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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항공기가 인천을 이륙하여 서해 직항로를 통해 평양을 향한 지 30분쯤 되었을까. '주체사상으로 무장하자, 당을 수뇌부 결사옹위의 결정체로 만들자' 등의 구호로 점철된 로동신문을 훑어보고 있는데 기내 방송이 나왔다.

"지금부터 청량음료를 나눠 드리겠습니다. 드리게 될 금강산 샘물은 위대하신 영도자 김정일 장군님께서 여행객을 위해 배려해 주신 샘물입니다. 여행객 여러분께서는 이 샘물을 마시고 맑고 깨끗한 조선을 느끼실 것입니다."

▲ 김일성 주석의 초상화로 유명한 평양 순안공항
ⓒ 정용국
곧 여승무원들이 카트를 끌고 룡성맥주, 배단물, 홍당무즙, 배사이다, 금강산 샘물 등을 나눠주었다. 나는 금강산 샘물 대신 룡성맥주 한 잔을 마시며 60년의 세월이 참으로 우리를 모질고 멀어지게 만들었음을 실감했다.

이 지면을 빌어 어느 한 쪽의 체제를 비판하거나 우월성을 자랑할 목적이 없는 입장이었음에도 우리가 부딪혀 느껴야 하는 거리는 너무 멀고 깊은 강이었다. 차지 않아서 더 씁쓸한 맥주 한 모금의 맛이 뒤숭숭하다. 아직 평양에 내리지도 않았는데 그곳에는 얼마나 더 많은 걸림돌들이 우리의 의식과 일상들을 들부수고 삐걱대는 소리를 낼 것인가? 그래, 기운을 내자 60년이 만들어 놓은 거리를 우리가 깨뜨려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눈을 감고 잠시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순안공항의 청사를 그려 보았다.

로동신문의 제일 마지막 면 하단에는 재일동포 프로권투선수인 홍창수 선수가 지난 18일 일본 오사까에서 진행된 세계권투리사회(WBC) 수퍼플라이급 쟁탈전에서 일본의 가와시마 가쯔시게를 3:0 판정으로 이기고 또다시 세계 선수권을 쟁취하였다는 소식과 사진이 실려 있었다.

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미군범죄행위'라는 소제목으로 남조선 KBS에 의하면 15일 의정부시에서 미군이 남조선 주민들에게 폭행한 사건이 다시 발생했다고 보도하며 기사 밑에는 '일제 전쟁범죄를 규탄하며 보상을 요구하는 남조선 인민들'이라는 설명이 붙은 울고 있는 할머니의 사진이 올라 있었다.

로동신문에는 그날 이후에도 몇 장을 더 보았는데 악보 전체를 실은 노래가 자주 올라오는 게 신기했다. '평양은 영원한 내 사랑' '장군님은 백승의 령장' 등이 그랬고 다른 잡지를 보아도 '해빛 같은 미소 그립습니다' '문경고개' 등 악보와 가사가 잡지의 맨 뒷장이나 커버 뒤에 소개된다.

그런데 그곳에서 내 눈길을 끈 것이 악보의 제목 밑에 써있는 창법에 대한 글이었다. '밝고 아름답게' '좀 느리고 서정있게' '환호적으로 힘있게' '그리움을 안고 절절하게'라고 노래의 분위를 잡아주는 말이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었다. 내가 학교에서 불렀고 공무원 생활하며 불렀던 '새마을 노래'나 '나의 조국' '좋아졌네' 등과 같은 노래에도 창법이 그렇게 붙어 있지 않았을까? '힘차게' '장엄하게' '경쾌하게'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그만 키득 웃고 말았다.

그 순간 우연히 승무원과 눈길이 닿았는데 그녀는 맑게 웃음으로 받아 주었다. 저렇게 나와 똑같이 생기고 모국어를 함께 쓰는 사람의 머리 속이 서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이데올로기의 도그마로 각각 굳어져 있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녀는 내게 사탕 바구니를 내밀었다. 그녀가 주고 간 사탕은 나의 복잡하고 쓴 생각에 비하면 너무 달고 고소했다.

"잠시 후 20분 후에 비행기가 강하하니 안전띠를 매야겠습니다. 현재 평양의 기온은 29도 날씨는 흐렸습니다."

▲ 민족작가대회를 취재하는 북의 기자들
ⓒ 정용국
입 안의 사탕을 녹이며 복잡해진 머리 속을 이리저리 굴려보고 있는데 기체가 굉음을 내며 강하하기 시작했다. 이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뒷동산과 굽은 길이 보이고 잘 자란 벼며 장마로 흙탕물이 된 실개천도 보인다. 아파트 같은 건물이 보이는 듯 하더니 12시 30분 동체는 활주로에 덜컹하고 내려앉았다. 여기는 죽어도 못 올 것 같았던 평양인 것이다. 남쪽의 흔한 개망초꽃 하얗게 핀 들판이었다.

서서히 활주로를 나와 기체가 공항청사로 이동하더니 멈추었다. 우리 나라 사람들 성질이 급하기는 기내에서도 소문이 나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리기만 하면 제일 먼저 안전띠 풀고 안내 방송이 무색하게 핸드폰 켜고 일어서는 것이다. 그러나 엔진이 꺼지고 푹푹 찌는 더위가 엄습하는데도 기내는 조용하고 아무도 일어서지 않았다.

자유분방하기로 말한다면 이등 가라면 서러워 할 사람들이 문인들인데 이렇게 조용할 수가 있다니 얼마나 우리들이 긴장했다. 아마도 누구 하나의 돌출 행동으로 행사가 그릇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하는 마음이 통했던 것으로 본다. 김형수 사무총장이 이름을 가나다 순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다섯 명씩 순서대로 찜통에서 해방됐다.

그리고 우리들은 김일성 주석의 대형 초상화로 유명한 평양공항 앞에 서서 도착 성명을 발표했다. 황석영 선생이 읽은 도착 성명은 "우리는 지금 옛 고구려의 도읍에 두 발을 딛고 서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엄숙하고도 벅찬 감정의 서시였다. 평양공항 청사 앞에는 '민족작가대회 참가자들을 열렬히 환영한다!'고 쓴 빨간 바탕의 플래카드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 민족작가대회 환영 플래카드 앞에선 필자.
ⓒ 정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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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사무총장.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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