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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자격 시험문제> 겉표지.
ⓒ 옹기장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부터 지겹도록 시험을 쳤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고등학교 입학시험, 대학교 입학시험, 다시 대학교에 들어가서 각종 시험, 자격증 시험…. 심지어 군대 갈 때도 두 번이나 시험을 쳤다. 한 번은 장교시험 쳤다가 떨어졌고, 또 한 번은 자원입대하는 곳에 들어갈 때 시험을 쳤다(그 때 떨어졌다면 정말 부끄러웠을 것이다).

사회에 나오면 다시는 시험 안 본다 생각했다. 그래서 온갖 자격증 시험이니 하는데 눈도 안 돌렸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떡'하니 시험과 맞닥뜨리게 됐다. 한효석의 책 <나는 몇 점짜리 부모일까? 부모자격 시험문제>를 읽게 됐기 때문이다.

책을 본 순간 잠시 고민했다. '시험 소리만 들어도 지긋지긋한데 무슨 부모 자격시험이야' '알아서 나쁠 게 뭐 있어, 게다가 나는 지금 부모도 아니니 편하게 풀 수 있잖아.'

그래 결심했어. 나의 미래 부모 지수를 한 번 점검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점수가 잘 나오면 이제 아주 당당한 예비 아빠가 되는 것이고, 점수가 잘 안 나오면….(--)

사실 나는 처음 50개짜리 문제로 이뤄진 책을 열었을 때 아주 쉽게 봤다. 사람이 알고도 실천 못하는 거지. 모르는 게 얼마나 되겠어, 라고. 그런데 아니었다. 정말 대략 난감한 문제가 한 둘이 아니었다. 잠깐만 예를 들어보자.

아이가 작년 담임교사에게 선물하겠다고 돈을 달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①준다.
②안 준다.
③선물을 같이 사러 나간다.
④나중에 네가 어른이 되어 선물하라고 한다.

우리 아이가 거실에서 친구들과 놉니다. 심부름을 시키려고 몇 번이나 불러도 노느라 도무지 정신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①쫓아가 화를 낸다.
②아이 친구를 다 돌려보낸다.
③아이 친구들이 다 돌아간 다음, 야단친다.
④아이 어깨를 툭 치고, 심부름 내용을 말한다.


▲ 부모자격 시험문제
ⓒ 옹기장이
조목조목 따져보니 이 책은 꼭 부모와 아이의 문제에만 한정된 게 아니었다. 부부 사이의 문제, 부모와 교사의 문제, 이웃과의 문제 등 모든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부모'라고 굳이 한정지었지만 이 책은 관계에 관한 책이다.

부동산 투기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다가 아이에게 "학교에서 배웠는데, 그것은 나쁜 것"이라고 잘못을 지적받았을 때 부모의 올바른 태도는 '그렇구나, 맞아'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얼버무리거나 변명하는 것은 아주 나쁜 태도다. 이 정답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잘못을 지적받았을 때 순순히 인정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또한 퇴근길에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다주기로 했는데, 못 샀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되돌아 나가 아이스크림을 사온다'이다. 약속의 중요성은 부모가 항상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바다. 그런데 정작 부모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부모와 자식간의 믿음은 깨지는 것이다. 약속의 중요성은 사업하는 사람이나 친구 사이 등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된다.

▲ '비빔툰'의 작가 홍승우의 만화
ⓒ 옹기장이
그래서 이 책은 부모에게도 중요하지만 예비 부모, 인간관계를 고민하는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다. 특히 '비빔툰' 시리즈로 유명한 홍승우의 그림은 책을 무척 쉽게 읽도록 만들어준다. 그는 몇 장 안 되는 그림으로 전체 상황을 재치 있게 정리한다.

예를 들어 직업에 대한 부모와 자식의 대화를 홍승우는 이렇게 묘사한다. 네 컷의 그림은 말하는 입장과 듣는 입장으로 나뉜다. 먼저 말하는 입장에서 부모가 이렇게 말한다.

"의사 검사 변호사 교수 CEO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 사회에서 빈곤하지 않게 살아갈 수 있어."

다음은 듣는 입장이다.

"의사 검사 변호사 교수 CEO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사회에서 빈곤하지 않게 살아가고 싶었어."

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은 매 문제 영역 뒤에 있는 관련 사이트 목록이다. 문제는 총 6교시로 구분돼 있다. '생활탐구' '학교탐구' '교육탐구' '위기탐구' '대화탐구' '미래탐구' 등인데, '자녀와 함께 하는 문화나들이' '전국 초 중 고 대안학교' '전국 홈스쿨링 계절학교' '지역별 청소년 상담기관' '진로 직업 진학 정보' 목록이 정리돼 있다. 모두 저자가 손품을 팔아 수집한 목록들이다.

여기에 적힌 문제를 풀고 나면 어느 정도 자신의 가치관이 드러난다. 참고로 0-20점의 경우 '이 세상과 부딪히며 외롭게 살아온 분입니다. 아직도 세상이 힘들다고 생각하지요. 혼자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란 평이 나온다. 자식과 부모라는 관계를 떠나서 내가 살아온 지난날에 대해 점수를 매겨볼 수도 있을 듯하다.

다음은 저자 한효석과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 저자 한효석
ⓒ 김대홍
- 책은 잘 읽었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볼 여유도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정말 이런 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 아닌가 하는….
"맞습니다. 아이가 잘못되면 가장 답답한 건 부모입니다. 그 다음이 아이이고, 교사는 그 다음입니다. 언젠가 호주에 간 적이 있는데, 그 곳에선 3일 일하면 하루는 놀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누군가를 배려하려면 그만한 시간이 마련돼야 합니다. 결국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시스템을 당장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일단 이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잘 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는 의미에서 책을 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를 죄인 만드는 방식에 반대합니다. 흔히 아동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애들하고 놀아주라'는 말을 쉽게 내뱉습니다. 부모들이 놀아주고 싶지 않아서 못 놀아주는 게 아닙니다. 경제 여건이 그렇게 안 되는데, 계속 그런 말을 하면 부모들 마음만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 책을 읽으면서 부모들에게 당당할 것을 권하는 문구를 여러 번 찾았습니다.
'서울대 합격하고, 하버드 합격시켰다고 좋은 부모 되는 게 아닙니다. 10년 20년 뒤를 보란 말입니다. 그 때도 부모들이 자랑스러워하고 자식들이 행복해할지 말입니다. 부모들이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다면 자식들에게 떳떳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 부모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게 필요하다고...
ⓒ 옹기장이
- 그런데 과연 책을 읽는 것으로 사람이 바뀔까요?
"그럼요. 읽고 느끼면 바뀌죠. 1주일에 한 번씩 교회가는 이유가 뭡니까. 알고도 실천 안하는 데 대한 자기반성 아닙니까. 책을 읽고 느끼면 얼마든지 바뀝니다."

- 저자께선 자녀를 4년제 대학에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부인께선 반대하셨고요.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중3때 이미 '상고 가라'고 말했습니다. 상고 가면 야간 자율학습을 안하니까, 정말 배우고 싶은 분야 정해서 학원 다닐 수 있다. 만약 요리를 배워서 남들 대학갈 때 4년 동안 주방일 하면, 남들 졸업할 때쯤 너는 장인 소리 들을 수 있다. 남들 취업 고민할 때 너는 그런 걱정 안한다, 고 했습니다. 그 때 아이가 한참 생각하다가 인문계 고등학교 가서 한 번 해보고 판단하겠다고 했지요. 부인도 그 때는 상고 가는데 찬성 쪽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입학할 때는 성적이 변변찮았는데, 고3 올라갈 때쯤엔 전교 수석할 실력까지 올라갔습니다. 부인이 욕심이 생긴 거지요. 그래도 아이는 흔히 말하는 '명문대'에 가지 않고, 2년제에 가서 실내건축을 배웠습니다."

- 대학 진학 때처럼 부부간에 의견이 갈리면 참 판단하기 곤란할 것 같은데요.
"계속 이야기를 나눠야죠. 저는 그랬습니다. TV 봐라. 저 도둑들. 저렇게 살려면 대학 나온 게 무슨 소용 있냐. 차라리 안 배운 게 더 낫지 않냐. 사회의 편견을 우리가 극복하자 그랬습니다. 결국 나중엔 다 풀렸습니다."

-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명문대 진학에 대한 열망이 강하고, 그에 대한 압박감이 큽니다. 특히 친척들이나 가까운 사람들끼리 모일 때 그런 게 무척 신경쓰일 텐데요.
"그렇죠. 신경 쓰이죠. 그런데 절대 부모가 자녀를 부끄러워하면 안 됩니다. 겉으로 표시 안내더라도 부모가 자식을 부끄러워하면 자식은 다 느낍니다. 자식을 떳떳하게 생각해야죠."

저자 한효석은?

충남 대전에서 태어났다.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국어를 전공했다. 경기도에서 20여 년간 국어교사로 근무하다가, 2001년 2월 퇴직했다.

한겨레문화센터와 인터넷, 대입 학원에서 심층면접(구술)-논술을 가르치다가 지금은 부천에서 보리밥집을 하고 있으며 오마이뉴스 기자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렇게 해야 바로 쓴다'(한겨레신문사), '말지로 배우는 논술 심층 면접'(월간말), '열린수업 100가지'(푸른나무) 등의 책을 펴냈다.
- 자식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 데는 부모의 책임감도 한몫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자식 문제는 꼭 내가 해결하겠다는….
"그건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에 문제가 생겨도 공론화 안 시키려고 하죠. 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제가 크게 교훈을 얻은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학생을 정말 잘 안다, 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도무지 알 수 없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나도 별 문제없이 대했고, 부모님 또한 정말 교양 있는 분이었습니다. 겉으로만 교양 있는 게 아니라, 정말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분들이었죠.

그런데 그 부모의 학생이 무단결석을 하는 등 방황을 한 것입니다. 나중에 결국 청소년 상담실에 맡겼습니다. 놀랍게도 일주일 만에 깨끗이 치유돼 학교로 돌아오더군요. 지금은 호텔 직원으로 성실히 살고 있습니다. 그 때 깨달았죠. 내가 할 수 없는게 있구나. 무심코 쓰지만 참 위험한 말 중 하나가 '내 자식 내가 제일 잘 안다'입니다. 당사자들 문제는 당사자들이 해결 못합니다. 제3자가 오히려 객관적으로 알 수 있죠. 내가 할 수 있는 것, 못 하는 것을 구분하는 게 중요합니다."

- 책 뒷부분을 보면 군대 이야기를 꺼내면서 남들이 다 하는 것을 안 할 때, 남들이 안하는 것을 할 때 오히려 여유로울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우루루' 몰려다니는 문화가 강합니다. 그런 문화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나름대로 요령을 알려줬다고 보이는데요.
"양손에 떡을 쥐고 힘들어하지 말고, 놓을 것은 놓으라는 거지요. 넘쳐나는 세상에서 이제는 버릴 줄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부모자격시험문제 - 우리 아이 마음을 알 수 있는

한효석 지음, 홍승우 그림, 옹기장이(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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