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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지앙에서 샹그리라 가는 길에 만난 산 속 마을. 세상과 담 쌓고, 마음 맑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저곳이 이상향이 아닐까?
ⓒ 최성수
리지앙[麗江]을 떠나는 날, 햇살이 눈부시다. 한 여름 리지앙의 햇살은 우리나라처럼 쨍쨍하게 내려 꽂히는 것이 아니라 어디 먼 고장을 떠도는 사람의 마음처럼 아득하고 몽환적이다. 눈을 찌푸리며 가늘게 떠도 햇살은 여전히 아득하다.

며칠 내리 비가 내리더니, 떠나는 날에 이토록 맑은 것은 리지앙이 내게 아쉬움을 갖게 하려는 뜻일까? 햇살이 나른하게 비치는 리지앙 고성의 골목을 이곳저곳 걸어 다니며 아쉬움을 달랜다. 만고루로 올라가는 길의 그 작은 골목 여기저기와, 북문 근처 내가 전에 묵었던 고객 객잔에도 가 본다.

고객 객잔의 주인은 교사 출신 할아버지였다. 대문을 열고 안을 기웃거리니, 낯익은 할아버지 주인장이 환하게 웃는다.

"들어오세요."

낮고 탁한 그 목소리 너머로 눈부신 햇살이 비친다. 햇살은 마당에 꾸며 놓은 정원의 붉은 부겐베리아 위로도 쏟아진다.

"저를 기억하시나요? 전에 이 집에서 묵은 적이 있어요."

내 말에 할아버지는 웃으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웃는 것은 반갑다는 뜻일 테고, 갸우뚱하는 것은 기억에 없다는 뜻이리다. 할아버지는 들어오라고, 와서 앉으라고 정원에 있는 의자를 가리키지만, 차 시간이 임박한 나는 그냥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떠난다.

골목마다 내리 비치는 햇살을 밟으며 고성을 나온다. 자락자락 내려앉는 고성의 햇살이 마음을 더 없이 가라앉게 만든다.

이상향, 샹그리라로 가는 길

▲ 리지앙 교외, 샹그리라 가는 길. 가로수가 싱그럽다.
ⓒ 최성수
버스를 타고 샹그리라로 가는 길은 가로수들이 싱그럽다. 길 양편에 늘어서 바람에 머릿결을 흔들고 있는 가로수들이 마치 터널을 이룬 것 같다. 그 길을 따라 버스는 흔들흔들 달려간다. 눈이 다 시원하다. 샹그리라라는 이상향으로 가는 길이라서일까, 가는 길조차 이토록 아름다운 것은.

리지앙을 벗어나 조금 달리자 오른편으로 큰 호수가 나타난다. 안내 표지판을 보니 나시해[納西海]다. 몇 해 전 리지앙에 처음 왔을 때 나는 저 나시해에서 배를 탄 적이 있었다.

저물 무렵 도착한 나시해에는 아무도 없었다. 몇 명의 소년들이 나와 늦게 도착한 우리를 반겼다. 그 소년들이 저어 주는 조각배를 타고 나시해 한 복판으로 나갔다. 너무 넓어 끝이 아득한 나시해에는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뉘엿뉘엿 지는 햇살과 갑자기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사방을 둘러봐도 배 한 척 없이 텅 빈 호수, 짙푸른 물살만 일렁이는데, 호수 한 가운데에는 고사목이 몇 그루 서 있었다. 저녁 어스름 속에서 보는 그 고사목은 마치 내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던 기괴한 두려움의 형체와 같았다.

그리고 고사목 위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새들이 앉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승의 어디쯤에서 이승에서 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차사처럼. 그 새들은 가마우지 떼였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자, 가마우지들은 저문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다시 호수에는 정적만이 가득했다.

▲ 나시해 가운데 고사목에 앉은 가마우지떼. 저승과 이승을 연결하는 저승차사처럼 보인다.
ⓒ 최성수
그 나시해를 스쳐 지나가며 나는 첫 여행에서 만났던 나시해의 고즈넉하고 아득했던 느낌을 다시 떠올린다.

나의 그런 상념을 아는지 모르는지, 차는 리지앙을 벗어나 장강 제일만을 지나, 후타오샤[虎跳峽] 부근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꺾는다. 여기서부터 오른쪽은 사천성이고, 왼쪽은 운남의 서북쪽이다. 그 길 끝에 샹그리라가 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황토 빛 물줄기

샹그리라, 이상향으로 번역되는 그 땅을 찾아 나는 지금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정말 이상향이 세상에 있기는 있는 것일까? 그저 찾아 헤매고 헤매다 끝내는 제 마음 속에 그리움으로 남겨두고 마는 곳이 이상향은 아닐까?

샹그리라로 가는 길에는 그런 온갖 생각들이 뒤섞여 떠오른다. 생각이 번잡한 탓일까? 차 창 밖으로 거세게 흘러가는 물줄기도 내 생각처럼 흙빛이다. 황토 빛 저 물줄기가 바로 장강(長江)이다.

히말라야 산에서 시작한 장강의 물줄기는 저렇게 거세게 흘러 큰 강이 되고, 그 큰 강이 마침내는 멀고 먼 길을 지나 상하이[上海]에서 서해 바다가 된다. 얼마나 먼 길을 달려 강은 바다를 만나는 것일까? 인간은 얼마나 먼 길을 걸어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일까? 강과 사람이 하나처럼 느껴지는 것은, 내가 가는 길이 인간의 온갖 희망과 꿈을 담아 만들어 놓은 이상향인 샹그리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발 아래로 장강 진흙빛 물이 흘러간다. 저 물 아득하게 흘러 서해에 이르리라. 우리는 어디로 흘러 누구와 만나는 것일까?
ⓒ 최성수
창 밖으로는 여전히 황토 빛 거센 물줄기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좁은 골짜기를 피하고 혹은 파고들며 흐르는 물줄기, 이곳이 바로 후타오샤의 상류다.

깊은 골짜기를 따라 길은 이어진다. 우기라서일까? 산비탈에서 떨어진 바위 덩이가 길을 막아서기도 하고, 어떤 곳은 빗줄기가 훑고 간 흔적으로 길이 패이고 망가져 있다. 그 길을 차는 아슬아슬하게 비켜가며 잘도 달린다.

어제 후타오샤를 트래킹 하던 일본 사람 넷이 낙석에 깔려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터라, 그 길이 더 아슬아슬해 보인다. 샹그리라라는 이상향은 간단히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구나, 이렇게 위험천만한 고비를 넘기며 가야 숱한 사람들이 그리던 이상향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사이, 차가 꽤 높이 올라온 것 같다.

낭떠러지 건너편으로 산을 휘감고 돌아가는 장강의 물줄기가 아찔하게 펼쳐진다. 그 강 위로 실금처럼 그어 놓은 것이 길이다. 멀리서 보니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길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 공사중인 후타오샤 댐. 인간은 물을 막고, 자연을 막고, 마침내는 저 자신까지 막아버린다.
ⓒ 강마을
얼마를 더 달리는데, 갑자기 큰 공사판이 나타난다. 거센 물줄기를 막고, 거대한 댐을 만들고 있다. 그런 공사가 물줄기를 따라 계속 이어진다. 공사를 하는 바람에 길은 또 비포장에 온갖 바위덩어리로 아슬아슬하다.

붉은 머리띠를 두른 젊은 교사와 후타오샤 댐

무슨 공사일까, 물줄기를 막고 하는 공사라면 틀림없이 댐일 게다. 저렇게 댐을 막아놓으면, 전기야 쉽게 얻겠지만, 또 얼마나 많은 자연 환경과 동식물이 파괴될까? 인간의 편리와 자연의 보존, 이 둘의 갈등은 어쩌면 영원히 풀릴 수 없는 관계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다 퍼뜩 어떤 글 하나가 떠오른다.

그 글은 <한겨레신문>의 해외 시평으로 실린 중국 칭화대 왕후이 교수의 <티베트 매화마을 설산>이다. 어느 날 아침, 채 떠지지 않는 눈을 부비며 일어나 펼쳐든 신문에 그 글이 실려 있었다. 나는 그 글을 감동과 전율로 읽었다.

▲ 후타오샤 댐을 막고 서 있는 마화와 왕 교수 모습이 저 벽에 보이시는지....
ⓒ 김희년
칼럼은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이 곳, 장강의 상류에 대한 이야기였다. 윈난을 방문한 그는 밍융[明永] 마을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시인인 마화라는 젊은이를 만난다. 그는 상해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오지 중에서도 오지인 티베트 마을 밍융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후타오샤 댐 건설 반대에 앞장서는 친구다.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조금은 길게 자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샹그리라의 광장에서 티베트 춤을 덩실덩실 추는 그의 모습은 왕후이 교수의 글에서 신비함과 열정으로 되살아난다.

교사가 단 두 명뿐인 오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를 쓰고, 또 티베트 불교에 대해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있던 그는, 왕후이 교수가 윈난을 떠난 며칠 후, 밍융 마을에 광대역 인터넷망 설치를 위해 시내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차가 란찬강으로 굴러 세상을 뜨고 만다. 왕후이 교수는 그 젊은이를 생각하며, 과연 댐 개발이 긍정적인 일인가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왕 교수는 그 글에서 후타오샤 댐은 장강 제1만에서 후타오샤 유역에 걸쳐 약 564km에 건설되는 낙차 838m의 계단식 댐이라고 밝히고 있다. 왕 교수의 글에는 한 젊은 시인 교사의 열정적이고 애절한 삶과 후타오샤 댐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댐 건설로 파괴되는 숱한 자연 환경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나는 지금도 왕 후이 교수의 글 중 한 부분을 선연하게 기억한다.

"더친에 도착한 그 날 저녁, 나는 현성의 신작로를 따라 이리저리 거닐었다. 거리의 빈터에서 티베트족 젊은 남녀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추고 있었다. 즐거운 표정의 사람들이 점차 주위를 둘러쌌다. 주말 저녁의 흥겨운 한 때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사람들 속에서 마화를 발견했다. 그의 머리엔 여전히 붉은 띠가 둘러져 있었고 조금 길게 자란 머리칼은 그의 스텝에 따라 저녁 안개와 가로등 속에서 물결치고 있었다. 그의 몸은 악기의 리듬에 실려 있었다."

▲ 히말라야에서 시작된 장강이 처음 만을 이루는 곳, 장강 제일만. 후타오샤 댐이 만들어지면 저 아름다운 경치도 그림으로만 남을 지 모른다.
ⓒ 최성수
내 눈 앞에 펼쳐진 저 공사가 바로 후타오샤 댐 건설 현장이다. 나는 거센 물살을 막으며 이루어지는 그 거대한 공사 현장을 보며, 왕후이 교수와 그의 글 속에 등장하는 마화라는 젊은 시인의 얼굴을 곰곰 그려본다. 문득 공사 현장의 수많은 먼지와 흙더미, 거대한 시멘트 벽을 그 두 사람이 막아서고 있는 것 같은 환영에 빠진다.

나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버스는 쉬지 않고 산을 기어오른다.

한참을 그렇게 올라가던 차가 드디어 내리막길로 들어선다. 아니다. 내리막길이 아니라, 산 위의 분지와 같은 평평한 길을 달린다. 드디어 샹그리라 현, 원래 중국의 지명으로는 중띠엔[中甸]이라고 부르던 곳에 들어선 것이다.

우리의 생이 그런 것처럼, 힘들게 올라왔다 허전하게 내려가는 길 끝에 샹그리라가 있다.

아, 샹그리라, 누구나 꿈꾸지만 아무나 갈 수 없는 곳, 후타오샤 댐과 같은 인간의 인위가 만든 벽을 넘고 넘어서야 도착할 수 있는 곳, 그 마음의 땅을 향해 가는 이 길의 아득함. 그 가볍고도 무거운 발걸음이여!

▲ 드디어 샹그리라, 고산의 분지인 샹그리라 입구에서 만난 실개천. 어린 날의 고향 마을 같은 풍경이다. 이상향은 역시 고향 마을인지도 모른다.
ⓒ 최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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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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