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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일등품이 무엇입니까?" 누가 묻는다면 난 단연코 "한글!"이라고 힘주어 말하겠다. 단지 우리 것이어서가 아니라 소리 내어 말하기 편하고 글자로 쓰기 쉬워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 한글을 쓰는 우리나라는 문맹률 세계 최저다.

인터넷 시대에도 전혀 처지지 않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문명시대에 전자제품 수백억 달러보다 값진 한글이 자국에서 홀대받는 웃지 못할 상황이 근 10년이다. 한글날을 맞이하여 한 글자에 담긴 조상들의 얼과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한 글자에 세상이 다 들어 있었다. 한 글자로 자연과 의식주와 수렵, 농사, 그들의 생각 폭까지 짐작할 수 있다. 한 글자엔 오랜 역사가 녹아 있으며 단 한 자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순수함이 있었다. 원시시대, 선사시대, 구석기시대는 몰라도 신석기시대 이후 삶을 파악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

하늘에서 몸, 이웃과 어울려 살던 그 시절로 돌아가 보자. 한글날이 아직도 국경일이 되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올 초부터 오늘 아침까지 9개월여 동안 한 자 한 자 발굴하여 일단 245자를 찾았다. 내 자신의 땀이 밴 것으로 몇 번이나 그만둘까 고민하다가 졸작이지만 세상살이에 맞춰 시도해본 것이다.<편집자 주>


9개월 동안 찾은 외 자 순우리말
245자로 글을 써봤습니다

해 별 달 흙 땅 뭍 뫼 벌 뻘 물 불 돌 길 눈 봄 비 설 빛 낮 밤 철 날 헌 새 샘 굴 골 범 꿩 닭 뱀 곰 암 수 활 삵 알 소 새 쥐 말 개 벌 도 개 걸 윷 모 좀 이 굴 몸 입 눈 코 손 발 팔 살 피 배 애 속 점 털 숨 뼈 골 이 혀 목 멱 침 혹 볼 낯 젖 밸 멍 줌 똥 돈 힘 씹 좆 애 돌 나 너 중 빚 남 님 저 놈 딸 뭇 짓 옴 벗 얼 온 멋 악 넋 글 참 삶 욕 꿈 집 잠 담 놋 못 빗 갓 초 안 밖 겉 널 묘 좀 솜 옷 올 실 결 삽 줄 섶 붓 솔 일 놉 삯 칼 낫 쇠 자 못 녹 들 씨 싹 움 풀 꼴 삼 솜 베 쑥 벼 피 밀 섬 짚 박 칡 논 밭 둑 짐 닻 덫 돛 품 꽃 잎 콩 피 조 대 징 쇠 북 흥 춤 굿 끼 절 악 잘 헛 쾅 꽝 빵 펑 뽕 퐁 품 헉 흠 첫 한 둘 덧 셋 넷 열 쉰 맏 접 겹 다 더 되 말 홉 몇 덤 자 근 벌 맛 쌀 뉘 밥 국 죽 찜 쌈 술 꿀 모 팥 깨 솥 김 숯 재 장 밤 묵 파 마 옻 잣 감 배 벚 솔 참 매 / 김규환

▲ 왼쪽은 훈민정음을 전각(낙관) 옆 4면에 조각했고, 오른쪽엔 딱딱한 타일에 새겼다.
ⓒ 김규환
해와 별은 불로 이글거린다. 달은 차갑지만 물이 없다. 땅엔 흙과 돌로 가득했다. 벌과 뻘은 낮되 넓다. 사람이 다니다보니 길이 만들어졌다. 겨울 비 촉촉이 내리다 그치니 햇볕 따스하다. 빛이 돈 것이다. 낮과 밤이 나뉘었다.

철 따라 봄이 지나고 눈 오는 설이 다가왔다. 날이 365일이라 헌 해가 가고 새 해가 온다. 깊은 뫼, 골짜기 샘이 콸콸 솟으니 물이 넘쳐난다. 불이 있어 지탱하고 불로 음식을 익혀먹기 시작하고 굴에 저장하니 변치 않았더라. 뭍은 그렇게 풍요했다.

쥐가 으뜸이다. 소는 가보 1호다. 하룻강아지 범 앞에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무섭지만 인자하다. 뱀은 개구리 물어 삼키고는 잠자러 갈 채비를 한다. 닭과 꿩은 날 짐승이라 암수 서로 정답다. 알을 한바가지나 낳는다. 새 한 마리 퍼뜩 날자 어린아이 활로 조준하지만 맞을 턱이 없다.

삵은 괭이다. 살쾡이는 고양이과인 게다. 개는 사람과 아직도 친한 동물이다. 도 개 걸 윷 다 좋지만 모가 최고니 걸음이 빨라 말을 따를 자 없다. 육지엔 벌이 윙윙 한두 마리 날고 바다엔 굴이 즐비하니 꿀과 굴은 젖줄이었다. 곰도 예전엔 우리와 함께 살았다. 좀이 쑤신 건 한번 입었던 옷 벗지 않음이요, 이도 드글드글 했다.

▲ 피마자 사이로 드러난 하늘이 흰구름 때문에 더 푸르고 높다.
ⓒ 김규환
내 몸을 들어 한번 볼작시면 입으론 밥을 먹고 눈으론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코로는 맛있는 냄새를 구별한다. 손으론 뭔가를 집고 잡고 들며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발로는 뚜벅뚜벅 걸으면서 무언가 차본다. 팔로 힘을 과시하는데 살이 포동포동 찌면 아무래도 다르다.

온몸에 피가 돌고 배엔 가죽이 든든히 버티고 있다. 애간장 녹지만 창자까지 탈 일이 많은 요즘이다. 속이 뒤집어진다. 속이 탄다. 점이 때론 매력덩어리일 때가 있다. 잔털이 남성적인 데가 있다. 날숨 들숨 숨을 쉬는데 내 목숨이나 네 목숨이나 한가지다. 뼈도 살 못지 않다. 골엔 혼이 들어 있다.

이로는 물고 씹어서 침과 섞여 소화를 돕는다. 혀로는 맛을 느끼고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돼지 멱인들 걸릴까 보냐. 낯바닥 볼기짝엔 생기가 있으니 똥이 잘 나오기 때문이다. 흙과 똥이 어울려 한줌 땅을 살리니 어른들은 이 둘을 못 먹으면 죽는다고 했다.

혹 하나 있고 없음으로 사람 구실 갈렸지만 그에게 밸이 없던 건 아니었다. 사냥하거나 다툼이 있으면 멍 자국 시퍼렇게 남았다. 남녀 각기 씹과 좆을 달고 사랑을 하여 애를 낳아 젖 먹여 기르고 옷을 입히니 돌잔치를 하면 할수록 아이는 부끄러움이 더 늘었다.

▲ 벌개미취와 벌과 참이슬 물방울을 다 볼 수 있다.
ⓒ 김규환
우리네 삶은 꿈 없인 하루도 버티기 힘들다. 너 나 우리 모두 좋은 꿈을 꾸며 참 세상을 바란다. 한번 사는 세상 악으로 살기보다 뭇 벗과 어울려 살고 자신을 저로 낮추면 이 놈 저 놈 소리 듣지 않고 멋지게 살 수 있다.

하는 짓이 예쁘면 온동네 사람이 죽어서도 넋을 글로써 위로하니 욕할 자 누구겠는가. 이런 얼이 차곡차곡 쌓이면 남들은 님이라 부르기도 하고 참 스승이라 하니 죄짓지 않음은 물론 빚지지 말지어다.

집은 무엇인가? 찬바람 더위 막아주면 그만이다. 일부러 담 칠 일 없이 욕심 버리고 소박하게 살자. 안과 밖이 서로 통하니 겉모습 치장하지 않아도 잠자는 데 아무 이상 없다. 빗장 지르고 못으로 박은들 도둑 없을 리 없고 흔들리지 말라는 법 없다.

살림엔 놋그릇이 좋다하니 한 벌 장만 해야겠다. 부귀영화를 누리든 누대를 걸치든 갓 쓰고 떠나나 마찬가지다. 널에 봉하여 묘로 들어가 좀이나 벌레 차지가 되니 말이다.

목화 솜 타서 한 올 한 올 실로 결을 지어 따뜻하게 덮고 베 옷 입으면 하나는 거뜬했었지.

▲ 어느 시골집에서 아이를 낳은 듯, 기저귀가 볕에 잘 마르고 있다.
ⓒ 김규환
삽과 낫으로 놉을 얻어 삯은 품앗이로 줄지어 모를 내고 풀을 뽑는 일을 열심히 하면 가을에 거둘 게 많다. 누에는 봄가을에 한번씩 섶에 실을 잣고 글 꾼은 부지런히 붓을 놀리면 문화가 한층 발전한다.

칼로 흥하면 망하는 지금길이요 쇠를 만들어 전쟁을 일삼으면 세상에 지탄이 되지만 녹슬지 않게 연장 만들어 집에 못 박고 농사하는 게 근본이라. 솔로 풀을 먹여 길쌈하던 풍경이 그립다.

들이 하늬바람에 황금물결로 남실댄다. 움트고 싹터서 옆에선 풀이 자라더니 벌써 씨를 머금어 결실을 재촉하는 계절이다. 풀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잡초가 되기도 하고 소가 먹는 꼴이 되니 마냥 미워할 것만 아니다. 쑥대밭은 거추장스럽지만 어린 쑥은 단군 할아버지 때부터 즐겨먹던 나물 아니던가.

논엔 벼와 피가 밭엔 콩과 밀이 둑엔 박이 하얀 꽃을 피우고 조롱박을 주렁주렁 매달고 산엔 칡넝쿨이 한없이 뻗었다. 알곡이 몇 섬이 날지 몇 짐이나 될지 기대가 크지만 품 들여 농사지어 놓고 농민 한숨 잦아들지 않으니 웬일인가.

조 농사짓는 사람 드물고 대밭 한 마지기면 문전옥답 열 배미와 맞바꾼다 했는데 인기 시들하니 어쩔건가. 중국이랑 입맛 통일은 얼마 남지 않았나 보네.

기술이 발전하여 삼과 솜으로 베 짜지 않으니 덜커덩덜커덩 어머니 가슴 철렁 내려가듯 놀란 내 마음 이젠 고향에 닻을 내리지 못하겠네. 돛이 순풍에 길을 재촉해도 도시 생활에 찌든 내 몸과 마음 오갈 데 없구나.

▲ 결실의 계절에 두릅이 씨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 김규환
상쇠 불러 쇠, 징, 북을 치고 끼 넘치고 잘 노는 아이 불러 춤사위 멋들어지게 추라 하자. 정화수 모셔놓고 절하고 굿판을 열면 조금이라도 흥이 날까. 헛기침 한번 하고 악을 써보자.

지를 수 있는 소리 다 동원하여 "쿵!" "쾅!" "꽝!" "빵!" "펑!" "뽕!" "퐁!" "헉!" "흠!" "하-" "야-" "와-" 뭉쳤던 응어리를 뱉어내서 기분 전환을 하자.

첫 술에 배부르랴마는 한 번으로 안 되면 둘이서 어깨를 덧대고 "셋, 넷" 박자를 맞춰 맏형처럼 젖 먹던 힘을 다한다. 열사람 쉰 걸음 겹치고 더하여 맞들면 홉도 무겁던 것이 되나 몇 말, 홍시 몇 접이 불끈 올라온다.

덤으로 돼지고기 한 근 더 받고 옷감 자가웃 뜨고 옥색치마에 저고리 한 벌 두르면 동가홍상이라 째지게 좋다.

▲ 벼를 수확하는 들녘엔 과연 웃음꽃이 필 수 있을까 모르겠다.
ⓒ 김규환
뉘가 하나도 없는 햅쌀로 함치르르한 밥 짓고 가마솥에 시레기된장국 끓여 차린 밥상이 그립다. 정지에선 재도 거의 없이 이글거리는 숯불에 전어 두 마리 갈치 한 토막을 굽고 쪽파 송송 썰어 간이 딱 맞는 장에 참깨 볶아 짠 기름 똑 한 방울에 도토리묵이 절로 넘어간다.

두부 한 모 산초 기름에 튀기고 김 댓 장 살짝 구워 쌈을 싸면 꿀맛이다. 반주는 약술이라 취기 오를 리 없이 피돌기를 재촉하니 고기찜 부럽지 않고 전복죽에 버금간다. 팥은 호박죽에 넣어 추위를 액땜하고 마를 갈아 한잔 마시면 뒤끝도 개운하더라. 삶은 밤 밤에 먹으면 더 기가 막힌다. 솔잎 송이버섯을 감싼 가을이다.

가르침도 지금과 다른 게 없었나 보다. 매엔 예나 지금이나 장사가 없다. 잣나무, 감나무, 배나무, 벚나무, 참나무로 눈물을 머금고 몇 대를 때리느냐에 따라 아이 품성이 달라진대나 어쩐대나. 위장에 좋다던 옻나무도 독이 맘껏 올라 함부로 먹으면 타지 않으란 법이 없지만 첫번에는 김을 쐬지 않는 게 상책이란다.

▲ 번지르르 윤기나는 함치르르한 햅쌀밥에 송이가 조금 올려져서 더 향긋하다.
ⓒ 김규환

덧붙이는 글 | 어서 한글날이 국경일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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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이 기자의 최신기사역시, 가을엔 추어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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