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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오후 미군기지 확장예정지인 경기도 평택 대추리 들판에서 군헬기가 철조망을 투하한 뒤 이륙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정부가 강경대응 기조를 잡았다.

법원이 '평택 시위자' 37명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 가운데 27명의 영장을 기각했지만 검찰은 또다시 2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지난 5일 군이 설치한 철조망을 뚫고 들어가 시위를 벌인 혐의다. 윤광웅 국방장관도 군사시설 보호구역을 훼손하거나 폭력행위를 할 경우 군 형법에 의거해 처벌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강경대응 기조를 잡은 이유는 두 가지다. 외부세력이 행정대집행을 빌미로 반미 시위를 선동하고 있다는 판단, 그리고 이런 행위가 공권력에 대한 정면도전이라는 판단이다.

조·중·동 보도의 경우

▲ <동아일보> 8일자 사설. '평택 미군기지 확정저지 범국민대책위'에 대해 "친김정일 세력임이 분명해졌다"고 주장했다.
ⓒ <동아일보> PDF
▲ <조선일보>의 8일자 사설. "평택 반미축제"가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었다고 주장했다.
ⓒ <조선일보> PDF
일부 언론의 판단도 다르지 않다.

▲ <중앙일보> 8일자 1면 기사. 구속영장을 청구한 60명 중 "주민은 한 명도 없다"는 내용을 제목으로 뽑았다.
ⓒ <중앙일보> PDF
<동아일보>는 '평택 미군기지 확정저지 범국민대책위'에 대해 "국가 안보와 경제 및 외교의 국익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군 철수'를 꾀하는 친김정일 세력임이 분명해졌다"고 규정한 뒤 "군과 검경은 지금 '국기 수호'의 시험대에 서 있다"고 했다.

<중앙일보>도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60명 중 "주민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1면에 끌어올리고 "이번 사건은 외부세력에 의해 이뤄졌다"는 대검 이귀남 공안부장의 말을 전했다. <조선일보> 역시 "평택 반미축제"가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었다며 "이런 범죄조차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선 나라가 설 수 없다"고 했다.

정부와 일부 언론의 주장엔 튼튼한 받침대가 있다. "미군기지 이전은 정부가 미국과 합의하고 국회가 비준한 국가사업"이라는 사실이다. 이 사실에 평택 미군기지 이전부지 주민 80% 이상이 협의매수에 응했다는 사실까지 더해지면 형식상 완결된 형태를 띤다. 따라서 '평택 시위'는 국가의 공적 시스템에 의해 결정된 국가사업, 더 나아가 국익과 국기가 걸린 사업을 훼손하려는 불순한 시위가 된다.

그럼 이건 어떨까? <국민일보>의 보도다.

주한미군이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에 넘겨주더라도 유엔군사령부의 기능을 강화해 한반도내 작전권을 확보할 방침임을 전한 <국민일보>는 "주한미군은 전 세계 미군 재배치계획이 완료되면… 한반도 지역 외 군사활동에도 참여하는 전략적 유연성도 제고시키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주한미군의 동북아 분쟁 개입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는 보도다.

<국민일보>의 보도와 평택에서 반미를 선동하는 '친김정일 세력'의 주장을 비교하자.

범대위의 주장은 '미군기지 확장 반대'다. 평택을 주한미군의 본영으로 만들면 한반도 전쟁 가능성이 높아지고 동북아 분쟁 개입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평택항과 인근 오산 비행장을 이용해 '광역 기동군'이 되는 주한미군의 신속한 이동을 가능케 한다는 주장이다.

<국민일보>의 보도는 범대위의 이런 주장이 적잖은 설득력과 현실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국익과 국기 이전에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일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그런데도 정부와 일부 언론은 '반미 선동'을 문제 삼는다. 백번 양보해 범대위의 행위가 반미 선동이라 하더라도 반미의 성격과 심각성을 한번쯤 재도 되련만, '반미=악'이라는 등식을 비타협적으로 들이대고 있다. 생존권 문제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반미는 용납 못한다는 주장도 적절히 곁들이면서 말이다.

반미는 무조건 악이라는 비타협적 주장

자의적으로 터부를 설정하고, 그에 도전하는 행위를 맹렬하게 공격하는 행위는 불가피하게 부작용을 낳는다. 또다른 일부 언론이 우려하는 '참여정부 최대의 공안사건' 비화 가능성이 그 하나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한 문제가 있다. 한·미 FTA가 제2의 '평택 사태'를 낳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막말로 평택 팽성읍 주민들은 정부와의 협상 여하에 따라 다른 곳에서 농사를 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미래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

미국은 쌀 시장 전면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쇠고기도 마찬가지다. 팽성읍 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해 쌀농사를 짓고 소를 길러도 축출되기는 마찬가지다. 이번엔 정든 고향에서 밀려나지만 다음은 시장에서 퇴출된다. 더구나 퇴출 대상이 되는 이들이 팽성읍 농민들로 국한되는 게 아니다.

그뿐인가. 미국은 우리 정부의 약값 합리화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미국 다국적 제약사들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제약사의 이익을 위해 한국민의 건강권을 담보로 내놓으라는 요구다.

가만 있을 리 없다. 각 계층이 자기가 선 곳에서 한·미 FTA 반대를 외칠 것이고, 반발은 자연스레 '원인 제공자'에 대한 비판과 거부로 모아질 것이다. 정부와 일부 언론이 설정한 터부, 즉 반미를 다시 건드리는 결과를 빚게 된다.

이 때는 어쩔 것인가? 군사문제가 아니라 생존문제이기에 '국기'를 수호하고 '친김정일 세력'을 비난하기는 쉽지 않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정부와 일부 언론은 '국익'을 내세운다. GDP와 같은 경제지표, %앞에 숫자를 붙여 한국경제의 성장비전을 제시한다. 하지만 체감지수가 떨어질 뿐 아니라 선뜻 동의할 수도 없다. '국익론'의 소외지대, 아니 희생지대에 내몰릴 사람들에게 '국익론'은 국가의 폭력 논리로 밖에는 인식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국론을 모으는 과정이 중요하련만 그렇지도 않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에 건너가 한·미 FTA 협상 개시를 선언하고 있을 때 서울에서는 정부 주최로 관련 공청회를 열고 있었다.

한·미 FTA 협상이 필요한지를 따지는 공론화 과정을 밟지도 않고 협상 개시를 선언하면서 뒷탈이 염려돼 요식절차로 공청회를 여는 정부 처사가 문제다.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미국의 4대 선결조건을 다 들어주는 '비협상적' 협상 태도가 문제다.

이렇게 일방통행식으로 일을 저질러놓고 국회에 비준을 요구하고, 그렇게 손에 든 비준장을 내세워 "국가사업"임을 강조한다고 해서 그 절차의 권위에 승복할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날림 국가사업에 반발하는 행위를 공권력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강경 대응한다고 해서 반성할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한·미 FTA, 더 큰 것이 온다

<경향신문>은 '평택 사태'의 원인을 이렇게 진단했다.

"2004년 7월 한국과 미국이 용산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키로 합의한 지 2년이 다 돼 가도록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주민 설득에 실패"한 결과 '평택 사태'가 발생했다는 <경향신문>의 진단은 '부안사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뿐이 아니다. 한·미 FTA로 촉발될지 모를 '제3의 사태'를 낳는 원인이 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반미 선동'과 '공권력에 대한 도전'을 문제삼기 이전에 더 중한 문제, 정부의 안이하고 무능한 대처를 먼저 되돌아봐야 한다. 그것도 아주 시급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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