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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강재섭 원내대표가 13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천정배 법무장관의 강정구 교수에 대한 불구속 수사 지휘권 발동과 관련한 동료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당장이라도 천정배 법무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낼 듯 강경했던 한나라당이 일단 멈췄다. 우선 노무현 대통령에게 천 장관의 해임을 촉구하고, 천 장관에게도 자진사퇴를 압박하는 '우회로'를 택한 셈이다.

그 속사정은 해임안을 내도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염두에 뒀기 때문으로 보인다.

천 법무부장관 해임안에 대해 현재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반대하고 있다. 해임안이 제출되면 지난 윤광웅 국방부 장관 해임안 부결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민노' 연합 전선이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이 '현재로선 찬성'이라며 한나라당에 손을 들어줬지만 표 대결에서는 밀린다.

현재 정당별 의석은 열린우리당 144석, 한나라당 123석, 민주당이 11석, 민주노동당이 9석이고 여기에다 자민련(3석)과 무소속(5석) 의석이 있다.

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해임안 반대로 뜻을 모을 경우 153표가 돼 나머지 의석을 모두 합친 142표보다 많게 된다. 대략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해임안이 가결될 가능성은 낮은 셈이다.

"정치적 액션에 그칠 가능성 크다"... 신중론에 손들어준 지도부

"심정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해임안을 내고 싶지만 그럴 경우 '정치적 액션'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 내 한 핵심 당직자의 설명이다. 한나라당의 '일단 멈춤'은 해임안 부결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결정이란 얘기다.

그는 "현재로선 부결될 가능성이 높지 않느냐"며 "차라리 국민 여론을 모아서 대통령이 해임하도록 압박하거나 천 장관 스스로 사퇴할 기회를 주는 게 더 낫지 않느냐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열린 당 의원총회에서도 신중론이 불거졌다. 당내 소장파인 이성권 의원은 의총 분위기가 법무장관 해임건의안 제출을 넘어서 정권 퇴진운동으로까지 격앙되자 "신중해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다.

이날 의총에서 대부분의 의원들은 "해임안을 내봤자 숫자로 부족하니 낼 때는 의원직 사퇴서를 함께 내야 한다"(안상수 의원) "해임안은 우리의 의지를 표명하는 일인데 통과 가능성을 먼저 염두에 두고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박찬숙 의원)고 강경론을 폈다.

반면 이성권 의원은 "국민의 법 감정이나 법 질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천 장관의 지휘권 발동에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한다"면서도 "해임안 제출은 좀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한발짝 물러섰다.

이 의원은 "해임안을 낼 경우 득실을 따져보면 득보다 실로 갈 가능성이 있다"며 "지난 번 국방장관의 경우도 해임안을 냈다 무산되지 않았느냐"고 떠올렸다. 그는 "노무현 정부가 무서워하는 것은 야당보다 국민"이라며 "국민운동적 성격으로 대처한 후 국민의 압박수준이 최고에 달했을 때 해임안을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당 지도부도 이같은 신중론에 고개를 끄덕인 셈이다.

그러나 천 법무장관에 대한 해임안은 '연기'된 것일 뿐 조만간 제출될 가능성이 크다.

강재섭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당 의총을 마치면서 "이(해임안 제출) 문제를 (가부를 가늠하는) 전략적 시각에서 검토하진 않겠다"며 "일단 노 대통령의 해임 여부와 천 장관의 거취 결정을 며칠 두고본 뒤 다시 의원들의 의견을 들어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민노 "해임안 반대"-민주 "지금은 찬성"... 윤 국방과 같은 상황

한편, 이날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천 장관 해임안에 대해 반대 뜻을 밝혔다.

전병헌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을 통해 "천 장관은 인권 보호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며 "법적 행사권한을 두고 제1야당에서 해임건의안을 제출하고 자진사퇴를 얘기하는 것은 신중치 못하고 졸렬한 태도"라고 비난했다.

또 전 대변인은 "한나라당은 입만 떼면 거부, 눈만 뜨면 반대, 손만 내밀면 냉소로 일관한다"며 "집권 여당으로서 제1야당의 복이 왜 이리 없는지"라고 냉소했다.

또한 전 대변인은 강 교수의 일련의 발언과 관련해 "우리당은 강 교수의 학문적 입장이나 시각에 반대하지만 법적 처리문제는 사법기관이 독자적으로 판단할 문제"라며 "천 장관은 헌법정신에 근거한 법리적 판단에 따라 법이 허용한 권한을 행사한 것"이라고 거들었다.

홍승하 민주노동당 대변인도 "이런 사안으로 해임안을 제출하는 것은 헌법정신은 물론 상식에도 어긋나는 일"이라며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은 해임안 찬성 쪽에 손을 들었다. 유종필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의총을 통해 당론을 모아봐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해임안 찬성 의견이 더 많다"며 "천 장관의 지휘권 발동은 잘못된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유 대변인은 "정권의 실세인 법무부 장관이 이런 식으로 지휘권을 행사하면 검찰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강 교수 발언에 대한 처벌 여부에 대해서는 민주당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유 대변인은 "강 교수의 구속과 관련해서는 당 내부의 생각이 각각 다르다"며 "학문과 사상의 자유 차원에서 처벌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한 실정법 위반이라는 주장도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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