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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신에는 '남북작가대회'라고 썼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상호존중의 예를 따라서 북에서 주최할 때는 '북남작가대회'라고 쓴 문구를 그대로 인정해 주고 남에서 주최할 때면 남북작가대회라고 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 될까? 그 정신을 귀히 여겨 북남작가대회로 쓴다.

인천국제공항에는 환승하는 승객을 위한 국내선 창구가 하나 있다. A구역이 그곳인데 북으로 가는 항공편도 국내선으로 간주되어 이 창구를 이용한다. 또한 출국시에도 여권이 필요하지 않고 다만 북의 초청장을 근거로 통일부에서 발행한 방문증명서만 있으면 가능하다. 더구나 우리들의 단체방문은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이미 명단과 서류를 맞춰놓은 터라 절차가 많이 생략되어 국내선 타는 정도의 수고만 하면 되었다.

▲ 선글래스 너머로 백두산을 그리고 있을 홍상화, 신경림, 김창규 시인들의 모습.
ⓒ 정용국
누구나 느껴보는 일이지만 공항에서의 기다림은 참 지루하고 갑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상상의 나래를 펴며 여행지의 요모조모를 생각하면서 마음은 한껏 부풀어 오르는데 하드웨어가 따라주지 못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왜 또 그 기다림의 시간은 늦게 가는지. 여기저기 모여서 마음을 진정시켜 보기도 하고 북의 이야기들을 말해보기도 한다. 선글래스로 한껏 멋을 낸 삼총사가 있었으니 신경림, 홍상화, 김창규 선생들의 모습이 정겹다.

9번 게이트에 도착해 보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기가 선명하게 박힌 고려항공 여객기가 삼엄한 특공대의 호위를 받으며 제일 마지막 구역에 들어와 있다. 세계의 유수한 항공사들이 대형 점보기를 투입하는 인천국제공항에 작고 여린, 그러나 소중한 뜻을 담고 떠날 고려항공기는 수줍은 듯 구석에 몸을 사리고 와 있었다.

어떤 이는 '애개!' 하며 비행기가 너무 작다는 듯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이도 있었다. 그 동안 언론을 통하여 북의 항공기가 왕래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내가 그 비행기를 탄다니 감개가 무량했다. 처음에는 평양을 갈 때 그저 우리 항공기를 타고 가려니 했다. 나중에야 고려항공 편이 온다고 하니 그 배경과 결과에 '그래, 잘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인공기가 또렷한 고려항공사 소속기 뒤로 대한항공의 대형 점보기가 보인다.
ⓒ 정용국

살갑게 다가온 북한 사투리

'안녕하십네까? 환영합네다!' 하고 승무원이 인사를 건넸다. 빨간 치마에 흰 블라우스를 입은 모습은 여느 항공사 승무원과 별 다를 바 없었다. 오래 전에 KBS에서 오전 11시 50분경 진행하는 '김삿갓 북한 방랑기'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다. 주로 북의 사상과 체재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엮는 일종의 연속 기획물이었는데 유일하게 북의 사회상을 어렴풋이나마 넘겨다보고 북의 사투리도 들을 수 있었다.

막상 북의 뉴스를 통해 듣는 말투는 최고조로 격앙된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여서 듣기에 거북하고 이상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막상 북의 여승무원과 가까이에서 나누는 대화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살가웠다.

18F 자리표를 받아 비행기의 중간쯤으로 찾아 갔더니 18E에 전상국 선생님이 앉아 계셨다. 마침 18F가 창가 자리여서 선생님께 양보해 드리고 옆에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전상국 선생님과는 지난 번 황순원문학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뵌 적이 있었다. 경희대와 양평군이 조성하는 양평군 서종면의 소나기 마을이 내가 사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의 대표작 <아베의 가족> 시절을 기억하는 내 머리 속에는 선생님의 얼굴을 보며 세월이 참 무섭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항공기 승무원이 상냥하지 않은 사람이 없겠지만 그녀들은 조금 수줍어 했다. 뭘 물으면 살짝 얼굴을 돌리며 볼이 붉어지고 손을 입에다 갖다대곤 하였다. 나는 농을 걸 참으로 유홍준 교수의 <나의 북한문화유산 답사기>에 나오는 항공기 여승무원과 유 교수가 함께 찍어 책에 실은 사진을 보여주며 혹시 이 승무원은 아는 이냐고 묻자 '고것은 오래 전의 일입네다' 하며 웃었다.

사실 유 교수가 북의 문화재를 조사하기 위해 중앙일보의 협조를 얻어 방북하던 1997년은 지금에 비하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베이징을 경유해서 들어가는 길이었고 그러자면 베이징에서 1박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100인승 작은 고려항공기 옆으로 KLM 소속기와 대한항공의 골리앗 같은 점보기가 보인다. 또 파업 중인 아시아나 항공기가 멈추어 있다. 화물을 싣지 않아 카트가 여기저기 모여 있고 싣지 못한 화물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고려항공의 승무원들이 아시아나 항공의 파업 사실을 알게 된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기내방송이 시작되었다. 평양까지 운항거리는 540km 평양기온은 29도, 평야의 날씨는 흐렸다 한다. 소요시간은 50분인 JL616편이었다.

▲ 기내에서 받은 <로동신문> 1면.
ⓒ 정용국

"로동신문 보시겠습네까?"

▲ 북에 제출해야 하는 입·출국 신고서, 세관신고서, 건강신고서.
ⓒ 정용국
입출국 신고서와 세관신고서 그리고 건강신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지금은 군사적인 문제로 서해안 직항로를 이용하고 있지만 더 짧은 직선 항공로가 열린다면 말 그대로 떴다하면 내려야 하는 짧은 거리가 될 것이다.

여승무원들은 신속하게 <로동신문>부터 돌리기 시작했다. 물론 '신문 보시겠습네까?'라며 건네긴 했어도 신문은 코 앞에 먼저 와 있었다. 얼떨결에 한 부 받아 들었는데 시절의 변함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사건이었다.

분명히 남에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로동신문>이라니? 보안법에 당연히 제외조항으로 연구목적 등의 이유를 들고 있긴 하지만 너무 갑작스런 현실의 충돌이 아닐 수 없었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제201호 주체94년(2005) 7월 20일(수요일), 바로 당일 신문을 들고 온 것이었다.

덧붙이는 글 | 정용국 기자는 시인으로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입니다. 시집 <내 마음 속 게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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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사무총장.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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