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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들이 지난해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서울 지하철 2호선 객차 내에서 지하철 성추행 추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용산 성추행 살해사건'부터 '최연희 사무총장 성추행 사건'까지 일련의 성폭력 사건을 보면서 '우리 부모님도 정말 마음 졸이며 딸 키우셨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이 왜 그렇게 사소한 것까지 걱정하셨는지도 새삼 깨닫게 된다.

언제부터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딸인 내가 점차 나이를 먹자 부모님의 걱정도 점점 더해갔다.

철이 들던 무렵, 부모님은 내게 철저한 문단속부터 교육시키셨다. 창문은 물론 현관문, 뒷문, 집에 있는 모든 문이란 문은 수시로 직접 점검하고 잠그도록 하셨다(어린 나는 처음에는 '도둑이 들까봐 그러시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동생과 집을 보게 되는 날이라도 있으면 부모님은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절대 문을 열어주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당부하고 전화를 걸어 수시로 확인하셨다.

뿐만이 아니다. "외진 곳으로 다니지 마라" "어두워지기 전에 들어와라""혼자 있을 때에는 짜장면 시켜먹지 말아라"…. 부모님의 당부과 걱정은 끝이 없었다.

여자인 나에게는 학교 선생님조차 '경계의 대상'이었다. "선생님이 따로 부르더라도 절대 혼자 가선 안 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다.

우리 부모님이 유별나신 걸까. 내가 알기론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딸을 가진 부모라면, 우리 부모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게다.

내 딸이 언제든지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이 저변에는 성폭력 사건은 어디서고 예외없이 터질 수 있다는 우리 사회에 대한 불신도 깔려있다.

가정에서 이렇듯 철저한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아온 우리(여성)들은 성인이 되어서는 스스로 조심하느라 늘 긴장한다. 밀리는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보통의 나는 그리고 대부분 여성들은 혹시라도 '누군가의 손'이 내 몸을 덮치진 않을지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게 마련이다.

"나는 성폭력이나 저지를 사람이 아니다"... 정말?

▲ 지난해 7월 진주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가 실시한 길거리 설문조사. 많은 사람들이 "여성의 야한 옷차림 등이 성폭력을 유발하는 이유"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김철호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의 부모들은 내 딸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만, 내 아들이 '잠재적인 성폭력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은 대부분 하지 않는 것 같다.

내 부모님만 해도 남동생에게 어떤 행동이 여성 또는 남성에게 성적 불쾌감을 줄 수 있는지, 어떤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지 특별히 당부했던 기억이 없다.

사회에서 이뤄지는 '성희롱 예방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이 교육은 누구나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누구나 성폭력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교육이지만, 후자에도 방점을 찍는 이는 드물다.

현장에서 직접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는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교육을 다니다 보면, 남성들은 자신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데 대해 못마땅해하면서 싫은 표정으로 앉아있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한 마디로 "나는 성폭력이나 저지를 그런 사람이 아니다""사람을 뭘로 보고"라는 자만심의 발로일 것이다.

그러나 이 소장은 "성희롱 교육은 현실에서 내가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관점에서 자신의 성문화를 되돌아 보는 계기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이러한 '성적 감수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당부했다.

가정 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 아들이 성폭력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제는 해야 하지 않을까.

성폭력은 사후 대책 마련보다 아예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그렇다면 피해받지 않도록 교육하는 일보다 가해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치는 일이 더 빠른 길이다.

딸과 함께 아들도 조심시키자. 가정은 모든 성희롱 교육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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