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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르뎅(이상직)의 엽기적 귀족수업에 배를 잡고 웃다가 심지어 바닥에 얼굴을 대면서 비웃는 하녀 니꼴(계미경)
ⓒ 김기
누구나 미칠 때에는 동기가 있다. 그 동기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면 결과는 상식을 뛰어넘게 된다. 주르뎅은 돈과 여자에 미친다. 신분사회였던 17세기 프랑스. 작가 몰리에르의 눈에 비친 귀족사회의 허구를 날카롭게 해부하고 풍자한 프랑스 연극의 고전 <귀족수업>이 국립극단에 의해 <귀족놀이>로 시대와 국가를 달리 해 한국의 ‘양반놀이’로 탈바꿈하였다.

국립극단(예술감독 오태석)이 한불수교 120주년을 기념하여 무대에 올리는 이 작품은 원래 루이 14세 시절 터키 대사로 대접받던 사람이 실제로는 보잘 것 없는 정원사임이 밝혀지는 사건이 터지면서 이를 기회로 터키인들을 놀려보자는 루이 14세의 명으로 몰리에르가 1670년에 쓰고 직접 ‘주르댕’ 역을 맡아 날카로운 풍자와 탁월한 위트로 대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이를 최준호의 번역, 각색과 프랑스 브르타뉴 국립연극센터 소장이자 로리앙 극장 극장장이며 코미디 프랑세즈 고정레퍼토리 연출가인 에릭 비니에(Eric Vigner)의 연출로 6월 3일(토)부터 11일(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 올린다.

▲ 엉터리 춤선생으로부터 춤을 배우는 주르뎅. 원작에서는 발레였지만 한국 귀족놀이에서는 한국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안무 국립무용단 윤성철
ⓒ 김기
에릭 비니에의 이번 한국 방문은 총 5번째로서 프랑스에서 제작해 온 무대와 의상 디자인을 윤시중(무대디자인), 송은주(의상디자인)와 같은 한국의 유명 디자이너들이 다시 한 번 한국색깔을 가미해 새롭게 선보이고, 작품의 배경이 되는 바로크 음악은 한국의 박위철, 조원행의 편곡으로 한국 정서에 맞는 음악으로 재탄생,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로 실연된다.

또한 국립무용단의 단원들이 프레데릭 롱바르와 윤성철의 안무로 새롭게 한국 춤을 선보이고, 국립오페라단 단원도 여기에 가세하여 바로크 음악을 국악으로 편곡한 독특한 형태의 노래를 선보이며 기존의 연극과 다른 형태의 ‘퓨전 코미디극’을 선보인다. 한마디로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빼놓고는 달리 프랑스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은 찾아볼 수가 없다.

▲ 철학선생에게서 아에이오우 발성을 배우는 주르뎅. 철학선생역에 이영호
ⓒ 김기
막이 오르면 주인공 주르뎅은 음악교사, 무용교사들로부터 귀족이 되기 위한, 아니 귀족다운 소양을 기르기 위해 거액과외를 받는다. 코미디인 만큼 그 금액은 엄청나기 마련이고, 그 수업은 허위에 가득 찬 엉망진창의 수업인 것은 당연하다. 거기에 검술과외, 철학과외는 그 허구를 더 한층 객석에 전달해준다.

이토록 거부 주르뎅이 귀족수업을 받는 까닭은 후작부인 때문이다. 돈이 있으니 이제 명예를 위해서라도 주르뎅에게는 귀족부인과의 관계가 절실하게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를 위해 실제 그 후작부인과 내연관계인 또 다른 귀족에게 무한대의 돈을 빌려준다. 물론 그것은 주르뎅이 아닌 그 남자의 생색내기에 사용될 뿐이다.

<귀족놀이>의 어처구니없는 코미디의 절정은 주르뎅의 딸 뤼실과 결혼을 원하는 평민청년 클레옹트를 단지 귀족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거절하면서 시작된다. 이 청년은 주르뎅을 속이기 위해 터키 왕자로 변장해서 결국 결혼에 성공한다. 가짜 왕자는 주르뎅에게 가짜 작위도 준다. 터키어를 모르는 주르뎅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아내에게 큰 소리로 부르짖는 대목에서는 냉혈한이라도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가짜 왕자가 주르뎅에게 준 작위는 ‘젖이나더무슈’이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은 ‘똥걸레더문데’이다. 외국어는 실제 의미와는 달리 어감만으로도 충분히 웃음을 줄 수 있다. 몰리에르의 원작에서는 이 대목이 어떻게 묘사되었을 지 궁금하지만, 적어도 ‘젖이나더무슈’보다는 강하지 못할 듯싶다.

▲ 투우놀이냐구요? 아니면 19금의 장면? 아닙니다. 무용선생에게 잘못배운 귀족식 인사법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후작부인에게 예의를 표하는 장면입니다. 정말 'ㅋㅋ'하고 웃을 장면임에 분명합니다. 후작부인 역에 미스춘향 출신 곽명화.
ⓒ 김기
주르뎅 역을 맡고 있는 국립극단의 이상직은 몰리에르의 원작을 전형적인 슬렙스틱으로 보는 일반의 인식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대한 다면적 분석으로 다가서는 연출가 에릭에 대해 “보이는 것과 달리 연출가는 내게 ‘여러 겹’의 표현을 요구한다. 여러 인격과 여러 가지 감정, 욕구를 동시에 표현해내길 바란다. 그것을 위해 눈빛 하나, 손가락에 주는 힘까지도 세세히 계산할 정도로 미세한 처리를 하고자 노력했다”고 했다.

<귀족놀이>는 주르뎅이 전부나 다름없다. 물론 엉터리 괴외선생, 귀족 사기꾼, 가짜 왕자 등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주르뎅의 내면의 욕망과 허위를 드러내기 위한 계단의 장치역할을 할 뿐이다.

많은 성격들이 등장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가 볼 것은 주르뎅 하나의 인간에 배인 헛된 욕망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과장된 웃음이면 충분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르뎅의 호흡은 대단히 중요하다. 전체적인 템포를 조절하고, 상대 역할의 해학적 요소도 결국 주르뎅에 반사되었을 때 비로소 웃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직은 주르뎅을 맡아 하기에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다. 지금까지의 묘사에 의하면 주르뎅 역할은 뚱뚱하고 거만하고 멍청한 사람일 것 같지만, 이상직이 열연한 주르뎅은 한편으로는 천진난만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귀족수업은 연민을 슬그머니 객석에 흘리기도 한다. 연출가가 그런 이유로 이상직에게 ‘여러 겹’의 표현을 요구했을 것이다.

▲ 주르뎅의 딸과 결혼하기 위해 가짜왕자로 변신한 청년이 주르뎅에게 작위를 주는 장면.
ⓒ 김기
전체적으로 코미디이기 때문에 진행이 빠르고 재미있다. 그러다 앞서 말한 ‘젖이나더무슈’ 대목에서는 실컷 웃어볼 수 있다. 국립무용단, 국립관현악단, 국립오페라단이 협력한 무용, 음악, 노래는 프랑스의 코미디 발레를 퓨전 해학극으로 바꾸는데 유효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주르뎅과 일부 출연자가 입은 옷이 한국복식이 아니라 일본 것에 더 가까운 것이어서 아쉬움을 남겼다. 의상들이 프랑스 디자이너가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디자이너들도 가세했다면 그런 점들은 수정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또 하나는 불과 2년 전 작업한 조명 디자인 데이터가 남아있지 않아 연출가는 과거의 비디오를 보면서 눈 감고 코끼리 더듬는 식으로 조명을 맞춰야 했다고 토로했다. 국립극단 정도 되면 세계명작 시리즈로 제작되는 주요 작품에 대한 제작 데이터를 철저하게 보관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일  시 : 2006년 6월 3일(토)~11일(일)  
          평일 오후 7:30, 토 오후 4시, 7:30, 공휴일, 일 오후 4시
◈ 장  소 :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 주  최 : 국립극장, 주한 프랑스대사관, 프랑스 로리앙 국립연극센터
◈ 관람료 : 3만원, 2만원, 1만5천원  ♥사랑티켓 참가작
◈ 예매 및 문의 : 02-2280-4115~6 (국립극장 고객지원센터)
                  1588-7890(티켓링크), 1544-1555(티켓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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