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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군대인 자위대에 100만 병력이 충원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그것은 국왕(소위 '천황')을 위시한 1억3천만 일본 국민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것이다.

자위대가 100만 병력으로 강화된다 하여도 일본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그저 물 없는 물고기 신세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일본 국왕과 1억3천만 일본 국민을 군국주의적으로 단결시킬 수 있는 것이어서 훨씬 더 큰 파괴력을 갖고 있다. 일본 국왕의 야스쿠니 참배를 우려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국왕보다 형식상 아래인 총리대신의 야스쿠니 참배가 국제적 견제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내부에서 국왕의 참배까지 논의되고 있는 것은 그로 인한 국민적 단결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기도 하다.

아소 다로 외무장관이 28일 나고야시에서 "천황 폐하가 참배를 하시는 것이 상책"이라는 '망언'을 하기는 하였지만, 이러한 생각은 비단 아소 다로 장관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일본 우익들이 한결같이 공감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그 위험성을 절박하게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최정상급의 군대와 경제를 자랑하는 일본이 적어도 동아시아에서만큼은 '주눅'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은 자신들이 과거에 저지른 죄악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규모의 군사·경제력을 보유한 상태에서, 군국주의의 인적 상징인 '국왕'과 물적 상징인 '야스쿠니신사'가 참배라는 의식을 통해 결합한다면, 이는 일본이 과거의 죄악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 국민들이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군국주의적 단결을 도모할 수 있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본이 약소국이었다면 야스쿠니 참배를 애당초 시도하지도 못했겠지만, 설령 일본 국왕이 참배를 한다 하여도 그다지 우려할 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이 세계 최정상급의 국력을 자랑하는 국가라는 점이다.

가냘프고 왜소한 사람이 아침마다 골목에 나와 무술을 닦으면서 '조폭 두목'을 추모한다면, 이는 경우에 따라서는 조롱과 비웃음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단하고 거대한 몸집을 가진 사람이 좁은 골목에서 그렇게 한다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싹 달라질 것이다. 아마 아침마다 문밖을 나서기 힘들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그 사람이 '묻지마 살인' 전과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사는 것 자체가 두려워질 것이다. 우리가 일본의 야스쿠니 참배를 우려하는 것도, 아니 솔직히 말해서 그것을 매우 두려워하는 것도 바로 그와 같은 이치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남북한이나 중국 등 주변국 정부들은 일본 국왕이나 총리가 야스쿠니 참배를 하지 못하도록 보다 강경한 대응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물론 일본이 쉽사리 자국의 입장을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야스쿠니 참배를 끊임없이 비판하지 않으면 우리는 일본 국민들이 우익세력을 지지할 가능성을 차단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특히 한국정부는 야스쿠니 문제와 관련하여 종래의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보다 대담한 접근법을 통해 일본의 군국주의적 시도를 견제해야 할 것이다. 야스쿠니 접근법과 관련하여 한국정부는 다음 3가지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첫째, 일본이 야스쿠니 문제의 주도권을 잡도록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본 총리가 신사 참배를 결정한 이후에 일본을 비판하던 종래의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 일본측이 사전에 시나리오를 충분히 검토하고 나오는 상황에서 주변국들이 뒤늦게 일본을 비판해봤자 이는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다.

앞으로는 일본이 총리의 참배를 결정하기 전에 그리고 일본이 국왕의 참배를 주장하기 전에, 한국이 먼저 쟁점을 제기하고 국제적 홍보전을 전개함으로써 문제를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일본의 페이스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야스쿠니 비판의 초점을 A급 전범 14명에게만 국한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A급 전범 14명이 야스쿠니신사에 안치되어 있기 때문에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서는 안 된다"는 종래의 논리는 야스쿠니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야스쿠니신사에는 누가 '모셔져' 있을까?"(오마이뉴스 2005년 12월 22일자 기사)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야스쿠니신사에는 메이지유신·세이난전쟁·청일전쟁·대만침략·의화단운동·러일전쟁·1차대전·제남사변·만주사변·중일전쟁·태평양전쟁 때에 일본 군국주의를 위해 싸우다가 전사한 사람들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2001년 10월 17일 현재 야스쿠니신사에 안치된 가미(신)의 숫자는 무려 246만6364위나 된다.

그러므로 야스쿠니신사는 A급 전범 14명 때문에 위험한 곳이 아니라 246만여 명의 전범들 때문에 위험한 곳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 국왕이나 총리가 그곳에 가려 하는 것도 A급 전범 14명 때문이 아니라 246만여 명의 전범 때문인 것이다. 일본 국민들이 그곳을 찾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A급 전범 14명에게 비판의 초점을 맞추는 종래의 접근법으로는 야스쿠니 문제의 본질을 일반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릴 수 없다. 그 14명에 관계없이, 야스쿠니신사 자체가 일본 군국주의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위험한 곳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부각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A급 전범에게 초점을 맞추게 되면, 일본이 A급 전범의 위패를 야스쿠니신사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경우에는 일본 총리의 참배를 더 이상 막을 수 없게 된다. 총리의 참배가 정당화되면 이는 국왕의 참배로 이어질 것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추진하는 자들이 궁극적으로 희망하는 것이 바로 고신파이(御親拜) 즉 국왕의 신사 참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정부는 A급 전범에 구애됨 없이 야스쿠니신사 자체와 참배 자체를 꾸준히 비판해야 할 것이다.

셋째, 한국정부는 야스쿠니신사에 조선인 2만 1181위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는 불합리한 상황을 하루빨리 개선해야 할 것이다.

일본 군국주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사람들을 일본인들의 신으로 모시는 곳이 바로 야스쿠니신사인데, 왜 그런 곳에 우리 조상들이 안치되어 있어야 하는가? 침략전쟁의 가해자들이 있어야 할 곳에 피해자들까지 덩달아 함께 있다면, 이는 일제 강제동원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피해자 및 유족들을 모독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것은 일본의 식민지정책을 합리화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야스쿠니신사에서 조선인들의 위패를 제거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함은 물론, 이번 기회에 그 2만1181명의 유골을 반환받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일본정부는 북한더러 소위 '납치피해자'(북한측 주장으로는 '자진 입북자') 10여 명의 유골을 반환하라면서 주변 국제정세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정부는 그 10여 명보다 많은 2만여 명을 위해서 일본보다 더 많은 요구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이미 60여 년 전에 돌아가신 분들의 유골을 반환하라고 요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100% 달성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침략자들의 부당한 강제동원으로 머나먼 이국땅에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조상들을 위해서라면, 그만한 요구 정도는 거리낌 없이 당당히 제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정부는 수습 가능한 범위에서라도 유골을 찾아 달라고 일본정부를 끊임없이 압박해야 할 것이다.

유골 반환 청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야스쿠니에 안치된 우리 조상들의 위패를 제거하는 것이 더욱 더 중요하다. 이는 우리 정부가 얼마든지 요구할 수 있는 일이다. 정부는 외교관계를 운운할지 모르지만, 외교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후손의 도리일 것이다. 후손으로서의 도리도 못한다면 외교관계도 제대로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조상'도 공경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외교는 물론 경제도 제대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을 정리하면 ▲야스쿠니 문제의 주도권을 우리 정부가 잡아야 한다는 점 ▲야스쿠니 비판의 초점을 A급 전범 14명에게만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 ▲이번 기회에 조선인 위패를 야스쿠니신사에서 제거하고 강제징용 희생자들의 유골을 반환받기 위해서 일본정부를 압박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정부는 이러한 적극적 접근법을 통해 일본 국왕과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견제함으로써, 바로 옆에 있는 일본이 '거리낌 없는 강도'로 돌변하는 사태를 예방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차단하거나 혹은 조금이라도 늦추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정부는 자위대에 100만 병력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야스쿠니신사에 국왕을 위시한 1억3천만의 일본인들이 모이는 것을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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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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