 이곳 이용자 중 의외로 여성들이 많다는 것이다. 웹사이트 조사전문기관 인터넷 매트릭스에 따르면 디시 이용자의 40%는 여성이다. 실제 3년 전에 있었던 갤러리 번개모임에도 대부분 10대와 20대 여성들이 주를 이뤘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여성'임을 밝히지 않는다. 왜 이들은 왜 남성 행세를 하는 것일까.

필자가 보기엔 여자라고 밝히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 밝히는 것이다. 예쁜 여성이 사진을 올리면 "xxx 할 짓이 없냐?" "그렇게 생긴 거 자랑하고 싶냐?"는 욕설이 쏟아지고, 비교적(?) 못생긴 여성이 사진을 올리면 "못생긴 게 까분다" "공부나 해라"는 등의 악플이 줄을 잇는다.

이는 비단 디시 내에서의 일만은 아니다. 포털사이트 등 다른 커뮤니티에서도 이용자들 끼리 논쟁을 하는 중에 한쪽이 여성임이 밝혀지면 엄청난 뭇매를 맞는다. 논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여자가 뭘 아느냐" "여자니까 저런다"는 비하 내용으로 채워진다. 다른 대학 게시판은 멀쩡한데 여대 관련 게시판은 악성 게시물이 넘쳐 관리가 힘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터넷에서 여성 이용자가 성을 밝히고 활동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디시와 같은 비회원제 익명 사이트에서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다 보니 많은 여성 이용자들이 남자 행세를 하게 되고, 가장한 남성성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 진짜 남성 이용자들이 쓰는 게시물보다 더욱 강도 높은 표현들을 사용한다.

인터넷 인구는 남성이나 여성이나 큰 차이가 없다. 특히 30대 이하 세대는 거의 대부분이 네티즌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이 반반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디시 내에서는 여성으로 보이는 이용자의 게시물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여성임을 나타내면 욕을 먹고 악플이 달리며 정신적인 피해를 보는 것이 인터넷 환경인 것이다.

막상 실제로 대면하면 친절하게 구는 남성들도 인터넷에서는 여대생이라고, 국방의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얼굴이 못생겼거나 몸매가 뚱뚱하다는 외모지상주의를 내세우며 여성 이용자들을 차별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갖은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오래 전부터 인터넷의 자정 작용을 부르짖어왔던 필자로서도 최근에는 잘못된 판단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생긴다. 오프라인에서는 양성 평등을 외치지만, 익명이 보장되는 인터넷에서는 뿌리 깊은 남존여비 사상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 김유식 디시인사이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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